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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백 년' 지리산 구상나무 기후변화에 수명도 크게 줄어

중앙일보

입력

지리산 반야봉 동쪽 사면의 구상나무 고사목들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 반야봉 동쪽 사면의 구상나무 고사목들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는 주목처럼 '살아 백 년, 죽어 백 년'으로 불리는 구상나무. 100년 수명의 구상나무가 죽어서도 고산지대의 고사목이 돼 100년을 버틴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구상나무도 기후변화 탓에 생육이 부진해지고 수명도 크게 단축된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지리산국립공원 반야봉 일대의 구상나무 집단 고사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지난해 6월 고사목 99그루에서 시료 채취, 이중 지나치게 썩어 분석이 어려운 5그루를 제외한 94그루의 나이테를 분석한 결과를 10일 공개했다.

고사목 나이테 시료 채취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고사목 나이테 시료 채취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2010년 이후 집중적으로 고사 

나이테 분석 결과, 94그루 모두 58년 전인 1960년부터 생육 부진이 이어졌고, 64년부터 간헐적으로 한 두 그루씩 고사하기 시작했다.
2000년부터 고사목이 늘어나 89.4%인 84그루가 2000년 이후에 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10년 5그루를 시작으로 2011년 9그루, 2012년 11그루, 2013년 28그루, 2014년 7그루 등 64%인 60그루가 2010~2014년 5년 사이에 고사했다.

2000년 이후 고사한 구상나무 84그루 가운데 가장 오래 산 것은 수명이 118년이었던 것으로 확인됐으며, 84그루의 평균 수명은 69년으로 나타났다. 100년 이상 생존한 것은 3그루였다.

[자료 국립공원관리공단]

[자료 국립공원관리공단]

겨울 기온 상승과 봄철 강수량 부족 탓 

국립공원연구원의 연구진은 이 같은 구상나무의 집단 고사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겨울철(2월) 기온 상승과 봄철(3월) 강수량 부족이 가뭄으로 이어지면서 구상나무 생장에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구진이 2012~2017년 지리산 반야봉 일대 2월 평균 기온을 측정한 결과, 2012년 영하 9.1도에서 2018년 영하 5.3도로 연평균 0.76도씩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2월 기온 상승이 겨울철 적설량 감소의 원인으로 작용, 토양으로 공급되는 수분량이 부족해진 것으로 판단했다.

또, 3월 강수량은 2012년 137.5㎜에서 2017년 22.5㎜로 연평균 23㎜씩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토양에 함유된 수분 역시 6년 사이에 25.3%에서 8.8%로 16.5%포인트 감소했다.
연구진은 3월 강수량 감소는 반야봉 일대 토양 건조로 이어지고, 5월 초부터 시작하는 구상나무 생육에 지장을 준 것으로 추정했다.

구상나무 고사목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구상나무 고사목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아고산 지역 기후변화 더 크게 나타나 

지리산 구상나무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 구상나무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현재 구상나무는 5월 첫주에 생장을 시작하고, 9월 마지막 주에 종료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눈이 녹기 시작하는 3우러부터 생장이 시작되는 5월까지의 생육 환경이 구상나무 생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향후 기후변화가 계속되면서 봄철 기온상승으로 구상나무 생육 시기가 앞당겨지고, 이른 봄 수분 부족이 생육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북 남원(측정고도 133m)의 경우 지난 6년 동안 연평균 기온이 0.6도 증가했지만 반야봉(측정고도 1650m)은 2도나 상승했다.

국립공원연구원 박흥철 책임연구원은 "해발 1732m인 지리산 반야봉은 기후변화에 민감한 아(亞)고산대 지역으로, 저지대보다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 상승 폭이 크다"며 "높은 고도에서 주로 자생하는 구상나무는 기후변화로 달라진 환경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셈"이라고 말했다.

크리스마스트리로 인기 높은 구상나무

한라산 구상나무

한라산 구상나무

구상나무 [동북아생물다양성 연구소]

구상나무 [동북아생물다양성 연구소]

일명 크리스마스트리로 불리는 구상나무는 우리나라 고유종인 상록침엽수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할 만큼 기후변화 등의 영향으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현재 지리산 반야봉 일대 약 1㎢에는 1만5000여 그루의 구상나무가 살고 있으며, 이 중 45%인 6700여 그루가 고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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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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