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밀회 현장 뒤끝없이 덮은 통 큰 남편

중앙일보

입력 2018.05.05 15:02

업데이트 2018.05.05 15:56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 옛이야기(6)

서울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니다가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가랑이가 넷이도다.

둘은 나의 것이었고

둘은 누구의 것인가?

본디 내 것이지마는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어 시간에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신라 헌강왕 때 사람인 처용이 불렀다는 노래다. 잠자리의 가랑이가 넷인데 둘은 나의 것이되 둘은 누구의 것인가 물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대뜸 한다는 말이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오?’다. 아내의 가랑이는 알겠으나 나머지 가랑이는 누구의 것인가. 그런데 아내가 누군지도 모를 이와 한 방에 있는데 ‘어찌하리오?’ 한 마디로 상황 종료라니, 이 한 마디를 이해하자면 꽤 멀고 긴 여정이 필요하다.

『삼국유사 』 권2 '처용랑망해사조(處容郞望海寺條)' 원문. [사진 한국콘텐츠진흥원(http://www.culturecontent.com)]

『삼국유사 』 권2 '처용랑망해사조(處容郞望海寺條)' 원문. [사진 한국콘텐츠진흥원(http://www.culturecontent.com)]

『삼국유사』 권2 '처용랑망해사조(處容郞望海寺條)'에 적힌 설화에 의하면, 신라 49대 헌강왕 때 동해 용왕의 아들 처용이 왕의 일을 돕게 되면서 급간(級干) 벼슬과 더불어 아름다운 아내를 얻게 되었다. 그의 아내가 무척 아름다웠기 때문에 역신(疫神)이 흠모해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하고 밤에 찾아왔다.

처용이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면서 물러나자 역신이 무릎을 꿇고는 공(公)이 노여움을 나타내지 않으니 감동했다며 지금부터는 공의 형상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곳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이로 인해 나라 사람들이 처용의 모습을 그려 문에 붙이고 사기(邪氣)를 물리치고 경사스러움을 맞아들였다는 것이다.

노래에서 “누구의 것인가?” 물었던 가랑이 둘의 주인은 역신이었다. 불륜남 역신이 남편 처용에게 현장을 들킨 상황이다. 그런데 싸움이 벌어지기는커녕 남편은 노래하며 춤을 추고 불륜남은 그걸 보더니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난다. 남편이 놓아주는 상황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남편의 얼굴을 그린 그림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겠다며 뒤끝 없이 물러나는 불륜남도 대단하다 싶다.

처용의 넓은 도량에 감동한 아내의 불륜남 
처용 탈. [사진 국립국악원(http://www.gugak.go.kr)]

처용 탈. [사진 국립국악원(http://www.gugak.go.kr)]

'처용가'를 이해하는 데에는 설화 '도량 넓은 남편'이 동원된다. 일단 이야기부터 들여다보자. 옛날 김 정승 아들과 이 정승 딸이 서로 흠모하는 사이였다. 그런데 이 정승 딸이 다른 집으로 시집을 가버렸고, 김 정승 아들은 시름에 겨워 끙끙 앓았다. 보다 못한 김 정승이 돈을 주며 세상 유람이라도 다녀오라고 하자 김 정승 아들은 방물장수로 꾸미고 이 정승 딸이 시집간 집을 찾아갔다.

재회한 두 사람은 뜨겁게 회포를 풀었고, 김 정승 아들은 그날부터 무시로 그 집을 찾아가 밤을 보냈다. 꼬리가 길어지다 보니 결국 그 집 큰아들이 수상한 기운을 포착한다. 이 정승 딸의 남편은 그 집 작은아들이었는데 공부하러 절에 들어가 있다. 그 집에서는 며칠에 한 번씩 찾아오는 방물장수가 작은며느리에게 말동무라도 해주면 좋을 줄 알았던 것인데, 큰아들은 아무래도 방물장수가 사내인 것만 같아 절에 있던 동생을 불러왔다.

이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가 맞이하게 될 결말은 작은아들 손에 달려 있다. 작은아들이 이 정승 딸과 김 정승 아들이 함께 있는 방에 칼을 들고 들어갔을 때 어떤 장면이 펼쳐지길 기대하시는가.

작은아들은 잠자리에 가랑이가 넷인 상황을 목격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옷을 벗으시오.” 그러고는 더욱 큰 소리로 “아휴, 실례했습니다. 제가 잘못 알았습니다” 했다. 작은아들은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던 큰아들에게 괜한 오해하지 말라고 하고는 절로 도로 가버렸다.

그 이후 전개는 밀회를 들켜버린 이 정승 딸과 김 정승 아들의 태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야기 안에서 두 사람은 이 일로 크게 깨달았다. 이 정승 딸은 남편 뒷바라지에 힘썼고, 김 정승 아들도 정신 차리고 열심히 공부해서 급제하고 벼슬을 얻게 되었다.

여기까지 갔어도 훌륭한 마무리라고 할 수 있겠으나 이 이야기의 가장 반짝이는 장면은 다음이다. 이 정승 딸의 남편도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으니 큰 벼슬을 얻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정에서 김 정승 아들과 마주쳤다. 김 정승 아들이 아는 체를 하며 지난번엔 감사했다고 하자, 남편은 김 정승 아들더러 큰 인물은 못 되겠다고 하고 가버렸다.

불륜 덮는 것, 그 너머를 바라본 '도량 넓은 남편'

이 설화의 제목이 '도량 넓은 남편'이라 했다. 그런데 김 정승 아들에게는 어째서 저런 말을 하는 걸까. 다시 생각해 보니 남편이 이미 한 번 현장에서 도량을 보였으면, 그래서 그 일로 인해 김 정승 아들도 자신의 인생을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거다. 차라리 처용의 도량을 경험하고 깔끔하게 물러난 역신은 김 정승 아들보다는 한 수 위이다.

처용과 도량 넓은 남편이 관계를 운용해 나가는 기술이 섬세하다. 옳고 그름을 따지고, 잘잘못을 잡아내고, 공과를 가늠하며 상벌에 집착하는 것은 집단의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정도에서만 유용할 뿐 그 이상의 관계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남북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진 이 시점에 우리에게 필요한 서사는 이처럼 자초지종을 두루 꿰고 그 너머를 바라봄으로써 현명한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연구원 irhet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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