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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비핵화 수위 높이자 … 김정은, 내 뒤에 중국 있다 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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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비핵화 담판을 앞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지난 3월 25일부터 나흘간 중국 베이징(北京)을 찾았던 김 위원장이 7일 다시 중국을 방문했다. 43일 만의 두 번째 방중이다. 김 위원장은  다롄(大連)에서 7일과 8일 두 번이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눈 뒤 이날 오후 귀환했다.

김정은 재방중에 깔린 북·중 속내 #한·미 회담에 앞서 북·중 연대 다져 #북·미 담판 실패에 대비한 포석 #시진핑은 한반도 영향력 과시 효과 #“김정은 부른 것 아니냐” 분석도

그간 북한의 최고지도자는 러시아나 중국, 심지어 유럽을 방문할 때도 열차를 이용해 왔지만 이번에 김정은은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그만큼 서둘렀다는 뜻이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대학원장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장소와 날짜를 발표하지 못하는 건 실무 접촉 과정에서 뭔가 삐걱거린다는 방증”이라며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밝혔지만 미국이 비핵화의 수준을 더욱 높이고 생화학무기, 인권 등 협상의 문턱을 높이자 북한이 반발 차원에서 중국을 찾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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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미국과 제대로 협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중국이라는 버팀목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외교 전술”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은 그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최근 ‘완전한’을 ‘영구적인’(Permanent)으로 대체하며 북한의 비핵화 수위를 높였다. 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무기를 가장 크게 문제 삼았다가 이번에는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 전체로 해체 대상을 확장했다. 이처럼 미국의 요구가 격상되자 북한이 이에 밀리지 않겠다며 중국을 찾아 북·중 연대를 과시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북·미 담판이 실패하거나 무산되더라도 북한이 중국의 ‘우산’ 밑에 깊이 숨어버리면 미국도 군사 옵션을 검토하기가 대단히 거북할 것이란 계산이다.

김정은은 지난 3월 베이징을 전격 방문했을 때 시 주석과 북·중 관계 복원에 합의했다. 남북대화 재개에 앞서 소원했던 중국과 먼저 관계를 개선했다. 이번에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과 비핵화 등에 대한 입장을 조율하면서 중국의 우군 역할을 재확인했으리라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과 미국이 22일 정상회담을 하듯 북한도 중국과 나눌 얘기가 있었을 것”이라며 “북한은 완전한 체제 보장을 원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중국은 북한에 핵심적인 나라”라고 설명했다.

북·중 관계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잇단 방중에 중국은 반색할 것으로 본다. 북·미 정상회담이 가시권에 오르고 남북 정상회담까지 이뤄지며 나왔던 ‘차이나 패싱’(중국 배제)을 희석하는 효과를 줄 수 있어서다. 과거 한·미·일 대 북·중·러의 구도에서 중국은 북한의 최대 후견인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김정은의 북한이 한국과의 대화 재개는 물론 미국과 직접 대화를 시도하며 중국의 역할이 급격히 축소되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랐다. 당장 시 주석은 이날 “북한과 중국은 운명공동체라고 말했다”고 북한 언론들이 전했다.

일각에선 북·미 정상회담의 일자와 장소 발표를 앞두고 중국이 북한을 호출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중국은 향후 한반도에서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이 체결될 경우 자신들의 발언권을 행사하겠다는 의도가 확고하기 때문이다.

김용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북한과 미국의 빅딜이 이뤄질 경우 자신들의 영향권에서 북한이 벗어날 것을 우려한 시 주석이 다롄을 방문하는 기회에 김정은을 불러 미국과 적당한 선에서 거래에 나서도록 주문했을 수도 있다”고 봤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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