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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와 비리의 병원, 우리의 얼굴 아닐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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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19년째 소설을 써온 편혜영 작가. [중앙포토]

19년째 소설을 써온 편혜영 작가. [중앙포토]

아프면 병원을 찾아야 하지만 병원이 모든 병을 고쳐주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오히려 병을 키울 수도 있다. 일간지 사회면을 가끔 장식하는 병원 관련 기사가 그런 의심을 키운다. 가령 대형병원 간호사들의 ‘태움’ 관행은 얼마나 끔찍한가. 신참 길들이기라는 명목으로 한 사람의 영혼을 재가 되도록, 태울 듯이 괴롭힌다는 뜻 아닌가. 병원이 히포크라테스의 후예들이 인술(仁術)을 실천하는 순백의 공간은 아닌 거다.

장편소설 『죽은 자 … 』낸 편혜영 #복마전 같은 의료현장 실감 묘사 #양심과 현실의 충돌로 본 현대인

어두운 상상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의 암울한 골목과 거리라면 소설가 편혜영(46)의 영토다. 불가항력적인 재난이나 역병, 사나운 간병인(사실은 장모)을 만난 운 나쁜 전신 마비 환자(사위)의 딱한 처지 같은 게 지금까지 그의 단골 소재였다.

이번엔 병원이다. 원고지 500쪽 분량의 가붓한 장편 『죽은 자로 하여금』(현대문학) 안에 다분히 병리적인 이 시대 병원 공간의 공공연한 치부를 담았다. 소설 속 병원은 온갖 음모와 비리가 난무하는 복마전 같은 공간이다. 조선(造船)산업이 결정적인 타격을 입어 덩달아 파산 위기에 몰린 소도시 종합병원이 배경이긴 하지만, 단순히 경기순환적인 재정난이 이 병원 비리의 근본원인은 아니다. 병원 사람들은 진작부터 부패해 있었던 거다. 리베이트 수수는 기본, 생사람 잡을 뻔한 의료사고도 심심치 않게 생긴다. 수술 실패조차 반드시 의사나 병원의 잘못은 아니다. 어떤 단계에서 현대 의술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고로 무능하다. 모처럼 단잠을 자는 불면증 환자를 수면제 먹을 시간 됐다며 깨우는, 병원 경직성에 대한 자조적인 농담이 내부에서 거리낌 없이 유통될 때 ‘환자 중심주의’라는 병원 모토는 허울뿐이기 쉽다.

편혜영 독자라면 짐작하겠지만 그렇다고 소설의 초점이 현실 고발은 아니다. 편혜영은 현실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고지식한 리얼리스트가 아니다. 오히려 모더니스트라고 해야 한다. 3인칭 시점으로 서술해 인물 내면이 불투명하게 처리된 몇 장면에서 맥락을 손쉽게 짐작하기 어려운 발언들이 툭툭 튀어나와 읽는 이를 긴장시킨다. 그렇게 소설이 흐르는 종착점은 결국 주인공 무주의 내면 격동이다. 그런 점에서 소설은 심리극이지만, 병원 안에서 좌천을 거듭해 아내와도 결딴 직전까지 간 무주가 희미하게 아내와의 관계 회복을 꿈꾸는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편씨는 7일 전화 인터뷰에서 “소설의 출발은 무주라는 인물의 혼돈이었다”고 밝혔다. 소재 면에서 매력적인 인물이 먼저 있었고, 살 붙이다 보니 병원 얘기를 쓰게 됐다는 얘기다. 무주는 선량하기만 한 인간은 아니다. 굵직한 건 거부했다고 자위하며 소심하게 양심을 지키지만, 병원 거래업체로부터 받을 만한 건 받아 챙겼다. 해고, 새 병원 취업, 아내의 임신을 거치며 새 출발을 다짐하지만 이번엔 내부 고발이라는 양심적인 선택이 감당할 수 없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편씨는 “확신에 차서 행동하지만 자기모순에 빠져 고통받는 인물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이런 발언을 현실 세계의 어떤 사람들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으로 볼 수 있을까.

“소설에 조선소 얘기도 나오고 하니까 지시하는 바가 분명한 것처럼 보이지만, 포괄적으로 생각하면 사람들 누구나 다 그런 구석이 있지 않나요? 자기가 확실하다, 혹은 선이라고 믿고 하는 어떤 행동들, 하지만 원인이 선하다고 결과가 선해지는 건 아니니까, 그 결과로 곤욕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지금 한국인, 지금 현대인이라는 좁은 시기적인 특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역시 소설을 현실과 결부시키지 말고 보편적으로 봐달라는 얘기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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