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윤석만의 인간혁명]어벤져스 악당 '타노스'를 위한 변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마블 10년, 최강 빌런의 남다른 철학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사상 최강의 악당 타노스와 맞서 싸우는 히어로들의 이야기다. [영화 어벤져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사상 최강의 악당 타노스와 맞서 싸우는 히어로들의 이야기다. [영화 어벤져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인기가 하늘을 찌릅니다. 이번 주말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아바타’에 이어 역대 외화 중 관객 수 2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 세계적으로는 개봉 11일 만에 11억6000만 달러(약 1조 2500억 원)을 벌어들이며 최단 기간 최대 흥행의 역사를 썼습니다. 그 인기는 아직도 식을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관객들이 높은 성원을 보내는 데에는 기존의 어벤져스 멤버들의 인기도 한 몫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사상 최대의 악당인 타노스의 매력 때문이 아닐까요. 악당이면서도 고뇌하는 새로운 캐릭터죠. 무자비하고 절대악일 것만 같던 그에게도 딸을 향한 부성애가 짙게 배어 있고, 또 지구를 파멸시키려는 목적에는 그 어떤 악당보다도 진지한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죠.

 그렇다면 타노스가 지구의 인간들을, 나아가 우주의 수많은 행성과 그 곳의 종족들을 해치려는 이유는 뭘까요? 단순히 그들을 지배하고 싶은 권력욕 때문이 아닙니다. 물질적인 이득을 취하겠다는 목적도 아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노스가 사상 최대의 악당이 된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그럼 잠시 ‘어벤져스’의 세계로 들어가 볼까요.

어벤져스 최고의 악당 타노스. [영화 어벤져스]

어벤져스 최고의 악당 타노스. [영화 어벤져스]

 타노스는 우주가 처음 만들어질 때 생성된 인피니티 스톤 6개를 모두 모으면 신과 같은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게 됩니다. 제일 먼저 치타우리 행성에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 마인드 스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 곳을 쳐들어가 마인드 스톤이 탑재된 치타우리 셉터라는 무기를 손에 넣습니다. 그리고 치타우리 종족 전체를 자신의 군대로 삼아 다른 행성들을 공격하죠.

 그 때 마침 수천년 전 오딘이 잃어버린 스페이스 스톤이 지구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때 타노스는 ‘사고뭉치’였던 오딘의 양아들 로키와 검은 거래를 합니다. 군대를 빌려준 후 스톤을 찾아오면 지구를 지배하게 해주겠다고 한 것이죠. 그러나 로키는 어벤져스 멤버들에게 밀려 실패합니다. 여기서 어벤져스 1탄의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타노스의 명령으로 지구를 쳐들어 온 로키. [영화 어벤져스]

타노스의 명령으로 지구를 쳐들어 온 로키. [영화 어벤져스]

 이후 스페이스 스톤을 오딘이 다시 가져가려 했지만, 이번엔 지구의 악당 히드라의 손에 넘어갑니다. 히드라는 스톤의 힘을 이용해 퀵실버와 스칼렛 위치라는 ‘빌런(villain·악당)’ 남매를 탄생시키고 또 다시 어벤져스와 전쟁을 벌입니다. 어벤져스는 이번에도 지구를 지켜내는데 성공하고 스톤은 안전하게 오딘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어벤져스 2탄)

 하지만 어벤져스 멤버들은 한쪽에선 영웅으로 추앙받지만 다른 한편에선 무서운 능력을 지닌 괴물로 지탄받습니다. 미국 정부는 어벤져스가 국가의 뜻에 따를 것을 명령합니다. 하지만 어벤져스는 이에 순응하는 아이언맨과 반대하는 캡틴 아메리카 두 진영으로 나뉘어 내분을 일으키죠.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어벤져스 멤버들이 반목하는 사이 아스가르드 행성에선 신들의 왕이었던 오딘이 죽는 비극이 벌어집니다. 그러자 어둠의 세력으로 오딘이 가둬두었던 그의 딸 헬라가 부활해 행성을 파괴하려 하죠. 이에 맞서 남동생인 토르가 싸워 헬라를 무찌르지만, 그와 함께 아스가르드 역시 파괴됩니다. 이후 아스가르드인들은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향하죠. (토르: 라그나로크)

신들의 제왕인 오딘의 딸 헬라, 토르의 누나다. [영화 토르]

신들의 제왕인 오딘의 딸 헬라, 토르의 누나다. [영화 토르]

 이 때 타노스는 우주선을 공격해 스톤을 빼앗고 지구로 쳐들어갑니다. 지구에선 닥터 스트레인지가 자신이 지니고 있는 또 하나의 스톤을 지키려 하죠. 그가 갖고 있는 타임 스톤을 이용해 어벤져스 멤버들과 함께 타노스와 맞서 싸웁니다. 여기엔 새롭게 어벤져스 멤버로 편입된 블랙팬서와 스파이더맨도 전력을 보탭니다. (닥터 스트레인지, 블랙팬서, 스파이더맨 홈커밍)

 여기까지가 지난 10년 간 개봉한 마블 영화들의 핵심 스토리입니다. 그리고 이번 어벤져스 3탄에서는 악의 배후에 있던 타노스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어벤져스 멤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런데 타노스가 이처럼 무자비한 살육을 벌이는 이유는 뭘까요? 도대체 그는 인피니티 스톤 6개를 모두 모아서 어떻게 하려는 걸까요?

 사실 타노스가 처음부터 악당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원래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타이탄 행성에 살고 있었습니다. 눈부신 과학문명을 자랑했던 타이탄은 오히려 지나친 기술의 발전으로 멸망 위기에 몰렸죠. 자원 고갈과 인구 폭발 문제를 해결할 뾰족한 방법을 찾을 수 없던 것입니다.

6개의 인피니티 스톤을 모두 모은 타노스. [영화 어벤져스]

6개의 인피니티 스톤을 모두 모은 타노스. [영화 어벤져스]

 급진주의자였던 타노스는 행성의 멸망을 막기 위해선 발전된 과학기술을 오히려 다운그레이드 하고,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을 따지지 말고 인구의 절반을 죽이자는 과격한 제안을 합니다.

 하지만 타이탄인들은 그런 타노스를 영원히 우주로 추방합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른 후 타이탄 행성은 결국 타노스의 예측대로 멸망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타이탄 행성의 유일한 생존자로 남게 되죠. 그러고는 큰 결심을 합니다. 타이탄에서 있었던 인구 증가와 자원 고갈의 문제를 다른 우주에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때부터 타노스는 우주를 지켜야 한다는 자기 확신의 사명감을 갖습니다. 발달된 과학문명을 갖고 있는 행성을 쳐들어가기 시작한 거죠. 온 우주를 떠돌아다니며 각 행성에서 살육전을 벌였습니다. 그러던 중 6개의 스톤을 모으면 이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죠.

마블 시리즈의 악당 중 가장 고민이 많은 빌런 타노스. [영화 어벤져스]

마블 시리즈의 악당 중 가장 고민이 많은 빌런 타노스. [영화 어벤져스]

 이렇게 보면 타노스는 기존의 악당과는 무언가 다릅니다. 대부분 악당은 자신의 권력욕을 충족시키거나 물질적 소유욕을 채우기 위해, 또는 사적인 복수를 하기 위해 악행을 벌입니다. 하지만 타노스는 우주의 멸망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숭고한’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코믹스 원작에선 영화와 달리 죽음의 여신 ‘데스’의 사랑을 얻기 위해 스스로 신이 될 목적으로 스톤을 모읍니다)

 타노스와 비슷한 목적을 가진 악당이 다른 영화에도 존재합니다. 바로 ‘킹스맨’입니다. 지구 최악의 빌런 발렌타인 역시 지나친 인구 증가로 인해 지구가 멸망 위기에 이르렀다고 진단합니다. 세계 최대의 갑부인 그는 전 세계인이 휴대폰을 공짜로 쓸 수 있게 해주고, 미리 휴대폰에 심어놓은 프로그램으로 두뇌를 조종해 인간들이 서로 죽이도록 만듭니다. 물론 영국식 ‘젠틀맨 히어로’ 킹스맨들의 활약으로 그의 계획은 실패로 끝나고 말지만요.

인류의 99%를 멸종시키려는 악당 발렌타인과 그를 막는 킹스맨. [영화 킹스맨]

인류의 99%를 멸종시키려는 악당 발렌타인과 그를 막는 킹스맨. [영화 킹스맨]

 유명 작가 댄 브라운의 소설이면서 영화로도 제작돼 큰 인기를 얻은 ‘인페르노(지옥)’도 같은 문제의식을 보입니다. 천재 과학자인 악당이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인류는 큰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맬서스의 말을 맹신하면서 지구를 지킬 묘책을 내놓죠. 그것은 다름 아닌 인류의 3분의 1을 몰살시킬 수 있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개발하는 일입니다. 작품은 인간을 죽이려는 악당과 이를 막으려는 로버트 랭던 박사의 두뇌 싸움을 그렸습니다.

 이처럼 인구 과잉과 자원 고갈 문제를 다룬 소설과 영화가 최근 많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와 같은 소재가 인기를 끄는 것은, 실제로 우리들의 마음속에 이런 일들이 현실화 될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사피엔스)에 따르면 지구상에 인간이 처음 나타나 전 세계 인구가 1억명에 도달한 것은 기원전 5세기의 일입니다. 그리고 2배가 되는 데는 1000년이 걸렸습니다. 다시 세계 인구가 10억 명이 된 것은 19세기 초입니다. 여기서 다시 2배(20억 명)가 되는 데는 100년(20세기 초)이 소요됐습니다. 그리고 100년이 더 지난 지금은 4배(2025년 80억명, UN경제사회국)가 될 전망입니다.

 인구가 많아진 것도 모자라 인간이 쓰는 에너지도 엄청 증가했습니다. 석기시대 인간 1명이 쓰는 에너지는 4000칼로리였습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22만8000칼로리(미국인 1인 기준)를 사용합니다. 에너지의 원천인 지구의 자원을 과거보다 인간 1명이 60배가량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여기에 인간의 숫자가 크게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지구의 자원은 ‘타노스의 걱정’처럼 곧 고갈될 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생태환경 초과일(Earth Overshoot Day)’은 갈수록 앞당겨지고 있습니다. 이는 1년간 지구가 제공하는 생태자원을 모두 써버린 날짜를 뜻합니다. 지구 45억년 역사상 처음 초과일을 맞이한 것은 1970년(12월31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갈수록 이 날짜는 빨라져 2017년엔 8월2일이었습니다. 언젠가는 이 날짜가 6월, 5월이 되고 급기야는 1월이 될 수도 있겠죠.

.

.

 그 뿐만이 아닙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인간은 무분별하게 지구에 생채기를 내며 다른 생물 종을 멸종시키고 있습니다. 세계자연기금(WWF)과 런던동물학회(ZSL)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척추동물은 종별로 평균 58%씩 줄었습니다. 이런 흐름이라면 2020년에는 전체 동물 종이 현재의 3분의 1로 줄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또 지구 표면을 거미줄처럼 이어 놓은 도로는 지구 생태계를 갈라놓고 고립된 섬처럼 쪼개 놓습니다. 2017년 ‘사이언스’ 지에 따르면 지구상에는 약 3600만㎞의 도로가 존재하는데, 이는 생태계를 60만 개의 조각으로 갈라놓았습니다. 더욱 심각한 건 1㎢ 미만의 좁은 땅 조각들이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는 것이죠. 큰 조각은 아직 인간의 손길이 덜 한 극지방과 시베리아, 아마존 등뿐입니다. 인간에겐 편한 도로가, 지구 입장에선 찢어진 상처와 같은 것이죠.

 무분별한 인간의 개발 활동은 자연재해 가능성까지 높입니다. 지난해 발생한 포항 지진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아직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진 않았지만 일각에선 인근의 지열발전소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실젤 스위스 바젤에선 지열발전소가 지진 활동을 촉진시켜 문을 닫은 사례도 있고요. 세계 재해 통계에 따르면 1940년 20여 건에 불과했던 큰 자연재해가 2000년대 이후 400건 대로 증가했습니다. 인간의 지나친 환경 훼손과 개발로 인해 지구에 무리를 가하고 결과적으로 재해를 일으킨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쓰레기 분리배출 문제로 큰 혼란이 있었습니다. 중국이 더 이상 폐기물 수입을 안 하겠다고 하면서 비상이 걸린 것이죠. 플라스틱과 비닐 등을 수거하지 않아 쓰레기 대란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일회용 플라스틱은 2016년 전 세계에서 4800억 개가 생산됐습니다. 분당 100만개 꼴입니다. 플라스틱은 생물학적으로 분해되기까지 450년가량이 걸리지만, 재활용 수거율은 50%도 안 됩니다. 그 중 새 병으로 재탄생하는 비율은 7%에 불과하고요. 특히 한국은 색소가 들어간 PET 병이 유난히 만고, 비닐을 이용한 과다 포장 문제 등 일회용품 사용에 있어선 후진국입니다.

 이런 쓰레기들이 모여 태평양 한 가운데에는 거대한 플라스틱 섬(Great Pacific Garbage Patch)이 생겨났습니다. 버려진 쓰레기들이 해류와 해풍을 타고 바다 한 가운데 모여 쌓인 것이죠. 현재 면적은 70만k㎡로 한반도(22만k㎡)의 3.2배에 달합니다. 매일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만큼 매일 넓어지고 있죠.

 프랑스의 인기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제3 인류’라는 작품에서 살아있는 지구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지구를 오염시키고 무분별하게 개발할 때 지진과 해일, 허리케인 등을 일으켜 경고한다는 것이죠. 자연재해가 곧 인간에게 전하는 지구의 메시지란 뜻입니다. 물론 우리는 지구의 말을 들을 순 없지만, 어쩌면 자연은 그동안 우리에게 수많은 경고를 해왔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인류는 아직도 지구를 아프게 하는데 익숙합니다. 한편에선 이에 대한 우려가 타노스와 같은 상상 속의 악당을 만들어 내는 것이고요. 지금과 같은 환경오염과 자원 고갈 문제가 더 심해진다면 타노스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실제로 생겨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의 방식은 잘못됐지만, 그의 문제의식까지 틀린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2019년 개봉하는 어벤져스 4탄에서 타노스의 우주 장악 의도가 어떤 결말을 맺을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지나친 개발과 이로 인한 지구 오염의 문제는 우리가 꼭 깊이 있게 생각해봐야할 주제입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윤석만의 인간혁명] 더 보기

#홈페이지(http:www.joongang.co.kr/issueseries/1014)

윤석만 기자는

 윤 기자는 2010년부터 교육 분야를 취재했다. 특히 인성·시민 교육 및 미래와 관련한 보도에 집중했다. 성적·스펙보다 협동·배려·공감 등의 인성역량이 핵심능력이 될 것이란 주제로 ‘휴마트(humanity+smart) 씽킹’이란 책을 냈다. 더불어 다가올 미래를 인문의 관점에서 통찰한 '인간혁명의 시대'를 썼다. 유네스코가 15년마다 주최하는 세계교육포럼에서 세계시민교육 심포지엄 기조발표를 했다. 중앙인성연구소 사무국장을 겸임중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