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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에 담긴 최저임금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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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종윤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장
김종윤 경제부장

김종윤 경제부장

“적어도 6개월이 지나야 최저임금 인상 영향에 대한 분석이 가능하다.”

석 달 통계만 봐도 최저임금 부작용 속출 #1만원 고집말고 인상 속도와 폭 조절해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일 이렇게 말했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7530원. 지난해보다 16.4% 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은 3년 내(2020년까지) 최저임금(이하 시간당) 1만원 달성이다. 올해와 내년에도 16% 이상 올려야 가능하다. 소득을 늘려 성장을 이끈다는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 정책이다.

김 부총리는 “두세 달 숫자만 갖고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을) 예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정책 효과나 부작용을 따져보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말이다. 성급하게 단정하지 말자는 취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통계 수치를 보면 흐름을 알 수 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앞날을 내다보는 근거도 숫자에 담겨 있다.

먼저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다. 지난해 4분기 대비 1.1% 성장했다. 나쁘지 않은 수치다. 업종별로는 제조업(1.9%)과 건설업(3.3%)이 선방했다. 문제는 서비스업, 그중에서도 ‘도소매 및 음식숙박업’이다. 0.9%나 쪼그라들었다. 편의점, 식당, 숙박시설 등이 주로 여기에 해당한다. 저임금 인력이 많은 업종이다.

이번에는 고용 통계다. 3월 전체 실업자 수는 125만7000명, 실업률은 4.5%까지 치솟았다. 3월 기준으로 놓고만 볼 때 전체 실업자 수는 2000년 이후 가장 나쁜 수치다. 도소매업·숙박음식점업 취업자 수를 챙겨 봤다. 올 3월에는 지난해 3월보다 11만6000명 줄었다. 임시근로자는 9만6000명, 일용근로자는 1만6000명 감소했다.

실업급여 현황도 눈에 띈다. 폐업·해고 등으로 일자리를 잃은 비자발적 퇴직자가 90일~240일분의 실업급여를 받는다. 올해 1분기 실업급여 수급자는 62만8433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만557명(6.9%) 증가했다. 분기별 수급자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0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언급한 세 가지 통계의 신뢰도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통계를 낸 곳이 한국은행·통계청·고용정보원이기 때문이다.

물론 통계에는 착시가 있을 수 있다. 김 부총리가 시간을 두고 숫자를 꼼꼼하게 분석하자는 건 타당한 판단이다. 하지만 이미 흐름이 일관성을 보이는데 개선을 고민하지 않고 미적대면 정책은 구렁텅이에 빠진다. 김 부총리는 나빠진 고용 수치가 2분기에는 개선될 것으로 보는 걸까. 그렇다면 헛다리 짚을 공산이 크다.

이미 내년도 최저임금 논의가 시작됐다. 최저임금위원회가 곧 구성된다. 위원회는 6월 29일까지 내년도 최저임금 안을 정해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6개월간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와 부작용을 검토하기도 전에 내년도 기본 안이 정해진다는 의미다.

최저임금 인상 필요성에 대해 반대하는 게 아니다. 문제는 속도와 폭이다. 왜 3년 안에 1만원이 돼야 하는지 설명이 없다. 한국의 경제 규모를 봤을 때 그 수준이 타당하다는 말인가. 1만원이 되면 노동자는 빈곤에서 벗어나나. 어떤 근거로 1만원이 나왔는지 알 도리가 없다.

한국노동패널 조사나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 등에 따르면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노동자의 65~70%가 빈곤 가구 출신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생활비에 보태거나 용돈을 벌 요량으로 노동 시장에 나온 부(副)소득자나 아르바이트생이 주로 최저임금 대상자라는 의미다.

저소득 노동자에게는 근로소득 금액에 따라 근로장려금을 지급하는 근로장려세제(EITC) 같은 제도를 확대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일을 열심히 해 소득이 늘수록 장려금을 더 받기 때문에 근로의욕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늦지 않았다. 지금은 최저임금을 언제까지, 얼마로 조정하는 게 적합한지 따져봐야 할 때다. 사회적 공감대 없는 과다한 최저임금 인상은 오히려 한계선상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아 극한으로 내 몰수 있다. 착한 정책이 다 좋은 건 아니다. 잘못 운영하면 독이 된다.

김종윤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