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굿모닝내셔널]‘장수 지팡이’ 1400자루 선물한 허리 꼿꼿한 90세 할아버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나보다 불편한 노인에게"…서재원 할아버지 지팡이 기부

충북 보은군 산외면에 사는 서재원(90)씨가 자신이 만든 옻나무 지팡이를 보여주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북 보은군 산외면에 사는 서재원(90)씨가 자신이 만든 옻나무 지팡이를 보여주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북 보은군 산외면에 사는 서재원(90)씨는 ‘지팡이 할아버지’로 불린다. 허리가 굽거나 괴상한 지팡이를 짚고 다녀서 붙은 별명이 아니다. 구순의 나이에도 울퉁불퉁한 나무를 다듬어 지팡이를 만들고, 몸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지팡이를 선물한다. 아들뻘인 60대 노인들과 하루 3시간씩 게이트볼을 즐기며 10㎞ 이상을 꼭 걷는다. 일주일에 서너개씩 지팡이를 만드느라 손이 거칠어졌지만 서씨의 허리는 꼿꼿하다.

서씨는 2015년부터 홀로 나무지팡이를 만들었다. 첫해 보은군 노인대학과  보은농협, 마을 주민 등에 지팡이 205자루를 선물한 뒤 지금까지 각종 단체에 '장수지팡이' 1400여 자루를 기증했다. 서씨는 “몸은 성한데 4년 전부터 귀가 잘 안들려서 남들과 대화도 못하고 외부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게됐다”며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문뜩 지팡이가 떠올랐다. 기왕에 만드는 것 지팡이를 필요로 하는 곳에 무료로 나눠주기로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서재원씨가 지팡이 대를 만들기 위해 각목을 다듬고 있다. 4각-8각-12각-다듬기 순으로 한다. 프리랜서 김성태

서재원씨가 지팡이 대를 만들기 위해 각목을 다듬고 있다. 4각-8각-12각-다듬기 순으로 한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북 보은군 산외면 서재원씨의 집 마당에 지팡이 재료로 쓰일 나무가 쌓여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북 보은군 산외면 서재원씨의 집 마당에 지팡이 재료로 쓰일 나무가 쌓여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1928년생인 서씨는 젊은 시절 목수 일을 했다. 책상과 장롱 등 가구를 직접 만들어 판매할 정도로 나무 다루는 솜씨가 좋았다. 한번 눈에 익힌 물건은 밑그림만 대강 그려놓고 제작할 정도였다고 한다. 지팡이를 만드는 법도 따로 배운 게 없다. 제재소를 돌며 눈에 띄는 나무가 있으면 틈틈이 구해뒀다가 장에서 파는 지팡이를 흉내내서 만들었다.

“지팡이 손잡이는 야물고 단단한 벗나무·대추나무·박달나무를 써야 안부러지고 고장이 안나. 지팡이 대는 옻나무·은행나무·엄나무 같은 가벼운 재질을 여러번 다듬어서 쓰지. 그래야 노인들이 들고 다니기 편하거든.”

서씨는 지팡이 재료를 절단하는 무거운 전기톱과 공정에 사용되는 글라인더·대패· 끌·쇠망치 등 30여 개 공구를 직접 다룬다. 원목을 15㎝ 두께 송판으로 잘라낸 뒤 수십번의 대패질을 거쳐 지팡이대를 다듬고 나무망치와 끌을 이용해 지팡이 손잡이를 만든다.

서재원씨가 만든 나무 지팡이. 프리랜서 김성태

서재원씨가 만든 나무 지팡이. 프리랜서 김성태

지팡이 손잡이에는 스테인리스 파이프를 끼워 단단히 고정할 수 있게 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팡이 손잡이에는 스테인리스 파이프를 끼워 단단히 고정할 수 있게 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팡이를 만드는 게 평탄했던 것 만은 아니다. 처음 만든 지팡이는 가지가 구부러진 나무를 통째로 사용하는 바람에 손잡이 부분이 자주 부러졌다. 서씨는 “손잡이와 지팡이대를 성질이 다른 나무를 쓰고 연결부위에는 약 10㎝ 길이 스테인리스 파이프를 끼워 철심으로 박았다”며 “그렇게 만든 지팡이는 지금까지 못 쓰게 됐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팡이 덕에 건강챙겨"…매일 왕복 14㎞ 걷기 건강비결

서씨는 완성된 지팡이에 ‘150’, ‘155’, ‘160’, ‘165’ 등 숫자를 적어 10개씩 묶음으로 보관한다. 노인들의 키에 맞춰 지팡이를 구분한 것이다. 노하우가 없던 초창기에는 눈대중으로 길이를 맞추는 바람에 지팡이 길이가 거의 똑같았다. 서씨는 “내 키가 150㎝인데 이만하면 괜찮다 싶어 내 배꼽 바로 밑을 기준으로 지팡이 길이를 맞췄다”며 “그랬더니 나보다 키 큰 사람한테는 맞지가 않는다는 애기를 듣고 길이를 달리했다. 키 155~165㎝용 사이즈 지팡이를 가장 많이 만든다”고 했다.

서재원씨가 큰아들 서동수(69·왼쪽)씨와 짚공예품을 소개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서재원씨가 큰아들 서동수(69·왼쪽)씨와 짚공예품을 소개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서재원씨가 완성된 지팡이를 점검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서재원씨가 완성된 지팡이를 점검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서씨는 자신의 건강 비결을 꾸준한 운동으로 꼽았다. 70대 초반 산외면 산악회를 조직해 15년간 회장을 맡으면서 주민들과 함께 전국 명산을 다녔다. 집에서 7㎞ 떨어진 면소재지 게이트볼장을 13년 동안 거의 매일 걸어다녔다. 매월 15일엔 왕복 30㎞ 거리에 있는 보은읍까지 걸어가서 일을 보고 온다. 서씨는 “고된 작업이지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온 몸뚱이를 놀리다보니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며 “이전에 짚공예를 4~5년 하면서 생겼던 목·어깨·허리 통증이 지팡이를 만들면서 깨끗이 나았다”고 했다.

서씨는 지난달 12일 보은군내 4개 보훈단체에 지팡이 400여 자루를 기증했다. 현재 만들고 있는 지팡이는 올 하반기 노인단체 등에 선물할 예정이다. 서씨는 “볼품 없는 나무가 내 손을 거쳐 쓸모있는 지팡이가 되었듯이 나이 많은 노인들도 여가를 어떻게 선용하느냐에 따라 지역사회에 큰 보탬이 될 수 있다”며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지팡이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지팡이 1400여 자루를 기부한 서재원씨는 올해도 지팡이 기부를 계속할 계획이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팡이 1400여 자루를 기부한 서재원씨는 올해도 지팡이 기부를 계속할 계획이다. 프리랜서 김성태

보은=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관련기사

굿모닝내셔널더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