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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위험 피하려 300m 음주운전한 건 ‘무죄’

중앙일보

입력

음주상태였다 하더라도 사고 예방을 위해 도로에 정차된 차량을 안전지대까지 이동했다면 음주운전으로 볼 수 없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중앙포토]

음주상태였다 하더라도 사고 예방을 위해 도로에 정차된 차량을 안전지대까지 이동했다면 음주운전으로 볼 수 없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중앙포토]

대리운전기사와 싸워 대리기사가 운전하다 말고 도로에 차를 세워 놓고 가버린 탓에 차량을 안전지대까지 이동했다면 ‘긴급피난’에 해당하므로 음주운전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울산지법 제9형사단독 송영승 부장판사는 도로교통법위반(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된 A씨(34)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13일 밝혔다.

울산에 사는 A씨는 지난해 7월 24일 울산 북구의 아산로에서 인근 주유소까지 약 300m 거리를 혈중알코올농도 0.140%의 만취 상태로 운전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날 그는 지인들과 저녁 술자리를 가진 뒤 대리운전을 불러 집으로 가던 중 길 문제로 대리운전기사와 시비가 붙였다. A씨는 지리를 몰라 내비게이션을 보며 운전하는 대리기사에게 “길을 잘 모르느냐” “운전을 몇 년 했느냐” 등 운전능력을 의심하는 말을 했고, 두 사람 사이에 시비가 붙었다.

급기야 A씨는 화를 내며 “차에서 내리라”고 했고, 대리기사는 도로에 차를 세워놓고 가버렸다. A씨는 대리운전 업체에 전화해 다른 대리기사를 요청했으나, 보내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차가 정차한 곳은 갓길이 없는 편도 2차로였다. 경찰에 따르면 제한속도는 시속 70㎞이지만, 시속 80㎞로 지나는 차들도 적지 않은 곳이다. 당시에도 다른 차들은 A씨의 차 옆을 빠른 속도로 지나면서 경적을 울렸다. A씨는 직접 운전대를 잡고 근처 주유소까지 약 300m를 몰았다. A씨는 112에 전화해 “대리기사가 가버렸는데 위험할 것 같아 운전했다”고 스스로 신고했다.

울산지검은 혈중알코올농도 0.140% 상태로 차를 몬 A씨를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검사는 ‘(차를 이동시켜줄)지인이나 경찰에게 연락하지 않았으므로 긴급피난으로 볼 수 없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에게 선고하면서 “지인이나 경찰이 새벽 시간에 음주운전 차량을 이동해 줄 기대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높지 않으므로 검사의 의견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면서 “경찰에게 음주운전 차량을 이동시켜야 하는 업무까지 추가로 부과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새벽시간에 장기간 도로에 승용차를 정차할 경우 사고 위험이 상당히 높다”며 “사고 위험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만큼의 거리를 운전한 점, 이후 자발적으로 경찰에 신고해 음주운전 사실을 여과 없이 진술한 점 등에 비춰보면 긴급피난에 해당해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대리기사에게 화를 내면서 차에서 내리라고 말한 사정도 있지만, 이 사건 운전은 현재 위난을 피하기 위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행위에 해당하므로 위법성이 조각(阻却ㆍ성립하지 않음)된다”고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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