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다리처럼 … 김정은·시진핑 산책·벤치회담

중앙일보

입력 2018.05.09 01:18

업데이트 2018.05.0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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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8일 다롄 해변을 산책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8일 다롄 해변을 산책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다롄(大連) 방문은 처음부터 끝까지 파격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도 베이징 방문을 마친 지 40여 일 만에 김 위원장이, 그것도 전용기 편으로 다시 방중 길에 오른 것은 전문가들조차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방중이 잦았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약 3개월 간격으로 중국을 다시 찾은 적이 있지만 40여 일 만의 재방문은 북·중 관계는 물론 외교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북·중 이례적 소프트 정상외교
다롄 시내서 차로 20분 방추이다오
김일성 자주 묵던 휴양지서 회담
북·중 우의 과시하는 장면 연출
또 깜깜이 방중 … 평양 귀환 뒤 발표

김 위원장과 시진핑 국가주석은 다롄 시내에서 자동차로 20분가량 거리인 해변 휴양지 방추이다오(棒槌島)에서 1박2일간 회담과 연회 및 해변 산책 등으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전례 없이 소프트한 정상 외교였다.

국영방송인 중국중앙방송(CC-TV) 화면에는 두 사람이 기암괴석이 즐비한 방추이다오 해변을 나란히 걷는 장면이 반복해 나왔다. 남북 정상 간의 도보다리 회담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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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추이다오는 마오쩌둥(毛澤東) 시절부터 중국 지도자들이 외국 요인과의 회담이나 휴양을 위해 찾던 곳으로 김일성 주석도 여러 차례 이용했던 곳이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략을 숙의하면서 최대한의 전통 우의를 과시하는 모습을 연출하기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3월 베이징 방문 때는 동행하지 않았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도 이번엔 함께했다.

김 위원장의 방중은 7일 낮까지만 해도 철저히 보안에 부쳐졌고 외신들도 아무런 낌새를 채지 못했다. 방중설이 처음 흘러나온 것은 다롄 시민들을 통해서였다. 7일 낮 다롄 공항이 3∼4시간 동안 사전 예고 없이 폐쇄되고 민간 항공기의 이착륙이 금지됐다. 이와 함께 시내 곳곳의 도로에 교통통제가 시행되고 경비가 삼엄해졌다. 검은색 차들이 열을 지어 달리는 모습도 목격됐다. 다롄에서 영빈관으로 사용하는 일대는 7일부터 8일까지 일반인의 출입이 수㎞ 앞에서부터 완전 통제됐다.

다롄 시민들은 처음엔 시 주석의 방문 때문일 것으로 생각했다. 다롄 조선소에서 건조된 중국의 첫 국산 항공모함인 ‘001A’의 시범 항해가 예고돼 있었고 시 주석이 참관할 것이란 소문이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 주석의 방문으로만 보기엔 경호 태세가 너무 삼엄했다. “북한 고위 지도자가 다롄에 왔다”는 소문이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나돈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김정은 방중설에 무게를 실어준 건 북한 비행기를 봤다는 목격담이었다. “고려항공 비행기를 봤다”거나 “화물기가 착륙했다”고 말하는 공항 직원들이 나타났다. 현지의 한 사진가는 7일 다롄 상공에 출현한 김정은 전용기를 촬영했다며 블로그에 올렸다. 하지만 배경엔 푸른 하늘뿐이어서 진위를 확인할 길이 없었고 그마저도 곧 삭제됐다.

전문가들도 “삼엄한 경비 상황을 보면 누가 온 것 같긴 하지만 상식으로는 납득이 안 된다”며 반신반의했다.

숱한 의문은 김정은의 전용기가 이륙하는 장면이 8일 외신 카메라에 생생하게 포착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다롄 당국은 8일 오후 1시(현지시간)부터 5시까지 다시 공항 이용을 통제했다. 그런 가운데 오후 1시30분쯤 고려항공 화물기로 보이는 비행기가 다롄 공항에 착륙했다. 이 비행기가 공항 내 계류장에 김정은 전용기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NHK 카메라에 잡혔다. 뒤이어 3시20분쯤 전용기가 중국 관리로 보이는 사람들의 송별 속에 이륙하는 장면도 촬영됐다.

파격의 연속이었지만 딱 하나 지켜진 관례가 있다. 김 위원장이 평양에 도착한 뒤 두 나라가 국영방송을 통해 동시에 방중 사실을 발표한 것이다. 발표문으로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김 위원장이 40여 일 만에 중국을 다시 찾을 만큼 다급한 사정이 있었는지, 발표문에 드러나지 않은 속 깊은 대화가 무엇이었는지는 아직 추정의 영역 속에 남아 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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