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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철의 車브랜드 스토리⑥마세라티] 배기음도 ‘작곡’하는 자동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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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엔진 사운드 디자인 담당.
이런 특이한 일만 공식적으로 하는 사람들을 보유한 자동차 회사가 있습니다. 이탈리아 자동차 브랜드 마세라티입니다.

마세라티. [사진 마세라티]

마세라티. [사진 마세라티]

엔진 사운드 디자인 담당자는 말 그대로 자동차 엔진 소리를 만드는 일에 관여하는 사람입니다. 피아니스트·작곡가·튜닝 전문가와 공동으로 자동차의 분당회전수(rpm)를 높여가며 들리는 엔진 소리를 악보에 그리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배기음을 ‘작곡’하는 셈이죠.

마세라티 2018년식 뉴 기블리. [사진 마세라티]

마세라티 2018년식 뉴 기블리. [사진 마세라티]

요즘에도 차량 배기음에 관심을 갖는 자동차 브랜드는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마세라티는 다른 자동차 제조사가 배기음을 ‘소음’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100여년 전부터 배기음을 작곡하고 있습니다. 지난 100년 동안 많은 자동차 애호가가 마세라티의 엔진음을 듣고 설레던 배경입니다. 전설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마세라티 배기음 애호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마세라티 2018년식 르반떼. [사진 마세라티]

마세라티 2018년식 르반떼. [사진 마세라티]

마세라티의 아름다운 엔진 소리는 자동차업계에서 보기 드물게 연구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2012년 일본 시즈오카 소재 사운드디자인라보합동회사와 추오대학 이공학부 음향시스템연구실은 ‘엔진음 쾌적화 프로젝트’라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마세라티 배기음의 매력을 증명하려는 연구과제였죠.

연구진은 마세라티의 대표적인 차종인 콰트로포르테 엔진 곳곳에 센서를 설치하고 주파수를 분석했습니다. 또 배기음이 들릴 때 이 소리를 듣는 피실험자의 심박수·혈류량 등을 측정했습니다.

연구진은 다음에는 피실험자들에게 5대의 바이올린 소리를 들려줬습니다. 그리고 콰트로포르테 엔진과 가장 유사한 바이올린을 선택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마세라티 2018년식 콰트로포르테. [사진 마세라티]

마세라티 2018년식 콰트로포르테. [사진 마세라티]

결과적으로 피실험자들은 5대의 바이올린 중 가장 전설적인 바이올린인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놀라운 일이지요. 스트라디바리우스는 가문비나무로 만든 명품 바이올린인데 수십억 원을 호가합니다. 사람들은 마세라티의 배기음을 최고급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것과 비슷하게 느낀 겁니다.

마세라티. [사진 마세라티]

마세라티. [사진 마세라티]

마세라티는 배기음과 함께 로고가 유명합니다. 마세라티를 상징하는 트레이드 마크인 삼지창 로고는 창업주 알피에리 마세라티(Alfieri Maserati)의 동생 마리오 마세라티(Mario Maserati)가 1926년에 고안했습니다. 예술가였던 마리오 마세라티가 직접 디자인한 이 로고는 과거 마세라티 공장이 있던 이탈리아 볼로냐의 마조레 광장에 있는 조각상에서 차용했습니다. 당시 이 광장에는 거대한 넵투누스(Neptunus·포세이돈) 조각상이 서 있었는데, 그가 들고 있던 삼지창을 보고 마리오 마세라티가 마세라티의 로고를 디자인했습니다.

레이싱 대회에 출전한 마세라티. [사진 마세라티]

레이싱 대회에 출전한 마세라티. [사진 마세라티]

물론 마세라티가 단지 배기음과 로고만으로 유명해진 것은 아닙니다. 마세라티의 시작은 19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창립자 오피치네 알피에리 마세라티는 레이싱 드라이버이자 자동차 엔지니어였습니다. 이탈리아 자동차회사 이소타 프라스키니의 지사를 아르헨티나·미국·영국에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마세라티 최초의 오피스. [사진 마세라티]

마세라티 최초의 오피스. [사진 마세라티]

그는 1914년 볼로냐의 구도심(비아 데 페폴리)에 사무실을 개소합니다. 이 장소는 훗날 마세라티 본사가 됩니다. 여기 터를 잡은 그는 레이싱 드라이버로서 자신이 만든 차를 타고 레이싱 대회에 출전하는데, 수많은 대회에서 다수의 우승을 거머쥐게 됩니다.
레이싱 대회 강자로 부상한 마세라티는 이후 기술 개발에 집중해 획기적인 엔진을 개발했습니다.

레이싱 대회에 출전한 마세라티. [사진 마세라티]

레이싱 대회에 출전한 마세라티. [사진 마세라티]

예컨대 1929년 세계 최초의 수퍼카인 ‘V4’에는 마세라티가 개발한 16기통의 초대형 엔진을 장착했죠. 티포26B(Tipo 26B)의 8기통 엔진 2개를 연결한 16기통 엔진이었습니다.

280마력이 넘는 V4가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거머쥐면서, 마세라티 브랜드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의 피아트·부가티·알파로메오 등 수많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이 엔진 제작 기술을 따라잡으려 노력했지만 결국 V4 모델의 엔진을 넘어서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오피치네 알피에리 마세라티는 이밖에도 메시나컵·컨스트럭터챔피언쉽·크레모나그랑프리 등 다수의 레이싱 대회에서 우승합니다.

F1 레이싱 대회에 출전한 마세라티. [사진 마세라티]

F1 레이싱 대회에 출전한 마세라티. [사진 마세라티]

마세라티가 두각을 드러내자 마세라티 레이싱팀에는 유명한 레이서들이 대거 몰려듭니다. 예컨대 윌버 쇼, 판지오, 곤잘레즈, 마리몬, 보네토, 드 그라펜리에드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유명 레이싱 드라이버가 합류하면서 마세라티는 성능으로 유명한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1957년 오피치네 알피에리 마세라티가 레이싱계에서 은퇴하면서 시판용 차량 생산·판매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1962년 세브링(Sebring)을 출시했고, 1963년에는 4136cc 배기량의 90° V8 엔진을 탑재한 세단 콰트로포르테를 선보였습니다. 지금도 세대를 거듭하며 생산하고 있는 콰트로포르테는 스포츠카에 버금가는 고성능과 편안한 주행감을 결합한 럭셔리 스포츠 세단이라는 장르를 개척했습니다.

차량 측면에 위치한 마세라티 로고. [사진 마세라티]

차량 측면에 위치한 마세라티 로고. [사진 마세라티]

레이싱계에서 마세라티는 여전히 저명한 브랜드입니다. 2005년부터 현재까지 매뉴팩처러스컵(2개)·드라이버타이틀(4개)·팀타이틀(5개)·사이테이션컵(1개) 등 15개의 타이틀을 획득하고, 스파 24시간 레이싱 대회에서 3번 우승했습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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