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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약속 반은 지킨 셈"…김정일 위해 준비했던 그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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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찾았던 애스톤 하우스, DJ 땐 김정일 숙소로 준비 

이낙연 국무총리(오른쪽)가 지난 2월 11일 애스톤 하우스에서 북한의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왼쪽),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가운데)과 환담하고 있다. [사진 총리실]

이낙연 국무총리(오른쪽)가 지난 2월 11일 애스톤 하우스에서 북한의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왼쪽),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가운데)과 환담하고 있다. [사진 총리실]

지난 2월 11일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던 북한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일행이 찾은 곳이 서울 워커힐 호텔 애스톤 하우스였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이곳에서 환담과 오찬으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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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스톤 하우스는 대지 5280㎡, 연면적 1413㎡의 고급 빌라다. 1박 비용은 1500만원, 봉사료와 부가세를 더하면 1800만원에 달한다. 영화 ‘더킹’과 ‘공공의 적 2’, 드라마 ‘상속자들’과 ‘트라이앵글’,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 등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또 배우 심은하ㆍ김희선ㆍ정혜영, 박솔미-한재석, 이보영-지성 등 톱스타의 웨딩 장소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식통은 “애스톤 하우스는 김대중(DJ) 정부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서울 답방을 할 경우 가장 유력한 숙소로 꼽혔다”며 “김여정이 아버지(김정일)의 약속을 반(半)은 지킨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VIP 하우스’로 불렸던 애스톤 하우스는 2000년 전후 대대적인 개조 공사를 받았다”며 “김정일과 같은 국가원수급이 묵을 수 있는 각종 장비와 설비가 갖춰졌다”고 말했다.

애스톤 하우스. 한강이 내려다보인다. [사진 워커힐]

애스톤 하우스. 한강이 내려다보인다. [사진 워커힐]

2000년 6월 15일 북한 평양에서 열린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은 DJ에게 서울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답방 시기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당시 대대적인 개조 공사를 거친 애스톤 하우스를 직접 봤던 소식통이 전하는 이곳의 특수 장비와 설비는 이렇다. 방탄은 기본이었으며, 도청방지 특수 장비도 곳곳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는 또 “미국은 당시 레이저로 도청하는 장비를 갖고 있었다. 실내에서 사람이 대화를 나눌 경우 공기가 미세하게 떨리는 데 외부에서 레이저를 쏘면 그 진동을 감지할 수 있다”며 “애스톤 하우스의 유리창엔 이런 방식의 도청을 막을 수 있도록 특수 시공을 해놨다”고 말했다.

전직 SK그룹 관계자는 “애스톤 하우스가 김정일 답방 숙소로 준비됐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없다”면서도 “2000년대 초반 그룹의 행사장으로 주로 사용된 애스톤 하우스에 가봤을 때 각종 특수 장비와 설비가 돼 있어 ‘좀 과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 있다”고 말했다.

애스톤 하우스의 내부. 침실, 연회장, 바, 서재, 응접실 등이 있다. 수입 명품과 고급 가구, 미술품, 샹들리에로 장식됐다. [사진 워커힐]

애스톤 하우스의 내부. 침실, 연회장, 바, 서재, 응접실 등이 있다. 수입 명품과 고급 가구, 미술품, 샹들리에로 장식됐다. [사진 워커힐]

애스톤 하우스가 김정일 숙소로 유력하게 검토된 이유는 ▶풍수지리 ▶보안 ▶교통 등 때문이다. 아차산 자락에 있는 애스톤 하우스에선 한강이 내려다보인다.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ㆍ산을 등지고 물을 내려본다) 자리다. 서울에서 첫째, 둘째 가는 풍수의 명당이다. 경치도 수려하다.

또 애스톤 하우스로 들어가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길목만 차단하면 외부 침입을 쉽게 막을 수 있다. 김정일이 판문점을 거쳐 올 경우 자유로~강변북로를 타고 바로 들어올 수 있다. 천호대로를 거쳐 시내로 들어가기도 편하다. 소식통은 “이런 점들이 고려된 것 같다”고 말했다.

2000년 당시 북한과 막후 접촉을 맡았던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기억이 잘 안 난다”면서도 “북한 사람들이 경호가 용이해서 그런지 워커힐을 선호하기는 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의 말대로 한국을 방문한 북한 고위급들이 워커힐에 숙박한 사례가 많다. 김여정 일행 외에 평창올림픽 폐막식에 참석했던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일행도 워커힐의 스위트룸에 묵었다. 1985년 이산가족 고향방문단과 2000년 1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도 워커힐에서 열렸다.

애스톤 하우스의 전경. [사진 워커힐]

애스톤 하우스의 전경. [사진 워커힐]

그런데 워커힐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는 아이러니한 일이다. 워커힐은 6ㆍ25전쟁 때 호텔 인근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월튼 워커 미8군 사령관의 이름을 땄다. 워커 사령관은 특유의 뚝심으로 북한으로부터 낙동강 전선을 방어한 인물이다.

호텔은 1963년 만들어졌다. 당시 한국에 적당한 위락시설이 없어 주한미군이 일본으로 휴가를 간다는 사실을 듣게 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재가를 받아 ’동양의 라스베이거스‘로 지었다. 1972년 선경그룹(지금의 SK그룹)이 인수하기 전까지 국제관광공사가 운영했다. 탄생부터 중앙정보부의 입김이 강했고, 한동안 고위급 탈북자를 심문하는 안가(안전가옥) 시설이 있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의장대 행렬 도중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청와대에 오면 훨씬 좋은 장면을 보여줄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아 그런가. 대통령이 초청하면 언제라도 청와대에 가겠다”라고 답했다. 아들(김정은)이 아버지(김정일)의 약속을 온전히 지킬 날이 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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