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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방중, 폼페이오 방북 … 한반도 체스판 킹들이 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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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7일(현지시간) 중국 다롄에서 열린 북·중 정상회담 연회에서 건배하고 있다. 시 주석은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북·미 양국이 서로 마주 보고 가면서 상호 신뢰를 쌓고 단계적으로 행동에 나서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7일(현지시간) 중국 다롄에서 열린 북·중 정상회담 연회에서 건배하고 있다. 시 주석은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북·미 양국이 서로 마주 보고 가면서 상호 신뢰를 쌓고 단계적으로 행동에 나서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북·미 간 담판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체스판에 뛰어들었다. 대면 전까지 최대한 몸값을 올리려는 북한과 기선 제압하려는 미국 간에 치열한 수 싸움이 벌어지는 양상이다. 김정은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북·중 간 우의를 과시한 이튿날인 9일(한국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복심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평양에 보냈다. 북한의 초청에 따른 것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그에게 맡긴 임무는 명확하다. ‘억류 미국인 3명 석방+α’다.

김정은, 시진핑과 우의 과시 뒤 #억류자 카드 등 활용 몸값 불리기 #트럼프, 복심 폼페이오 평양 보내 #비핵화 담판 걸림돌 제거 나서 #“회담 전까지 힘겨루기 계속될 것”

핵심은 ‘+α’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3명 석방만이 목적이라면 꼭 폼페이오 장관이 가지 않아도 된다. 비핵화의 범위와 방법, 비핵화에 따른 대가 등 협상 타결의 마지막 걸림돌이 되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초대 6자회담 수석대표였던 이수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통상 정상 간 중요한 합의에 앞서 최종 협의를 위해 외교부 장관이 움직이는데, 이건 정상회담 마무리 준비일 수 있다”고 관측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미국이 대량살상무기(WMD)의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PVID)를 내세우고 협상 문턱을 높이면서 북·미 간 막판 조율이 난항을 겪었다. 미국은 비핵화 일괄 타결을, 북한은 단계적 비핵화 합의를 내걸며 접근법에서도 이견을 보였다. 폼페이오 장관은 평양으로 가는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북한의 단계별·동시적 조치 입장에 대해 “우리는 잘게 세분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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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을 방문한 소식통은 “이번에 폼페이오 장관이 정말 미국인 3명을 데려오는 데만 그치고 의제와 접근법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한다면 정상회담이 불투명해질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폼페이오 장관의 평양행에 동행한 국무부 고위 당국자는 기자들에게 관련 내용을 설명하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간에 열릴 수도 있는 회담(possible meeting)이라고 해야겠다”고 표현했다. 기자들이 “정상회담 말이냐?”고 되묻자 “열릴 수도 있는 회담”이라고 다시 확인했다. 정상회담 개최라고 못 박지 않고 여지를 남겼다.

북·미 정상회담 앞두고 움직이는 정상들

북·미 정상회담 앞두고 움직이는 정상들

폼페이오 장관의 평양행을 놓곤 북한이 일정 부분 양보할 의사가 있기 때문에 폼페이오 장관을 초청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시 주석과 밀착하는 모습을 보인 직후 억류자 석방이라는 선물을 들고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손짓하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맹공 모드다. 북·중 정상회담 직후 시 주석과 통화한 뒤 백악관은 보도자료를 내고 “양측은 북한 핵·미사일의 영구적 폐기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제재를 유지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김정은이 시 주석과 만나 ‘운명 공동체’라고 확인하며 후원군 확보에 나섰으나 핵 포기 이전에 북한이 원하는 제재 완화는 없을 것이라고 반격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 합의를 파기하면서 북한에 보내려는 메시지도 명확하다. 그는 파기를 선언하며 “살인 정권이 평화로운 핵만을 원할 것이라는 엄청난 허구가 합의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란의 핵 활동을 정해진 기간(10~15년) 동안만 제한한 이른바 ‘일몰조항’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얘기다. 트럼프 행정부는 같은 원칙을 북한에도 적용하겠다는 입장이다. 북한과의 협상 경험이 풍부한 전직 외교관은 “협상 결과는 협상장 내에서의 기술, 기교에 달린 것이 아니라 협상장에 들어가기 전까지 쌓아 놓은 힘이 투영되는 것”이라며 “이런 식의 힘겨루기가 회담 직전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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