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뭐예요?” 상대방을 좀 더 알고 싶을 때 흔히 던지는 질문이지만 의외로 답은 어렵다. ‘나’를 표현하는 키워드로 취미를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보기’ ‘음악 감상’ ‘독서’로 대표되는 국민 취미 3대장 외에 최근에는 ‘맛집 탐방’ 정도가 추가됐을 뿐이다.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요즘, 취미는 여가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다들 어떤 방법으로 각자의 워라밸을 지키고 있을까. 특별할 것 없는 보통 사람들의 조금 특별한 취미생활들을 소개한다.
※다음은 오라원(36)씨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기자가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이름은 오라원, 나이는 서른 여섯입니다. 10년째 영상제작 일을 하고 있어요. 프리랜서로 전향한 지는 4년 정도 됐고, 요즘은 주로 전시 홍보 등 다양한 광고 영상을 만듭니다.
프리랜서의 장점은 출퇴근이 없다는 것, 단점 또한 출퇴근이 없다는 거죠. 집이 곧 직장이고 침실이 곧 작업실이에요. 방 하나에 침대, 책상, 작업에 쓰는 컴퓨터 등이 다 들어 있어요. 저의 시간은 철저히 마감을 기준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일과 생활의 경계가 모호하죠. 침대에 누워도 마감이 있으면 근무 중인 것 같고, 작업용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도 할 일이 없으면 휴식 중인 거죠.
일이 없거나 작업이 막힐 때면 뒷산에 가요. 집 바로 뒤에 꽤 걸을 만한 산이 있거든요. 산책을 하기 위해 가는 거지만 걸으면서 하는 일이 또 있답니다. 친구들도 익히 알고 있는 저의 독특한 습관은 바로 떨어진 ‘나뭇가지 줍기’에요.
저는 산책을 하면서 앞만 보지 않아요. 발밑을 부지런히 살피며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 중 예쁘게 생긴 녀석을 찾죠. ‘예쁘다’는 건 물론 저만의 기준이에요. 일단, 쉽게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 굵직한 가지여야 합니다. 모양이 곧지 않고 자유롭게 뻗어 자란 것이 좋아요. 그 중에서 벌레를 덜 먹고 상태가 매끈한 가지가 눈에 들어오면 잽싸게 주워오죠. 그런 걸 주워서 어디다 쓰느냐고요? 다 쓸 데가 있어요.
저는 ‘비상식물’을 만들어요. 보통은 ‘플랜트 행거(plant hanger)’라고 부르는데, 말 그대로 공중에 매달아 키우는 식물이죠. 비상식물이란 말은 저의 특별한 취미를 표현하기 위해 제가 만든 단어에요. ‘공중을 날고 있는(비상·飛翔) 식물’ ‘비상(非常)약품처럼 우리 곁에 두어야 할 최소한의 식물’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죠.
집 안 여기저기 걸어둔 초록 식물들은 제가 장시간 작업에 지쳤을 때 밖에 나가지 않아도 자연을 느끼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그만큼 소중하고 신경써서 챙겨야 한다는 의미도 있어요. 원래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자연스럽게 비도 맞으며 살아야 할 식물들이 제 욕심 때문에 콘크리트 벽 건물 안에 갇혀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습도나 햇빛 방향, 통풍 등을 꼼꼼하게 신경쓰고 분무기로 습도도 맞춰줘요. 책임감을 가지고 키우다 보니 단순한 인테리어 요소가 아니라 공존하는 생명체로 대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산책길에 주워 온 나뭇가지들은 비상식물을 위한 중요한 재료로 쓰여요. 물에 씻어서 햇볕에 잘 말린 뒤 필요할 때마다 꺼내 씁니다. 굵기가 어느 정도 있는 튼튼한 가지는 화분을 매달아 둘 지지대 역할을 하죠. 시중에서 파는 재료보다 훨씬 자연스러워서 좋아요.
비용 ★★★★
비싼 장비는 필요 없다. 나뭇가지, 코튼실, 화분만 있으면 오케이!
거창하게 말했지만 만드는 방법은 간단해요. 나뭇가지를 수평으로 걸어 두고, 코튼실을 묶어 발을 늘어뜨린 뒤 화분을 걸어 두면 끝! 실 매듭으로 발 만드는 법을 ‘마크라메’라고 하는데, 플랜트 행거를 만드는 작업은 사실 이 마크라메가 8할이에요. 재료를 준비하고 대략적인 디자인을 머릿속에 그린 다음에는 실을 매듭짓는 단순한 작업의 반복이죠.
접근성 ★★★★★
따로 장소를 구할 필요 없이 재료만 있으면 언제 어느 때라도 시작할 수 있다. 만드는 방법은 유튜브 동영상 몇 개면 완전정복 가능.
작업실 옆방에서 무념무상으로 매듭짓기를 반복하는 이 단순한 작업이 제 ‘워라밸’의 핵심이에요. 제가 만드는 영상은 형태가 없어요. 눈으로 볼 수는 있지만 컴퓨터 안에만 있죠. 만질 수 없는 것만 수년간 만들다보니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어요. 식물을 워낙 좋아하고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많아서 플랜트 행거를 선택했죠. 기분전환 삼아 만들기 시작한 게 벌써 2년이나 지났네요.
저는 ‘핀터레스트’같은 이미지 자료 사이트에서 마크라메 형태의 플랜트 행거를 처음 접했어요. 외국의 예쁜 인테리어 사진 등을 찾아보다가 ‘이거다!’ 싶었죠. 요즘은 꽤 흔해졌지만 2년 전만 해도 새로웠거든요. 판매하는 곳은 많지 않지만 유튜브 등에 만드는 방법이 자세하게 나와 있어서 보고 따라하기 쉽죠. 재료만 있다면 손재주가 없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간단한 매듭법으로도 모양이 나오니까요.
난이도 ★★
매듭 짓는 법 몇 가지만 알면 간단한 모양은 뚝딱 만들어낼 수 있다.
이젠 제법 익숙해져서 팟캐스트나 음악을 들으면서 뚝딱뚝딱 만들어요. 영상을 만들 때도 그렇고, 저는 좀 즉흥적인 스타일이거든요. 머릿속에 만들고 싶은 모양이 어렴풋이 있긴 하지만 너무 얽매이진 않아요. 사진을 참고한다고 해도 어차피 똑같이 만들긴 어려워요. 제가 익힌 4~5가지의 매듭법으로 순간의 감에 따라 디자인해요. 작은 건 30분이면 만들어요. 크기가 크고 발 길이가 긴 작품은 2~3일씩 걸리기도 하죠.
영상은 완성이라는 개념이 없어요. ‘그만둔다’만 있어요. 시간을 더 들이면 뭔가 발전시킬 수 있을 것 같아도 마냥 붙들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이 정도면 그만해야겠다’ 하고 작업을 멈추는 거예요. 내가 완성의 시점을 정한다는 점이 매번 부담스러워요. 때로는 마감 때문에 눈에 차지 않는 작업물을 보낼 때도 있고, 그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아요.
비상식물을 취미로 키우면서 가장 좋은 점은 ‘끝이 있다’는 거예요. 나뭇가지에 매달은 실을 다 땋았을 때 작업이 끝나죠. 맘에 드는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고 망칠 수도 있지만, 마무리 매듭을 짓고 가위로 자르고 나면 일단 끝이 난 거죠. 몰입해서 완성을 하고나면 홀가분하고 기분이 좋아져요.
화분은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어요. 아이비를 걸어도 예쁘고,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서 다육식물 화분을 꽂아두기도 해요. 비상식물은 물 주는 작업이 좀 번거로워서 관리가 편한 식물을 걸어두면 좋아요. 틸란드시아는 스프레이로만 분무해도 잘 자라서 귀차니즘이 심한 친구들에게 선물하기 좋죠.
2년째 꾸준히 하다보니 제 손에서 탄생한 비상식물이 300여 개나 돼요. 지금 집에 갖고 있는 건 겨우 2개 뿐이에요. 모두 주변에 선물하거나 플리마켓에서 팔았거든요. 마켓은 1년에 3번 정도 나가요. 한 번에 20개씩 만들어서 1만5000원~3만원 가격으로 판매해요. 제 블로그나 인스타를 보고 주문제작을 하는 분도 있어요. 아직 본업과 취미를 맞바꿀 생각까진 없지만 주변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오니까 기분은 좋아요.
수많은 경우의 수를 따져가며 영상 작업을 하다가 5가지 매듭법 사이에서 디자인을 결정할 때는 해방감마저 느껴요. 가끔 복잡한 생각을 버리고 무언가에 몰입하고 싶다거나,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나만의 작품을 남기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비상식물’에 꼭 도전해 보세요!
비상식물, 이런 사람에게 추천!
☞ 취미를 통해 손에 쥘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고 싶다
☞ 쉬면서 복잡한 생각은 하기 싫다
☞ 자연을 사랑한다
☞ 셀프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다
글=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사진=오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