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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잘 됐어요" 의사 말, 환자는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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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유재욱의 심야병원(18) 

얼마 전 오랜만에 제주에 다녀왔다. 제주에서 첼로연주를 할 기회가 생겼는데, 첼로를 갖고 비행기를 타는 것은 절대 만만치 않다. 기내에 들고 들어가자니 좌석을 한 자리 더 사야 하고, 화물칸에 부치자니 악기가 파손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마침 제주에 사는 첼로 동호회의 한 분이 흔쾌히 본인의 첼로를 빌려주기로 해 실례를 무릅쓰고 집으로 찾아가게 됐다. 웃는 얼굴이 멋진 신사분은 처음 보는 자리인데도 오래된 벗처럼 반갑게 맞아주셨다.

제주도에서 첼로연주를 할 기회가 생겨 같은 동호회 회원의 첼로를 빌렸다. [사진 유재욱]

제주도에서 첼로연주를 할 기회가 생겨 같은 동호회 회원의 첼로를 빌렸다. [사진 유재욱]

"제주도는 항상 바람이 많이 불어요."
"그 덕분에 미세먼지도 없고 항상 공기가 깨끗하죠"
"기회가 되면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라는 곡을 연주해 주세요. 제주 분위기에 딱이거든요"
"네 알겠습니다. 서울 올라가면 한번 연습해 볼게요."

지금 대한민국에는 큰바람이 불고 있다. 화합과 평화의 바람이다. 이 바람이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는 쓸쓸한 바람이지만 한반도에 부는 바람은 '신바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허리디스크 수술 하나 안 하나 똑같다는 할아버지

오늘 환자는 서귀포에서 온 할아버지다. 서귀포에서 바닷가가 보이는 예쁜 펜션을 운영하고 있단다.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허리가 아픈 것 말고는 건강해 보인다.

"내가 MRI를 찍어보니까 허리디스크라고 하더라고.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해서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 하나 안 하나 똑같아. 하나도 안 나았어."

"어르신, 수술하고 나서 좀 좋아졌다가 점점 나빠져서 똑같아졌나요? 아니면 수술하기 전과 비교했을 때 하나도 달라진 게 없나요?"

환자가 치료했는데도 증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할 때 내가 항상 물어보는 질문이다. 만약 치료 전후의 증상이 전혀 달라지지 않고 똑같다면 진단이 잘못돼 엉뚱한 부위를 치료했거나, 아니면 치료방법의 선택에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 증상이 좋아지기는 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면 진단이 틀렸다기보다는 기존의 치료방법을 반복할지, 아니면 좀 더 강한 치료법을 고려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아니야. 하나 안 하나 똑같은 것 같아. 수술은 잘 됐다고 얘기를 들었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
"수술이 잘됐다고 해서 반드시 낫는 것은 아니에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수술이 잘됐다고 해서 반드시 낫는 것은 아니다. [중앙포토]

수술이 잘됐다고 해서 반드시 낫는 것은 아니다. [중앙포토]

유재욱의 한마디

의사와 환자 간에 생각이 다른 3가지 경우

1. 뼈에는 이상이 없다

의사 : 엑스레이상 뼈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니 다른 원인이 있는지 찾아봐야 한다
환자 : 아 다행이다. 별 이상이 없구나

허리, 어깨, 무릎이 아파서 병원에 가면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가장 흔히 듣는 말이다. 의사는 말 그대로 엑스레이상에는 나타나는 이상소견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엑스레이 검사에는 뼈만 나타나고 근육과 인대, 신경은 안 나타난다. 뼈에는 이상이 없으니 이제부터 근육이나 인대에 문제가 있는지 찾아보겠다는 뜻이다. 환자는 이상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진단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한편으로 어제 허리가 삐끗한 것이 엑스레이상에 이상이 나타날 리도 만무하다. 무거운 것을 들었다고 뼈가 부러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마찬가지로 척추가 휘어있거나 퇴행성변화가 보인다고 해도 어제 생긴 허리통증의 원인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런 소견은 아마도 몇 달 전에 찍었어도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2. MRI 상에 허리디스크가 보인다

의사 : MRI를 찍어봤더니 허리디스크가 튀어나와 있다. 그러나 이 소견이 허리통증의 원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환자 : 내가 허리 아픈 것이 허리디스크 때문이구나.

MRI 상 허리디스크가 튀어나와 있다고 해서 지금 내 허리통증이 허리디스크 때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허리가 안 아픈 정상인의 허리 MRI를 찍어봐도 허리디스크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MRI 상 디스크가 튀어나와 있다 할지라도, 의사가 환자의 증상을 듣고 손으로 만져서 허리통증의 원인이 허리디스크 때문인지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사가 MRI만 보고 환자를 만져보지 않은 체 진단을 한다면 진단이 틀릴 가능성이 있다.

3. 수술은 잘됐다

의사 : 수술 과정이 큰 실수 없이 잘 끝났다.
환자 : 후유~ 이제 완치되겠구나

예를 들어 튀어나온 허리디스크를 제거하는 수술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수술이 목적했던 대로 깔끔하게 끝났을 경우 의사들은 ‘수술은 잘됐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수술이 잘 된 것이 질병의 완치를 보장하지 않는다. 환자가 가진 병이 얼마나 깊이 진행되느냐에 따라서 수술이 잘됐어도 통증이 남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수술을 결정하기 전에 수술을 통해 나의 증상이나 기능이 어느 정도까지 회복할 수 있는지 반드시 물어봐야 한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생각의 차이가 있는 경우가 있다. 서로 간에 오해가 있으면 기대가 커지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불만이 쌓인다. 의사와 환자가 치료의 목적과 기대치에 대해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한 후에 치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유재욱 재활의학과 의사 artsme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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