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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견뎌낼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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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지난달 29일 베트남 하노이 국립컨벤션센터는 오전 6시부터 끝 아득한 장사진을 이뤘다. 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디스플레이·삼성SDI·삼성SDS 베트남 법인 신입사원 시험에 3243명이 몰려들면서다. 이곳의 삼성 대졸 초임은 다른 기업보다 10~15% 많은 1100만동(약 52만원)이다. 그러니 공과 계열 학생이 가장 가고 싶은 선망의 기업 1위에 꼽힌다.

끝 아득한 수험생 행렬로 해외에선 환호 … 한국은 집단 ‘배싱’ #태생만 한국인 글로벌 기업 이렇게 다뤄선 일자리 손해볼 뿐

하지만 한국에선 딴판이다. 지금 삼성그룹은 한국에서 ‘공공의 적’인 양 집단 배싱을 당하고 있다. 그 ‘사유’는 줄잡아 열 개가 넘는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특검은 삼성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뇌물을 제공했다고 기소했다. 법원은 2심에서 이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무노조 경영도 빌미가 되고 있다. 검찰은 삼성전자서비스가 노조 파괴 활동을 했다면서 수사를 벌여왔다. 법원은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인 반도체 공정이 산업재해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반도체 생산 공정을 공개하라는 압박도 게세다. 시민단체와 고용노동부는 파상 공세를 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압박도 끝없다. 삼성그룹 총수를 이 부회장으로 지정하고 순환출자 해소를 재촉하고 있다. 경영 투명성을 높이라는 것이지만 급격한 지배구조 개편은 기업 경영을 어렵게 한다. 이는 투자 위축으로 이어진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처분 압박은 법적 근거도 없이 몰아붙이고 있다. 보험업법상 취득원가로 계산하게 돼 있는 계열사 주식을 갑자기 시가로 바꿔 처분하라니 삼성생명은 당혹스럽다. 요컨대 삼성생명은 “못하겠다”가 아니라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시가 20조원이 넘는 대규모 주식을 매각하면 경영 차질은 물론이고 시장 충격도 크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제기해 온 김기식 전 금감원장이 보름 만에 물러나자 이번에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압박 바통을 이어받았다.

삼성바이로직스(삼바) 문제는 참여연대의 제기로 정부가 기존 입장까지 뒤집고 있다. 금감원은 삼바에 대한 감리를 완료해 지난 1일 조치사전통지서를 회사와 감사인에게 이메일로 통보했다. 삼바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바꾸면서 3000억원이던 지분가치가 단숨에 4조8000억원으로 불어난 것은 회계사기라면서다. 국내 3대 회계법인의 검토와 공인회계사회의 감리를 거쳐 당시 금감원도 승인한 결과를 번복한 것이다.

삼성합병(삼성물산·제일모직)은 적폐로 낙인찍혔다.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한 것은 당시 박근혜 정부의 압력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투기자본의 공격을 자초하고 있다. 2015년 합병을 반대했던 엘리엇은 지난달 13일 “삼성합병으로 손해를 봤다”며 법무부에 투자자·국가간 소송(ISD) 의향서를 제출했다.

사실 바깥 사정은 더 심각하다. 삼성 스마트폰의 중국 시장점유율이 0~1%대로 전락했다. 미래 시장인 인도 1위 자리도 지난해 4분기부터 중국 업체들에 내줬다. 유일한 비교우위 산업은 반도체뿐이다. 하지만 중국과의 거리가 좁혀지고 있다. 중국은 ‘중국제조 2025’의 핵심 전략으로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 달성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반도체펀드 3000억 위안(약 51조원)을 추가 조성해 삼성전자를 맹추격하고 있다. 삼성의 아성이 무너질 날도 멀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매출의 87%를 해외에서 올린다. 태생만 한국이지 글로벌 기업이다. 이런 구조에서 전방위 흔들기가 계속되면 해외 진출이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삼성은 경북 구미 휴대전화 공장을 2008년 베트남으로 옮겼다. 그만큼 한국은 일자리를 잃었다. 삼성을 때리기만 할 게 아니라 기업의 가치와 역할을 함께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삼성도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고용 창출을 통해 국내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노력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무차별적인 질시와 반감을 견뎌내고 초우량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