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 들고 성교육 나선 간호사들 “아이들 호응 뜨겁죠”

중앙일보

입력 2018.05.10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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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3일 서울 잠전초등학교에서 아이들 성교육을 위한 인형극 봉사활동을 마친 뒤 함께 사진을 찍은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봉사단. [사진 서울아산병원]

3일 서울 잠전초등학교에서 아이들 성교육을 위한 인형극 봉사활동을 마친 뒤 함께 사진을 찍은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봉사단. [사진 서울아산병원]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잠전초등학교 체육관에 1ㆍ2학년 아이들이 하나둘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렇게 236명의 관객이 모두 들어오자 불이 꺼졌다. 어둠 속에서 앞쪽 무대 중앙에 인형이 등장했다. “한 친구가 짝꿍에게 팔짱을 꼈는데 짝꿍이 싫다고 했더니 화를 냈어요. 옳은 행동일까요, 잘못된 행동일까요.” 그러자 아이들이 머리 위로 ‘X’ 표시를 했다.

7년간 115회 공연, 2만3000여명 관람
"성은 숨길 것 아냐, 실질적 교육 필요"

다양한 인형들이 ‘짝꿍 외모로 놀리지 않기’ ‘성기 함부로 보여주지 않기’ 등을 이야기로 풀어냈다. 아이들은 “네” “아” 같은 반응을 보이며 공연에 집중했다. 50분이 지나고 아이들이 모두 자리를 떠나고 나서야 무대 뒤쪽에 숨어있던 진짜 ‘주인공’들이 나타났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봉사단원 10명이다.

주사기 대신 인형 든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봉사단 

주사기 대신 인형을 든 간호사들은 서울 송파·강동·광진구 지역에서 7년째 성교육 인형극을 이어가고 있다. NPO(비영리단체) 굿네이버스와 함께 한 누적 공연 횟수만 115차례, 교육한 아동은 2만3144명에 이른다. 현재 40명이 유아ㆍ초등 팀으로 나눠 휴일이나 출퇴근 전후 시간을 이용해서 활동한다. 이날 유일한 원년 멤버 김태현(50ㆍ여) 간호사와 인터뷰했다. 신장내과 병동에서 근무하는 그는 휴일을 쪼개 공연장을 찾았다.

"부서 이동, 퇴사 등으로 멤버가 자주 빠져요. 그만큼 봉사활동에 관심을 갖는 새 멤버들이 많이 들어옵니다. 직업 특성상 봉사가 몸에 배어 있어서 그런지 인형극에도 다들 열심인 거 같아요." 김 간호사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동 학대 문제가 부각됐던 2011년 '조금 다른 봉사활동을 해보자'고 시작한 게 지금까지 이어졌다. 봉사단 터줏대감인 그는 매년 초면 새로 합류한 동료에 대한 교육까지 맡는다.

아이들을 위한 성교육 인형극 봉사활동에 7년째 나서고 있는 서울아산병원 김태현 간호사. 인형극 봉사단이 처음 조직된 이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유일한 '원년 멤버'다. [사진 서울아산병원]

아이들을 위한 성교육 인형극 봉사활동에 7년째 나서고 있는 서울아산병원 김태현 간호사. 인형극 봉사단이 처음 조직된 이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유일한 '원년 멤버'다. [사진 서울아산병원]

이들도 처음엔 '성교육' '인형극'이란 개념에 익숙하진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경험을 투영하면서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김 간호사는 "대부분 어렸을 때 비슷한 경험들이 있다. 그때 이런 교육이 있었다면 난처하지 않았거나 주변 도움을 청할 수 있었을 거 같다고 이야기하는 동료들이 많다"고 했다.

보기엔 가벼워 보여도 인형을 1시간 가까이 들고 있는 건 쉽지 않다. 교대 근무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이들 반응이 이들을 웃게 하는 '비타민'이다. 김 간호사는 "공연 중에는 무대 뒤에 있어 아이들 얼굴은 보지 못한다. 하지만 귀로 들리는 환호 소리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어떤 공연이 가장 호응도가 높을까. 그는 “어떤 아줌마가 아이에게 ‘우리 집에 같이 가면 장난감을 주겠다’고 유혹하는 장면이 있다. 그러면 아이들이 ‘안 돼’ ‘가지마’라고 크게 소리친다”면서 “아무래도 어린이집ㆍ유치원보다는 좀 더 나이가 있는 초등학생들이 성교육에 더 집중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3일 서울 잠전초등학교에서 진행중인 성교육 인형극. 서울아산병원 간호사들은 2011년부터 아이들을 위한 인형극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다. [사진 서울아산병원]

3일 서울 잠전초등학교에서 진행중인 성교육 인형극. 서울아산병원 간호사들은 2011년부터 아이들을 위한 인형극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다. [사진 서울아산병원]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인형극 내용을 수정하기도 한다. 이른바 수위가 ‘센’ 묘사를 빼는 식이다. “공연 초반에는 이웃집 아저씨가 엉덩이를 만지면서 집에 같이 가자는 내용이 있었어요. 그때는 아이가 ‘악’ 소리 내면 경찰차가 ‘삐뽀삐뽀’하면서 출동했죠. 마음이 약한 아이들은 무서워서 울기도 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레 바뀌었죠.”

성교육에 익숙한 이들이지만 정작 자녀 성교육은 못 할 때가 많다. 5년째 인형극에 참여 중인 '세 아이 엄마' 김화경(42ㆍ여) 간호사는 "원래는 집안 성교육에 도움이 될까 해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엄마 말고 다른 데서 다 교육받아 오더라"며 웃었다.

3일 서울 잠전초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이 성교육 인형극에 집중하고 있다. 이 인형극은 서울아산병원 간호사들이 봉사활동 차원에서 정기적으로 참여한다. [사진 서울아산병원]

3일 서울 잠전초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이 성교육 인형극에 집중하고 있다. 이 인형극은 서울아산병원 간호사들이 봉사활동 차원에서 정기적으로 참여한다. [사진 서울아산병원]

그래도 올바른 성교육의 방향을 이야기할 때는 눈이 반짝였다. 김태현 간호사는 "실질적인 성교육이 앞으로 더 필요할 거 같다. 적어도 피임하는 방법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라면서 ”성을 감추고 숨기는 게 아니라 올바른 인식을 갖도록 어른들이 도와줘야 한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학교와 외부 기관과 부모의 역할이 모두 중요하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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