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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실패, 불법다단계로 신불자…3개월 준비해 재취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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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더,오래] 박영재의 은퇴와 Jobs(20)

전기공학을 전공한 김영국(53) 씨는 대학 시절 만능 스포츠맨으로 국가대표 선수까지 지냈다. 졸업 후에는 운동보다는 본인의 전공을 살려 관련된 중견기업에서 회사생활을 시작했고, 지방 사업장의 공장장까지 승진했다.

주변 지인의 권유로 3년 전에 퇴직한 뒤 사업을 시작했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도와주겠다던 지인은 하나둘 사라지고 결국 1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사업을 정리하니 집을 담보로 받은 은행 대출금만 남아 있었다. 막막한 마음에 재기할 수 있는 아이템을 알아보다 새로운 사업을 소개받아 시작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려보니 불법 다단계 사업으로, 신용불량자가 돼 있는 것이 아닌가?

집 나와 한강 고수부지서 혼자 소주 들이켜  

충분한 사전준비 없이 많은 돈을 투자하여 사업을 시작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충분한 사전준비 없이 많은 돈을 투자하여 사업을 시작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수 개월간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빚만 늘었다. 아내와의 관계도 극단으로 치달았다. 우선 집을 정리해 부채를 갚고 변두리 반지하 방에 월세로 입주했다. 남은 얼마간의 돈을 아내에게 주고 가방을 싸 들고 무작정 집을 나왔다. 한강 고수부지에서 혼자 소주를 마시며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됐다.

충분한 사전준비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변 사람의 이야기만 듣고 전 재산을 투자해 사업을 시작했다가 실패했다. 빠른 시간에 남들에게 보여야겠다는 조급한 마음과 쉽게 많은 돈을 벌겠다는 욕심에 불법 다단계를 시작했다. 결국 실패의 원인은 준비 부족과 욕심이었다.

신용등급이 나빠졌고 관련 업계에 안 좋은 소문이 돌았다. 현실적으로 취업은 어려웠다.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봤다. 그중 전기와 관련된 노동이 다른 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몸을 덜 쓰고 오랫동안 할 수 있는 데다 실내에서 할 수 있어 일기 변화에 덜 영향을 받는다는 판단이 들었다. 인력회사와 접촉했고, 전기 노동일을 시작했다.

지방에 있는 모 전자회사 기숙사 리모델링 공사현장에 투입됐다. 이런 일은 팀을 이뤄 원룸에서 숙식하면서 새벽에 일어나 저녁까지 함께 생활하는 것이 특징이다. 처음에는 사다리 잡는 보조 일부터 시작했다. 점차 전기배선을 만지고 선을 연결하는 전문기술자로 성장하면서 일당도 올랐다.

펜치와 같은 공구는 본인이 구매해야 했는데, 자연스럽게 공구의 종류도 많아지고 기술도 점점 늘었다. 집을 나온 지 3개월 만에 다시 가족과 합치게 됐다. 부인도 김 씨의 이런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남편에 대한 신뢰가 다시 생기게 됐다.

새로운 분야에 재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에 대한 훈련 기간이 필요하다. [중앙포토]

새로운 분야에 재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에 대한 훈련 기간이 필요하다. [중앙포토]

새로운 분야로 취업하고자 하는 사람은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작용한다. 첫 번째는 자신이 사업을 할 것을 전제로 전문 업체에 취업해 경험을 쌓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지금까지 일해 온 분야에서는 나이나 연봉 등으로 인해 취업하기 어려우므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경우다.

아마도 반퇴 세대는 두 번째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첫 번째의 경우는 본인이 원해 내린 결정이기 때문에 경험을 쌓는 과정에서 어렵고 고생스러운 부분이 있더라도 쉽게 극복할 수 있다. 두 번째의 경우는 이제까지 해온 것과 생판 다른 일을 해야 하므로 리스크도 크고 준비 기간도 길다. 또 경력과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해 현역시절보다 급여가 크게 줄어들고, 지위마저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상대적인 상실감이 크게 나타난다.

반퇴 세대를 채용하는 구인업체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지원자가 과연 그 업무를 할 수 있겠느냐는 직무수행의 적합성이다. 이 적합성을 알아보기 위해 구직자에게 확인하는 것이 해당 분야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았는가 하는 점이다. 따라서 새로운 분야에 재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에 대한 훈련 기간이 필요하다. 직무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적어도 3개월에서 1년 정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여기서 공통점이 나타난다. 두 경우 모두 경험을 쌓고, 새로운 교육을 받기 위한 적응 기간, 즉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전혀 새로운 분야로 전직하기 위해서는 절대 서둘러서는 안 된다. 새로운 곳으로 진입하기 위한 완충기가 필요하다.

40대 이상 중장년 평균 근속연수 1~3년  

40대 이상 중장년의 평균 근속연수. [출처 전경련중소기업협력센터·잡서치(JOB search), 제작 김예리]

40대 이상 중장년의 평균 근속연수. [출처 전경련중소기업협력센터·잡서치(JOB search), 제작 김예리]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새로운 분야의 취업이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임시방편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직장인의 한 회사 평균 근속연수는 6.2년이다. 지난 2일 전경련중소기업협력센터가 발표한 ‘2018년 중소‧중견기업의 채용계획 및 중장년 채용인식 실태 조사’에 따르면 40대 이상 중장년의 평균 근속연수는 ▲6개월 이하 7.2% ▲6개월 초과~1년 이하 19.5% ▲1년 초과~3년 이하 46.6% 등으로 3년 이하인 경우가 73.3%로 나타났다.

기왕에 힘들여서 새로운 분야로 진출하려면 등 떠밀려 가듯이 수동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고, 앞으로 20년 이상 더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찾는 것이 중요하다. 또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면 일에 대한 편견을 버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사무 관리직 분야에서 일한 사람은 퇴직 후 같은 분야의 직장을 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갖고 도전해 보고 싶지만, 선뜻 결정하기가 쉽지는 않다. 주변의 눈도 의식하게 되고, 나에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뜻 내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럴 경우 두 가지 질문을 나 자신에게 해보자.

첫째는 ‘이 일이 진정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인가?’다, 둘째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다. 만일 이 두 가지 질문에 모두 ‘예’라는 대답이 나온다면 그 일에 편견을 갖지 말고 시작하면 된다.

박영재 한국은퇴생활연구소 대표 tzang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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