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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판도라 상자' 열었다…"이란 핵 합의에서 탈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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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2015년 국제사회 주요국과 이란 사이에 체결됐던 핵 합의(JCPOA)를 탈퇴한다고 발표하는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2015년 국제사회 주요국과 이란 사이에 체결됐던 핵 합의(JCPOA)를 탈퇴한다고 발표하는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2015년 7월 주요국 간 역사적인 합의 이후 3년 간 봉인돼 온 이란 핵 갈등이 북한 비핵화라는 또 다른 ‘빅뱅’ 이슈와 함께 국제사회를 뒤흔들 가능성이 커졌다.

'오는 12일 대이란 제재 유예 종료' 공식 선언 #"불충분한 합의로 이란 핵폭탄 막을 수 없다" #볼턴 NSC보좌관 "북한에 보내는 메시지 될 것"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백악관 회견을 통해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는 일방적이며 재앙적이고 끔찍한 협상으로 애초 체결되지 말았어야 한다"면서 "합의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공식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선언은 오는 12일 종료되는 대이란 제재 유예를 더 이상 연장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미국은 이란에 대한 금융·경제 제재를 90일과 180일인 유예기간이 끝나는 대로 순차적으로 재개할 전망이다.

존 볼턴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이와 관련 “기존의 모든 제재를 다시 부과하거나 새로운 제재의 도입 혹은 유럽과 협상할 시간을 갖는 것 등 다양한 안을 트럼프에게 제시했다”며 “(동맹국들과) 새 협상은 9일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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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파리 기후협약 등 버락 오바마 전임 정부 때 이뤄진 국제 협약을 잇따라 파기했다. 이 중 이란 핵 합의 파기는 중동 긴장 뿐 아니라 합의 당사국들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신뢰 위반을 야기할 수 있단 점에서 파장이 가장 크다.

특히 임박한 북미 정상회담과 북한 비핵화에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거듭 JCPOA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이란이 핵 프로그램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 이 합의로는 이란 핵폭탄을 막을 수가 없다"는 게 그가 주장하는 탈퇴 이유다.

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이란 핵 합의 탈퇴를 발표하는 동안 이를 지켜보고 있는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 마이크 펜스 부통령(왼쪽부터). [EPA=연합뉴스]

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이란 핵 합의 탈퇴를 발표하는 동안 이를 지켜보고 있는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 마이크 펜스 부통령(왼쪽부터). [EPA=연합뉴스]

JCPOA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등 관련 의무를 이란이 이행한다면 어느 시점에 핵 관련 규제를 풀어주는 ‘일몰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트럼프가 문제 삼는 이란의 탄도미사일 개발 프로그램과 테러단체 지원 문제 등도 당시엔 합의 대상이 아니었다.

트럼프 정부는 이런 불충분한 합의로는 전면·영구적인 이란 핵 폐기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즉 북핵과 마찬가지로 소위 PVID(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현재 합의를 파기하면 이란이 새 협정을 위해 대화 테이블에 앉을 것으로 트럼프가 믿고 있다”는 게 뉴욕타임스(NYT) 등의 시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늘의 조치는 미국이 더는 공허한 위협을 하지 않는다는 중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며 "나는 약속하면 지킨다"라고 강조했다. 볼턴 보좌관도 "불충분한 합의는 수용할 수 없다는 신호를 북한에 보내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핵 합의 파기를 막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던 유럽 주요국들은 일제히 반발하고 있다. 영국·프랑스·독일은 이날 공동성명을 내고 “이란 핵 합의를 지키기 위해 전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미국의 탈퇴가 JCPOA의 백지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는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중앙포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중앙포토]

이란은 일단 미국이 협정에서 탈퇴하더라도 당분간 핵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탈퇴 선언 직후 이란 TV에서 "이란은 미국 없이 핵 합의에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우리는 어떠한 제약 없이 우라늄 농축 활동을 시작할 수있다"고도 덧붙여 핵 합의를 파기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는 "(우라늄 농축 등에 대한) 결정을 이행하기 전 수주간 기다리며 우리의 우방을 비롯해 핵 합의에 남기로 한 다른 나라들과 논의할 것"이라며 "모든 것은 이란의 국익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란 핵 합의=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P5, 미·중·러·영·프)+1(독일)과 이란이 2015년 7월 타결하고 2016년 1월 발효된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 국제사회가 이란의 핵 활동을 제한·감시하되 그 대가로 대이란 경제 제재를 푸는 것이 요지다. 미국은 국내법 '이란 핵 합의 검증법안'(INARA) 하에서 90일마다 이란의 협정 준수를 평가하는데 백악관이 이란의 협정 준수를 불인증하면 의회가 이란 제재를 60일 이내에 '스냅백'(복원·snapback)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또 백악관은 120일마다 대이란 제재 유예를 연장할지 판단해 왔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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