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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에 실린 관·오열하는 여인들…흑백영상에 담긴 ‘5·18 광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5·18 당시 시민들과 계엄군 사이에서 가두방송하는 전옥주씨의 모습. 전씨는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배우 이요원이 열연한 ‘신애’의 실재 인물이다. [연합뉴스]

5·18 당시 시민들과 계엄군 사이에서 가두방송하는 전옥주씨의 모습. 전씨는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배우 이요원이 열연한 ‘신애’의 실재 인물이다. [연합뉴스]

트럭에 실려 망월동 묘지에 내려진 관들, 관 앞에서 영정사진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여인들, 상복을 입은 채 관 사이를 지나는 어린아이들…

5·18기록관, 미공개 영상 38년만 공개 #80년 망월동·적십자병원 등 참상 담겨 #영정사진 안은 여인·아이에 관객 ‘침통’ #고통에 신음하는 환자들 참상도 기록 #시민헌혈, 주먹밥나누는 모습도 확인 #10일부터 기록관서 일반인 대상 상영

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의 참상을 담은 흑백 영상이 38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9일 광주광역시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5·18민주화운동 미공개 영상기록물 상영회’를 개최했다. 72분 동안 상영된 영상은 80년 5월 20일부터 6월 1일까지 망월동 묘역과 적십자병원, 옛 전남도청 일대 등을 촬영한 기록물이다.

80년 5월 당시 시민들이 트럭에 실려온 관을 망월묘역에 안장하고 있다. [뉴시스]

80년 5월 당시 시민들이 트럭에 실려온 관을 망월묘역에 안장하고 있다. [뉴시스]

영상에는 80년 5월의 참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병원 응급실에 붕대를 감은 채 누워 있던 시민들은 열악한 여건 속에서 고통을 참으며 치료를 받고 있었다.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워 광주 도심을 점령한 계엄군들은 중무장을 한 채 전남도청 안팎을 지켰다.

5월 30일 망월동 묘지 상황이 상영될 때는 객석 곳곳에서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당시 계엄군에 총에 맞아 숨진 시신들이 트럭에 실려 온 뒤 망월동에 매장되는 과정이 생생하게 남아 있어서다.

관을 끌어안은 채 오열하는 여인들과 트럭 짐칸에 실린 관들을 확인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당시의 참상을 보여줬다. 상복을 입은 채 관 사이를 지나는 어린아이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관을 바라보는 중년 남성의 모습도 관객들을 울렸다. 5·18 당시 청년들은 트럭 짐칸에서 관들이 내려지자 시신을 안장할 수십구의 묘지를 삽으로 팠다. 넋이 나간 얼굴로 주저앉아 있던 여인들은 관 위에 영정사진을 올려놓은 채 장례를 치렀다.

1980년 5월 당시 망월묘역에 관을 안장하기 위해 파놓은 묘지들. [뉴시스]

1980년 5월 당시 망월묘역에 관을 안장하기 위해 파놓은 묘지들. [뉴시스]

외부로부터 고립된 상황에서도 서로를 위하는 시민의식도 확인됐다. 총상과 구타 등으로 부상을 입은 시민들을 위해 헌혈을 하거나 주먹밥과 음식을 나누는 모습이 영상으로 남아 있었다. M16 소총 등으로 무장한 계엄군과 군중 사이에서 확성기를 손에 쥔 전옥주씨의 모습도 확인됐다. 전씨는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배우 이요원이 열연한 ‘신애’의 실재 인물이다.

이날 기록물 상영 행사에는 5월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 회원들과 시민 등 250여 명이 참석해 38년 전의 참상을 지켜봤다. 관객들은 음성 없이 화면만 녹화된 흑백 영상을 응시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5·18기록관 측은 해당 영상이 촬영 구도나 기법 등을 고려할 때 기자 등 전문가가 찍은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5·18기록관은 지난해 12월 익명의 수집가로부터 5·18 영상기록물을 소장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내용을 확인한 뒤 기록물을 구매했다. 이 수집가는 영상기록물의 수집경로에 대해서는 함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5·18 당시 대치하는 시민과 대치하는 계엄군의 모습. [연합뉴스]

5·18 당시 대치하는 시민과 대치하는 계엄군의 모습. [연합뉴스]

 5·18기록관은 10일부터 30일까지 광주 동구 금남로 5·18기록관에서 영상물을 공개 상영한다. 오는 11일부터는 한국영상자료원 서울 마포구 상암동 본원과 경기 파주 분원 영상도서관에서 멀티미디어 서비스로 무료 열람할 수도 있다. 5·18기록관은 해당 영상물에 나오는 인물이나 장소 등에 대해 시민 제보를 받는다. 제보 전화 062-613-8202, 8287.

나의갑 5·18기록관장은 “5·18 관련 기록물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에 수집된 영상기록물은 80년 광주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최경호 기자 ckhaa@joongang.co.kr

1980년 5월 광주 망월동묘지에서 상복을 입고 있는 어린이들. [사진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영상 캡처]

1980년 5월 광주 망월동묘지에서 상복을 입고 있는 어린이들. [사진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영상 캡처]

5·18 당시 광주 한 병원의 영안실에 누워있는 시신. [뉴시스]

5·18 당시 광주 한 병원의 영안실에 누워있는 시신.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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