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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간 딸이 친정에 오자마자 펑펑 울었던 까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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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0)

시내로 나가는 길모퉁이에 사시는 할머니에게 가끔 안부 인사차 서너 마디 건넬 때면 늘 '엄마가 왜 이리 보고 싶노'라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하신다. [일러스트 김회룡]

시내로 나가는 길모퉁이에 사시는 할머니에게 가끔 안부 인사차 서너 마디 건넬 때면 늘 '엄마가 왜 이리 보고 싶노'라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하신다. [일러스트 김회룡]

시내로 나가는 길모퉁이에 사시는 할머니는 날마다 집 앞 길가에 앉아 오가는 차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계신다. 걸음도 잘 못 걸어 보행기를 끌고 다닌다. 가끔 안부 인사차 서너 마디 건넬 때면 늘 “엄마가 왜 이리 보고 싶노…”라며 눈엔 뚝 떨어질 듯 눈물 한 짐을 그렁그렁 매달고 계신다.

‘아흔이 다 되어가는 연세에도 엄마가 그리울까?’ 하는 내 메마른 가슴에 잠시나마 엄마 생각을 하게 해주는 어르신이다. 힘들고 지칠 때 엄마가 있다면 그게 힘이 될까? 내 아이들에게도 내가 그런 존재가 될까?

결혼한 딸 아이 친정에 오자마자 ‘엉엉’

언젠가 결혼해 시가에서 첫 명절을 보내고 다음 날 늦게 친정에 온 딸아이가 방에 들어오자마자 어린아이처럼 엎어져 엉엉 울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함께 온 사위가 놀랐다. 어디가 아픈가 물어도 대답도 하지 않고 울길래 나도 따라 울었다. 울면서 중얼거리는 말 중엔 “내가 시집을 가서... 괜히 가서... 엉엉” 이러길래 시집가자마자 마음고생을 하나 싶어 애가 탔다.

느닷없는 울음에 어이없는 표정으로 멀뚱멀뚱하게 바라보는 사위 앞에서 실컷 울더니 자기도 무안한지 ‘히히’ 웃는다. “왜? 무슨 일이냐?” 하고 물으니 결혼을 안 했으면 명절날 엄마 보러 바로 오는 건데 다음날 와야 하니 그게 서럽더란다. “시집가니 엄마·아빠는 내가 보고 싶을 건데 얼마나 외로울까 생각하니 속상하잖아. 그래서 보자마자 눈물 나잖아.”

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하는 중이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만큼 정신이 없는데 자기 자식 자랑에 다들 배고픈 줄 모른다. 왼쪽부터 며느리, 사위, 딸의 모습. [사진 송미옥]

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하는 중이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만큼 정신이 없는데 자기 자식 자랑에 다들 배고픈 줄 모른다. 왼쪽부터 며느리, 사위, 딸의 모습. [사진 송미옥]

이런 젠장! 아무것도 아닌 일로 불안·초조하게 서 있던 사위를 보기가 어찌나 민망하던지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시집이라고 보낸 곳이 멀기나 하나. 바로 옆 동네로 보냈으니 시간만 나면 화장실 가듯 시부모 몰래 들락거렸으면서도 시집을 가면 처녀 때와는 또 다른 애정의 굴레가 생기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나 역시도 그랬던 것 같다. 부모가 살기 바빠 날 생각할 틈이나 있었을까마는 마음속 싸한 바람이 불면 기다려 주지도 않는 친정 쪽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달려가고 싶던 것이 아니었던가. 엄마가 있는 곳….

밤새 미주알고주알 재미없는 이야기를 자기 혼자 재밌게 떠들던 딸아이. 그 아이가 어느새 세 아이의 엄마가 됐고, 나도 딸에게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엄마가 된 것 같다. 친정에 오면 일거수일투족을 집착하듯 확인하며 내 동선을 따라 다닌다. 가끔은 사랑받고 대우받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하기도 하지만 어느 땐 귀찮다.

오늘은 고추와 고구마를 세 고랑씩 심고 나니 한낮엔 날이 더워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린다. 하늘을 보니 구름 한 점 유유히 흘러가다가 잠시 해를 막아서서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마치 하늘에 계신 내 엄마가 내려다보며 “쉬었다 하려무나” 하는 것 같다. 선선한 바람에 한참을 멍하니 쉬었다. ‘나도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하루…. 힘들 때만 그러하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sesu3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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