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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베이징대 총장의 ‘뼈아픈 사과문’을 보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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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탄생 200주년(5일)을 맞은 카를 마르크스는 중국과 중국인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광과 상처를 동시에 안겨준 인물이다. 마르크스 혁명론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에 큰 영감을 줬다. 중국이 5.5 m 높이의 마르크스 동상을 생일날 그의 고향에 헌상한 것은 일종의 보은(報恩) 행위다. 반면 마르크스의 계급투쟁론에 자극받은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1966~76)은 중국인들에게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상흔을 남겼다.

개교 기념사 때 한자 발음 틀리자 ‘문혁 교육’ 자성론 #평균주의에 빠진 한국, 이웃나라 일로만 볼 수 있나

지난 4일 개교 120주년 기념식 도중에 ‘훙후’(鴻鵠·큰 기러기와 고니)를 ‘훙하오’(鴻浩)로 틀리게 발음해 파문을 일으킨 베이징대 린젠화(林建華·63) 총장의 사례는 아직도 문혁의 상처가 중국 사회에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문제의 한자는 사마천의 『사기』에서 ‘제비와 참새가 어찌 큰 기러기와 고니의 뜻을 알겠느냐’(燕雀安知 鴻鵠之志哉)는 대목에 나오는데, 지금도 중학생이면 배운다. 이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학식과 덕망을 갖춘 린 총장이 한자 발음조차 틀렸다며 망신을 주고 조롱했다.

하지만 기념식 하루 뒤 린 총장이 발표한 진솔하고 용기 있는 공개 사과문을 보면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총장 개인의 한자 실력 부족이 아니라 문혁 시절의 교육 파행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사실 린 총장은 문혁이 시작된 66년에 초등학교 5학년이었고, 문혁 직후인 78년 스물셋의 나이에 베이징대 화학과에 뒤늦게 입학한 전형적인 ‘문혁 세대’다.

2015년 모교 총장이 된 그는 이번 사과문에서 “문혁 기간에 배운 기초교육이 온전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배움에 대한 의욕이 가장 강렬하던 10대 때 마오쩌둥 선집만 반복해 읽었다. 영어도 대학 입학 뒤에야 배워 무척 고생했다”고 회고했다. 그의 고백처럼 “모두가 가난해도 평등하면 된다”는 극좌 노선이 문혁 10년간 팽배했다. 사회주의 사상만 앞세우고 학자와 전문가는 타도 대상이었다. 문혁 세대의 교육 공백은 이후 10년 이상 중국의 국가경쟁력에 큰 타격을 줬다. 문혁을 ‘10년 재앙(浩劫)’이라 부르는 이유다.

중국 사례를 보면서 문득 한국의 교육 현실을 생각하게 된다. 물론 시대와 나라가 달라 단순히 동일시할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짚어야 할 대목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평균주의가 득세해온 교육계의 고질적 풍토가 큰 문제다. 영재 교육과 수월성 교육을 질시하고, 수재를 범재로 만든다. 쉬운 입시 때문에 서울대생들조차 입학 이후 별도로 수학 과외를 받는 실정이다. 이런 마당에 “현재 고1이 치르는 2021학년도 수능 수학부터 기하 영역을 빼기로 한 것은 오판”이라고 전문가는 지적한다. 기하는 이공계 학생에게 필수적인 기초 지식이기 때문이다.

2018학년도 입시부터 적용된 수능 영어 절대평가의 부작용도 적지 않다. 90점과 100점이 같은 1등급을 받다 보니 영어 수준이 가장 높다는 서울 대치동 학생들도 영어를 대충 공부해 실력이 하향 평준화되고 있다. “영어 1등급을 받아도 영어 신문 사설을 못읽고 대학에 가서 영어 원서 강독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지구촌 인재들과 경쟁해야 할 미래 주역들의 영어 실력 저하는 국가적 손실이다. 몇 년 전에는 서울대생이 ‘학문’(學問)의 한자를 ‘學文’으로 잘못 표기했을 정도로 한자 교육도 매우 부실하다. 의학이든 공학이든 한자어로 된 전문 용어를 이해 못 하면 학문이 얕아진다.

필수 영양소가 결핍되면 병이 생긴다. 한창 배울 나이에 필수 지식을 익히지 못한 배움의 공백은 결국 시차를 두고 부작용을 낳는다. 아이들의 공부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정치인과 교육계의 사탕발림은 인기영합주의일 뿐이다.

그런데도 지금 교육부는 새로운 입시제도를 공론화에 맡겨 수학·국어까지 절대평가를 확대하려는 황당한 움직임을 보인다. 중국 최고 명문 학부(學府) 총장이 뼈아픈 사과문을 낸 사건을 한국 교육계가 이웃 나라의 해프닝만으로 여길 게 아니라 그 의미를 곱씹어 봐야 한다.

장세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