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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홍진기 창조인상 수상자] 비주류 음악에 희망의 빛 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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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문화예술부문 류재준 작곡가 

문화예술부문 류재준 작곡가

문화예술부문 류재준 작곡가

유민(維民) 홍진기(1917~86) 한국 최초 민간 방송인 동양방송(TBC)을 설립하고 중앙일보를 창간해 한국 대표 언론으로 탄탄한 기반 위에 올려놓았다.

유민(維民) 홍진기(1917~86) 한국 최초 민간 방송인 동양방송(TBC)을 설립하고 중앙일보를 창간해 한국 대표 언론으로 탄탄한 기반 위에 올려놓았다.

홍진기 창조인상은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 발전기에 정부·기업·언론 분야에서 창조적인 삶을 실천하는 데 힘을 쏟았던 고(故) 유민(維民)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2010년 제정됐다. 아홉 번째 영예를 안은 올해 수상자들은 시대를 선도하는 혁신적인 창의성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힘과 긍지를 세계에 떨치고 새 비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는 이홍구 전 총리, 송자 전 교육부 장관, 송호근 서울대 석좌교수,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권오경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이건용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 맡았다. 이홍구 심사위원장은 “기성세대의 과거 업적을 포상하는 기존 상들과 차별화해 인류 문명의 변혁기에 젊은 세대의 미래 가능성을 격려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세계적 명성 펜데레츠키의 후계자 #“음악은 대화” 기초예술 가치 재조명 #림프종 투병에도 작곡활동 온 힘

봄볕 환한 창밖을 내다보는 류재준(48) 작곡가의 시선이 움트는 푸른 싹에서 멈췄다. 피곤해 보이는 낯빛, 퉁퉁 부은 얼굴엔 그늘이 졌다. ‘뭔지 모르고 폼만 잡는, 현대 음악 이게 뭡니까’라고 독설을 퍼붓던 몇 년 전 그가 아니었다. “아프기 전에 오셨으면 좋았을걸. 음악 생산성이 한창일 때 상을 주셨으면 더 기뻤을 텐데요. 박근혜 정권에 밉보였는지 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금이 끊겨서 서울국제음악제 무산될까 봐 이리 뛰고 저리 뛰던 때 도와주셨으면 힘이 났을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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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림프종으로 투병 중이었다. 마음의 병인가 싶게 종일 신경이 곤두서 손을 놓고 있다고 했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진은숙씨에 이어 한국 작곡가로는 드물게 유럽 음악계에서 작품을 위촉받는 그이지만 요즘은 하루 두세 시간 집중하기도 힘들 지경으로 체력이 떨어졌다. 현대 음악의 중요 요소인 ‘불확실성’을 확립한 폴란드의 세계적인 작곡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85)가 공식 후계자로 인정할 만큼 촉망받던 젊은 거장은 그 시절을 회상하며 잠시 눈빛이 밝아졌다.

“새로운 음악을 배우고 싶어 무작정 찾아간 펜데레츠키에게 거듭 퇴짜를 맞았죠. 대위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서 걸렸고, 열심히 작곡한 작품도 평범하다는 한마디로 잘렸습니다.”

세 번째 만남에서 그는 펜데레츠키의 제자가 됐다. 대위법이 ‘대화’라고 답하는 순간, 스승은 그를 맞아들였다.

“지금 제게 대위법은 스토리입니다. 음악은 이야기로 듣는 이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제 음악이 속삭이고 부르짖는 말을 알아들어 위로받고 구원받을 수 있다면 그게 다입니다. 요즘 음악은 사람들로부터 너무 떨어져 있어요. 사람을 위한 음악이 없어요. 음악가는 자기 옆을 돌아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저는 예술이 정치색을 띠는 건 혐오하지만 이웃을 외면하는 건 못 참죠.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애가’를 쓴 까닭입니다.”

그는 이번 유민 홍진기 창조인상 수상이 수많은 무명의 예술가에게 힘이 될 것이기에 더 기쁘다고 했다. 대중예술이 대세를 이루고 기초예술에 대한 조명이 약해지는 시류 속에서 맥이 빠져있는 후배들을 대표해 받는 셈이라고 말했다.

“제가 이 상을 받음으로써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비제도권 소수 예술가들이 희망의 빛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예술은 특히 주류보다는 비주류가 더 큰 일을 하는 흐름이 있죠. 10명 연주자가 5명 관객을 놓고 음악회를 여는 콘서트홀에 눈 돌리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아 잠시 말을 잊었다. 2019년까지 작품 위촉이 들어와 있어 공연 날짜에 맞춰 마무리하느라 지난 몇 달 용을 썼지만 세 곡 쓰고 나서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라는 것이다.

“요즘 제가 작곡한 곡을 들은 분들이 왜 이렇게 슬프냐고 되물어요. 온몸을 갉아먹는 병마로부터 벗어나는 것, 그 고통을 딛고 일어나 청중이 제 음악을 듣고 있는 동안에는 편하고 즐겁고 행복해질 수 있는 아름다운 곡을 쓰는 게 지금 저의 소원이자 살아남아야 할 이유입니다.”

류재준(1970년생)

▶서울대 음대 작곡과 졸업 ▶폴란드 크라코프 음악원 졸업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 핀란드 난탈리 페스티벌·독일 메클렌부르크 페스티벌 상주 작곡가 역임 ▶2015년 폴란드 1급 훈장 ‘글로리아 아르티스’ 수상 ▶앙상블오푸스 음악감독 ▶대표작 ‘진혼 교향곡’ ‘첼로 협주곡’ ‘마림바 협주곡’

글=정재숙 문화,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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