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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미술품 사재기에 열올리는 갤러리들, 신진 발굴은 뒷전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허유림의 미술로 가즈아(6)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생은 위대한 예술이다. 산다는 것은 자신을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국내외 다양한 문화행사에 참여하며 자신의 안목과 취향을 키워 나가고 있다. 이것은 행사에 참여하는 관람객의 숫자로 반영되기도 한다.

지난 3월 열린 '아트바젤 홍콩'에서 본격 행사 전에 먼저 작품을 볼 수 있는 비공식 VIP 패스에 참가 신청을 낸 한국인이 지난해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4월 부산 벡스코에서 진행된 '아트부산 2018'은 행사 기간 나흘 동안 역대 최고인 6만여 명의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마지막 날인 일요일 하루에만 2만명의 관람객이 방문해 넓은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미술시장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고조되는 것과는 달리 갤러리들의 작가 선정과 언론의 보도 태도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아트바젤 홍콩에 참여한 11개의 국내 화랑도 이렇다 할 소득 없이 돌아왔다. 작품 거래액만 수백억 원에 달한 명품들을 배치하며 눈길을 사로잡은 서구 화랑들과는 대등한 경쟁 구도를 펼칠 수 없다는 명확한 한계만 확인했다.

한국 컬렉터들, 유명 외국 작품 쇼핑 나서   

한국 컬렉터들은 유명 외국 작품을 대거 사들여 화제가 됐다. 리슨(LISSON)갤러리에서 선보인 이우환의 신작인 ‘녹색 다이얼로그’, 빅뱅의 지드래곤 컬렉션으로 잘 알려진 제이슨 마틴(Jason Martin)의 ‘붉은 피그먼트’, 애니쉬카푸어(Anish Kapoor)의 미러 작품, 영국의 대표적인 개념미술 작가인 라이언 간다(Ryan Gander)의 작품 등이 이번 아트바젤 홍콩에서 한국 컬렉터의 품에 안겼다.

이 외에도 한국 컬렉터 사이에 인기가 좋은 줄리안오피(Julian Opie),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요시토모 나라(Yoshitomo Nara), 알렉스 카츠(Alex Katz) 등의 작품도 한국 컬렉터의 쇼핑리스트에 포함됐다. 이들 작품은 한국뿐 아니라 국제 시장에서도 안정적으로 거래된다는 사실이 컬렉팅의 첫째 이유로 꼽혔다.

나라 요시토모, DON'T CRY, 목판화, 40.5×28.4㎝. (50/50).

나라 요시토모, DON'T CRY, 목판화, 40.5×28.4㎝. (50/50).

그래서일까. 아트바젤 홍콩에서 쓴맛을 보고 돌아온 국내 갤러리들이 4월 ‘아트부산’에서 선택한 것은 한국인에게 인기가 많은 외국 작가와 해외에서도 거래가 이뤄지는 백남준, 이우환 작가의 작품이 대다수였다. 실제 국제갤러리의 줄리안 오피와 우고론디노네, 갤러리 현대의 백남준, 가나아트의 이우환 등 국내와 해외에서 동일한 가치 평가가 이뤄지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 판매됐다.

신예 작가의 경우 국내 출신보다 외국 작가의 작품이 여러 점 판매됐다. 외국 갤러리들은 페어에 출품하지 않은 작품들까지 판매했다고 하니, 아트부산 행사는 성공적이라고 평할 수 있다.

아트부산 2018. 갤러리 현대 - 이우환, 백남준 작가의 작품. [사진 허유림]

아트부산 2018. 갤러리 현대 - 이우환, 백남준 작가의 작품. [사진 허유림]

문제는 국내 화랑이 외국 작품에 매기는 터무니없는 가격이다. 3월 아트바젤 홍콩에 온 일부 한국 업자들이 돈 되는 해외 거장의 명품을 화랑들 간에 거래되는 도매가로 사들인 다음 국내 컬렉터에게 비싼 값에 팔아 시세차익을 남겼다.

이런 일이 비록 소수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국내 신진 작가를 발굴해 이들의 작품을 컬렉터와 미술 시장에 알리는 대신 이미 유명세를 탄 외국 작품의 거래로 근시안적 이익을 취하는 모습은 과도기를 겪고 있는 한국 미술 시장의 앞날에 적신호만 켤 뿐이다.

영국 줄리안 오피 작품 1억원 넘어  

예를 들면 부산 수영구 복합문화공간 F1963 석촌홀에서 부산 첫 개인전을 치르는 영국의 팝아티스트 줄리안 오피의 작품이다. 우리에게는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옛 대우빌딩) 벽면을 장식한 미디어 파사드 작품 ‘군중(Crowd)’으로 친숙한 작가다.

군중(CROWD)': 서울스퀘어 미디어캔버스 LED벽에 설치, 7800×9900CM, 2009, 줄리안 오피. [사진 허유림]

군중(CROWD)': 서울스퀘어 미디어캔버스 LED벽에 설치, 7800×9900CM, 2009, 줄리안 오피. [사진 허유림]

그는 1980년대 건축물이나 도시생활의 평범한 오브제를 재해석하는 독특한 조각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직접 촬영한 인물과 장소를 컴퓨터를 활용해 공공표지판이나 상형문자를 연상시키는 고도로 단순화한 형상으로 표현해 명성을 얻기도 했다.

여러 갤러리가 선택한 줄리안 오피의 작품 중 가장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것은 국제갤러리가 준비한 'Ian, Faime, Shaida, Danielle.1' 이었다. 200.0 × 165.0 cm 크기의 알루미늄판에 제작된 이 작품의 가격은 7만 파운드로 1억원이 넘는다. 만약 이런 돈이 신진 작가 양성과 이들의 작품을 알리는 데 사용된다면 한국 미술시장 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하리란 분석이다.

Ian, Faime, Shaida, Danielle.1 : 200.0 × 165.0 cm. 줄리안 오피. [사진 허유림]

Ian, Faime, Shaida, Danielle.1 : 200.0 × 165.0 cm. 줄리안 오피. [사진 허유림]

다채로운 문화예술행사가 많은 요즘이다. 1억원의 가치가 있다는 줄리안 오피의 작품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다면 연휴 기간을 이용해 부산 수영구 복합문화공간 F1963에 들러보자. 전시는 오는 6월 24일까지 진행한다.

허유림 RP' INSTITUTE. SEOUL 대표 & 아트 컨설턴트 heryu1229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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