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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궁 홍씨의 회갑상을 재현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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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3호 06면

『수라일기』 펴낸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장

전통은 과거에 갇힌 박제가 아니라 생물이다. 후대가 얼마나 발견하고, 재현하고, 발전시키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진다. 이를 증명하는 이가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장이다.

조선 왕조 궁중 음식 제3대 기능 보유자인 그의 손에서 전통은 살아 숨쉬곤 했다. 2000년 남북 정상 회담, 2005년 부산 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중요 국가 행사 때마다 메뉴를 자문했고, 2004년 드라마 ‘대장금’에서 궁중 음식을 재현한 이력도 있다. 고종과 순종을 모셨던 마지막 주방 상궁 고(故) 한희순(제1대 기능보유자, 1889~1971) 선생, 그리고 그 뒤를 이은 고(故) 황혜성(제2대 기능보유자, 1920~2006) 선생의 맏딸이라는 점에서 이는 숙명적 과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축하하기 위해 봉수당진찬에 차린 찬안상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축하하기 위해 봉수당진찬에 차린 찬안상

그는 전통 음식이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한 민족의 삶과 철학을 반영한다는 믿음으로 궁중문화 재현 행사는 물론 저술 활동에 매진하기로 유명하다. 최근에도 책을 냈는데, 바로 『수라일기(전 2권)』다. 정길자 궁중병과연구원장, 궁중음식연구회(국가무형문화재 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기능 이수·전수자 모임) 멤버 등 20여명이 함께 힘을 쏟았다. 1795년 조선 22대 왕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를 벌이기 위해 화성에 다녀온 8일 동안 혜경궁에게 올린 수라상과 음식에 대한 내용을 다룬 책으로,『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가 바탕이 됐다. 이 의궤는 그간 역사학자뿐 아니라 복식과 음식 등 생활문화 관련 연구가들이 다양하게 연구한 자료지만, 음식을 총체적으로 다룬 연구는 이번 신간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할 만하다.

한 원장을 비롯한 공저자들은 특히 ‘권4 찬품편’을 파고 들었다. 권4 찬품편은 행차 동안 혜경궁과 정조, 수행원 등 수천 명이 먹은 음식에 대한 기록을 담은 것으로, 수년 간 이를 낱낱이 분석하며 혜경궁의 음식상을 중심으로 한 19개의 상차림과 정조·수행원의 상차림을 다룬 6개의 상차림을 재현했다. 여기에 315가지 궁중음식 조리법까지 고스란히 담겨 그야말로 방대한 식문화 자료집이라 할 만하다. 한 원장 스스로 서문에서 “한문으로 된 의궤의 복사본이 나달나달해질 때까지 수시로 들춰 봤다”면서 “들여다보면 볼수록 궁중 식문화에 너무나 많은 지식과 정보가 담겨 있음을 알게 됐다”고 밝힐 정도다.

혜경궁 홍씨가 받은 조다소반과 상차림

혜경궁 홍씨가 받은 조다소반과 상차림

출간과 때맞춰 행사도 열린다. 18일 서울 원서동 궁중음식연구원에서 마련되는 궁중잔치 ‘경사로소이다’다. 한 원장이 이끄는 궁중음식연구원이 주최하는 조선왕조 궁중음식 공개 행사로, 관련 연구자뿐 아니라 일반인도 전통 음식을 접해 볼 기회다. 올해는 1892년 고종 어극(御極·임금의 자리에 오름) 30년 축하 외진연에 나타난 미수상의 구미를 모두 완성, 9가지 상차림을 보여줄 예정이다. 또 우리음식을 문화로 예술로 지켜 온 네 명을 한식예술장인으로 지정해 특별전을 연다. 이와함께 『수라일기』속 몇 가지 음식을 재현하고 체험하는 시간도 마련했다. 18~19일 양일간 사전 신청자들과 함께 ‘녹두장음잡채(숙주나물잡채)’와 초계탕을 만들어본다.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 궁중음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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