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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상처는 몇 근이나 될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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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송나라 때 시인 소동파(1037~1101)가 있었습니다. 그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히지요. 그만큼 뛰어난 문장가였습니다. 당시 송나라와 당나라의 시는 매우 서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동파의 시는 철학적이었습니다. 그가 삶과 세상과 우주의 이치에 대해서 남달리 깊은 관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지요.

  실제 소동파는 눈이 깊었습니다. 인간의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의 힘이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웬만한 스님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눈이 열렸다”고 소문이 자자한 스님도 막상 소동파가 만나보면 별 게 아니었습니다. 몇 마디만 주고 받아도 소동파는 스님의 바닥이 훤히 보였습니다. 소동파는 쥐뿔도 모르면서 ‘대사(大師)’라는 소리만 듣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북송에는 승호(承皓, 1011~1091) 스님이란 선지식이 있었습니다. 연배는 소동파보다 26살 더 많았습니다. 승호 스님이 입적할 때 일화입니다. 승호 스님은 81살이 되자 노환으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모여서 스님 주위에 둘러앉았습니다. 승호 스님은 빙긋이 웃으며 “내 나이 81살이다. 이제 늙어 죽어 시신을 메고 나간다. 너희는 1년 360일 모두 (공부에) 힘을 쏟거라”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 “이제 나의 시신을 메고 나간다”고 말할 만큼 여여(如如)한 분이었지요. 그만큼 내공이 깊었습니다.

  승호 스님이 주석하는 곳으로 하루는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다름 아닌 소동파였습니다. 둘은 초면이었지요. 승호 스님이 먼저 상대가 누구인지 물었습니다.

  “그대의 존함은 무엇인가?”

  소동파는 승호 스님의 속살림을 떠 볼 요량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칭(秤)’가 입니다.”

  소동파가 쓴 ‘칭’이라는 글자는 ‘저울 칭’자입니다. 중국에 정말 ‘칭’이라는 성씨가 있느냐고요? 아닙니다. 중국에는 칭씨가 없습니다. 그럼 소동파는 왜 ‘나는 칭가입니다’라고 말했을까요? 맞습니다. 소동파는 승호 스님에게 도전장을 내민 겁니다. “당신이 대단한 고승이라 하는데, 내가 당신의 무게를 달아보려고 왔소이다.” 이렇게 말을 한 겁니다.

참, 기고만장하죠. 그래도 소동파의 그런 기개가 선(禪)수행자에게는 필요한 덕목일 수도 있겠지요. 소동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의 내로라하는 도인을 달아보는 저울입니다.”

  소동파의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승호 스님은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할’ 소리에 소동파는 뒤로 벌러덩 나가떨어졌습니다. 깜짝 놀란 소동파는 어리둥절할 뿐이었지요. 그때를 놓치지 않고 승호 스님이 소동파에게 되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소리는 몇 근이나 되는가?”

  승호 스님이 던진 마지막 물음에 소동파는 아무런 답도 못했습니다. 눈만 껌뻑하며 승호 스님의 얼굴을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소동파가 들고 있던 저울로는 승호 스님이 내지른 소리의 무게를 달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선문답 일화에는 길이 있습니다. 그 길에는 이치가 숨어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이치를 찾아내 체화하는 겁니다. 그럼 어떡해야 그걸 찾을 수 있을까요? 먼저 선문답 일화를 읽고서 자신을 향해 물음을 던져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승호 스님은 왜 ‘하~알!’하고 소리를 질렀을까?” 다들 이게 궁금하지 않으세요? 대체 왜 그렇게 고함을 질렀을까요? 이렇게 골똘히 궁리를 하다 보면 내 안에서 답이 올라옵니다. 고함을 지른 이유는 명확합니다. 소동파가 들고 있던 저울이 아무런 쓸모가 없음을 일러주기 위해서입니다.

  소동파의 저울은 ‘색(色)’을 다는 저울입니다. 색(色)이 뭔가요?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 뭔가 덩어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럼 소동파가 쥐고 있던 색(色)은 무엇일까요? 지식과 학식입니다. 그걸로 상대방의 무게를 달았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고, 엄청난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던 소동파는 “나의 저울로 달지 못할 대상은 없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래서 승호 스님은 소동파의 저울로 달 수 없는 걸 내놓았습니다. 그게 바로 ‘공(空)’입니다. 무거운 색과 가벼운 색을 따져가며 “나의 상대는 없다”고 자만하던 소동파의 저울에 느닷없이 ‘공(空)’이 얹혔습니다. 소리의 속성이 ‘공(空)’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소동파가 뒤로 나자빠진 겁니다. 갑자기 지른 소리에 놀라서 나가떨어진 게 아닙니다. 소동파는 지금껏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살아왔는데, 승호 스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내밀었기 때문에 무릎을 꿇은 겁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누구와 닮았을까요. 소동파일까요, 아니면 승호 스님일까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소동파와 똑 닮았습니다. 왜냐고요? 우리도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만 쫓으며 살아왔으니까요. 그렇게 ‘색(色)’만 보고, ‘색(色)’만 쫓으며, ‘색(色)’만 저울질하며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소동파의 안목과 우리의 안목이 똑같습니다.

  승호 스님은 그런 우리의 안목을 향해 망치질을 합니다. 이 선문답 일화를 통해 두들깁니다. 그걸 깨트리라고 말입니다. 왜냐고요? ‘색(色)’만 붙들고 있는 삶은 힘들기 때문입니다. 고통스럽기 때문이지요. 가령 사람들은 10년 전의 상처, 20년 혹은 30년 전의 상처도 여전히 안고 살아갑니다. 그걸 떠올릴 때마다 고통스러워 합니다. 그리고 나에게는 바위 덩어리 같은 상처가 지금도 박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상처를 ‘색(色)’으로 보며 살아갑니다. 그러니 마음의 저울에 상처가 올라올 때마다 고통이 덩달아 올라옵니다.

  승호 스님은 상처의 덩어리, 그 정체가 ‘공(空)’이라고 일깨워 줍니다. ‘할!’하고 내지른 소리처럼 비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때 일은 이미 지나갔고, 그때 가졌던 감정이나 화도 이미 지나갔다. 이미 ‘공(空)’이 돼버린 사건을 자꾸만 ‘색(色)’으로 바꾸어서 되살려 내는 건 우리의 착각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게 이치에 대한 착각입니다.

  승호 스님의 ‘할!’소리에 무릎을 꿇은 소동파는 산을 내려갔습니다. 주위에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서 있고, 그 위에서 산새들이 울어댔겠지요. 그 아래 난 오솔길을 소동파는 걸었습니다. 터벅터벅 내려가던 하산길에 곰곰이 생각을 했을 겁니다. “내가 그동안 저울에 올렸던 그 모든 색(色)의 정체가 뭘까?” 그렇게 궁리를 했을 겁니다. 그러다 문득 깨닫게 됐습니다. “세상의 모든 색이 비어 있구나. 비어서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텅 빈 채로 작용하고 있구나. 그게 바로 이 세상이구나.” 소동파는 비로소 그걸 깨쳤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소동파는 이렇게 노래를 했습니다.

  “산색은 그대로가 법신(法身)이다.”  

산색(山色)이 뭘까요? 봄에 피는 꽃, 나무 위에 앉은 새들, 그들이 지저귀는 소리, 졸졸졸 흘러가는 냇물. 그 모두가 산색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는 이 세상입니다. 봄꽃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사라질까요. 꽃이 진 자리에 맺히는 열매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까요. 그렇게 피고, 지고, 피고, 지는 이 세상은 색신(色身)일까요, 아니면 법신(法身)일까요. 다시 말해 색(色)일까요, 아니면 공(空)일까요.

 소동파는 이제 여기에 답을 합니다. “산색이 그대로 법신이다.” 즉 “색(色)이 곧 공(空)이다”라고 말합니다. 뒤집으면 “공(空)이 곧 색(色)이다”가 됩니다. 이걸 깊이 이해하고, 뜻을 깨치면 저마다 안고 있는 상처가 소멸됩니다. 부서지지 않는 바위 덩어리인 줄만 알았던 나의 상처가 실은 무게조차 달 수 없는 ‘공기 풍선’임을 알게 되니까요.

그렇다면 우리도 공(空)을 달 수 있는 저울 하나 가져보면 어떨까요.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백성호의 현문우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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