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농성 중이던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5일 기습 폭행한 김모(31)씨는 경찰 조사에서 “홍준표 한국당 대표도 테러하려 했다”고 진술했다고 같은 당 성일종 의원이 말했다.
김씨는 경찰 체포 직전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이 그렇게 어렵냐”,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무죄”라고도 외쳤었다. 한국당이 김씨의 범행을 “철저히 계획된 범죄”로 규정하고 “행적 조사와 배후까지 파헤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김 원내대표와 같은 정치인들의 수난사는 과거에 여러 차례 있었다. 그 방식은 인분을 뿌리거나 흉기를 휘두르는 식이었다. 이미지가 중요한 정치인에게 테러는 그 자체로서 봉변이고 굴욕이다. 하지만 대처방식에 따라 전화위복이 되는 사례도 있었다.
◇박근혜 커터칼 피습 사건
대표적인 정치인 테러는 2006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당한 커터칼 테러다. 5ㆍ31 지방선거를 앞둔 5월 20일 테러범 지충호는 당시 박 대표의 얼굴에 예리한 칼을 휘둘러 10㎝ 넘는 상처를 입혔다.
하지만 당시 박 대표가 병문안을 찾은 측근에게 “대전은요?”라고 지방선거 판세를 물었다는 일화가 공개되며 동정 여론이 일었다. 이에 힘입어 한나라당은 지방선거에서 서울ㆍ경기ㆍ대전 등 광역자치단체 12곳을 휩쓰는 대승을 거뒀다.
당시 지씨는 범행 동기와 관련해 “억울함을 풀기 위해 큰 사건을 터뜨려 주목받고 싶었다”고 변호인에게 말했다. 대법원은 2007년 지씨에 대해 “단순한 상해 사건에 그치지 않고 민주주의 질서를 교란하는 한편 올바른 선거문화 정착에 큰 걸림돌이 되는 중한 범죄”라며 징역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지씨는 2016년 5월 만기 출소했다.
◇100여명 정치깡패의 각목 습격
1987년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인 이른바 ‘용팔이 사건’은 대표적인 정치공작 테러 중 하나다. 같은 해 초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민주화 운동이 폭발적으로 일면서 김영삼ㆍ김대중 전 대통령은 통일민주당을 창당했다. 4월 20일부터 전국 20여개 지구당에서 창당 행사를 갖던 중 폭력배들이 행사장에 들어와 난동을 부렸다.
훗날 이 사건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주장하는 새 야당의 출현을 막기 위한 정권 차원의 정치공작으로 밝혀졌다. 징역 2년 6개월을 살고 나온 ‘용팔이’ 김씨는 이후 종교에 귀의했다. 2015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목사 신분으로 조문을 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밀가루ㆍ계란ㆍ인분 등 투척 행위도 많아
정치인 테러 중 가장 빈번한 사례는 투척이다. 물리적 피해는 덜하되, 시각적으로 강렬한 계란ㆍ밀가루 등이 자주 사용된다. 때로는 최루탄이나 인분이 던져진 적도 있다. 인분 투척의 대명사는 ‘장군의 아들’ 김두한 전 의원이다. 그는 1966년 9월 22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사건을 따지던 중 미리 준비한 인분통을 총리와 국무위원들에게 집어 던졌다.
역대 대통령들은 주로 계란 봉변을 당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인 1999년 일본에 방문하려 김포공항에서 수속을 밟던 중 붉은 페인트가 섞인 계란을 맞았다. 김 전 대통령이 IMF 경제위기를 초래했다는 게 이유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후보로 유세하던 중 시민이 던진 계란을 맞았다. 그는 당시 “달걀 맞아서 일이 풀린다면 얼마든지 맞겠다”며 계란을 뒤집어쓴 채 끝까지 연설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대선 후보 시절 거리 유세장에서 계란 세례를 받았고, 노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옷에 계란이 묻은 채 연설을 마쳤다.
계란 세례를 당한 결과가 각각 호재와 악재로 국면이 나뉜 경우도 있다. 1991년 전교조를 불법화해 대학가의 원성을 사던 정원식 당시 총리서리는 한국외대 강의 도중 학생들의 계란ㆍ밀가루 세례를 받았다. 밀가루를 뒤집어쓴 그의 사진이 보도된 뒤 패륜 논란이 일었고 그는 정식 총리로 임명됐다. 2016년 당시 황교안 총리는 사드 배치와 관련해 경북 성주에 내려가 주민들에게 사과하던 중 계란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이후 경북지방경찰청이 투척자 색출에 나서면서 황 총리는 주민들의 더 큰 항의에 직면해야 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습격 사건
주한 외국인을 상대로 한 테러도 있었다. 2015년 마크 리퍼트 당시 주한 미국대사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강연을 준비하던 도중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로부터 흉기로 얼굴과 왼쪽 손목 부위를 수차례 공격당했다.
김기종 대표는 범행 직전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하라”고 외쳤다. 반(反)한·미동맹주의자에게 테러를 당한 리퍼트 당시 대사는 그러나 수술을 마친 뒤 한국어로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같이 갑시다”라고 말해 굳건한 한·미동맹의 상징이 됐다. 김 대표에게는 2016년 9월 징역 12년이 확정됐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