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잘살고 못살고는 부모 재산에 달려, 갑질이 분노 키운다”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582호 03면

[SPECIAL REPORT] 대한민국은 갈등 공화국 - 정치 갈등

빈부 갈등은 영국 BBC의 의뢰로 입소스가 전 세계 27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정치적 견해 차이에 이어 두 번째 한국 사회 갈등 요인(44%)이었다. 27개국 중 중국, 러시아, 세르비아에 이어 4위였다. 한때 한국은 경제적으로 평등한 편이었다. 덕분에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국 가운데 아주 빠르게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불평등을 재는 여러 지표가 경고음을 내고 있다. 중앙대 신광영 사회학 교수는 “네 가지 차원에서 악화됐다”고 했다. 개인소득, 집단 간 격차, 부의 집중, 양극화 등 경제적 불평등을 재는 모든 지표가 나빠졌다는 얘기다. 중앙SUNDAY는 지난 3일 30년 넘게 불평등 연구에 천착해 온 신광영 교수를 만났다.

신광영 교수의 진단 #‘학벌보다 건물주가 최고’가 현실 #불평등 원인, 재산 18%로 으뜸 #비정규직 등 고용 지위는 16% #갑질 사건 불거지면 분노 폭발 #불평등에 복합 위기 연결된 탓 #양극화 완화 정책 등 적극 펼 때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한국 사회의 불평등은 언제부터 악화했나.
“1997년 경제위기 이후라는 게 상식인데, 내 생각엔 90년대 초반부터 빈부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97년 위기는 불평등을 증폭시켰다고 봐야 한다.”
불평등 악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가장 큰 원인은 ‘재산’으로 나타났다. 통계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전체 경상소득 불평등 가운데 18% 정도가 재산을 갖고 있는가 또는 얼마나 갖고 있는가로 설명될 수 있다.” <그래픽 참조>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부자를 부모로 둔 사람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말로 들린다.
“그렇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말 가운데 ‘학벌이 좋으면 뭐하냐? 빌딩이나 집 갖고 있는 사람이 최고’라는 말이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실제 2017년 불평등 가운데 교육으로 설명될 수 있는 부분은 9% 선이다. 2010년엔 11.65% 정도였다. 교육 수준이 잘살고 못살고를 결정하는 영향력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와 다른 부유층에 실망

다른 요인은 무엇인가.
“정규직인가 아니면 비정규직인가(고용 지위), 또 1인 가구인가 아닌가(가구원 수) 등도 중요했다. 1인 가구의 빈곤율이 아주 높다. 물론 통계적으로 원인이 불분명한 ‘기타’가 31.4%나 된다.”
부모 덕에 잘사는 현상이 사회적 갈등과 어떤 관련이 있나.
“처음엔 사회 구성원은 씁쓸한 감정을 갖는다. 부모 잘 만나 잘사는 사람에게 ‘눈꼴사납다’고 반응한다. 하지만 ‘사건’이 불거지면 이런 감정이 분노로 바뀐다.”
‘사건’이란 무엇인가.
“대한항공 조현아·조현민 자매 사건 같은 일이다. 두 사람의 능력은 객관적으로 다른 사람과 별 차이가 없다. 단지 아버지가 다를 뿐이다. 두 자매의 갑질에 분노한 대중은 그들의 정당성(legitimacy)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저들이 저렇게 누리고 권력을 행사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의문이다.”
정당성에 대한 의문은 심각하게 들린다.
“국내 재벌 3세 가운데 혁신을 이뤄 부를 쌓거나 늘린 사람은 드물다. 반면에 대중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돈을 벌어 기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눈이 높아졌다.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와 국내 현실 사이에 있는 큰 차이가 대중의 실망과 분노를 키운다.”

신 교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등에 대한 분노나 비판 이면에 정당성 의문이 똬리를 틀고 있다고 본다. 둘 다 부모의 후광 덕에 정치권력을 쥐었거나 거대한 재산을 보유하고 있어서다. 이들의 탈·불법 행위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SNS 등을 통해 빠르게 응집·확산돼 정치적 행동으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하루 36명 … 한국, 자살률 세계 1위 경쟁

부모의 재산 유무가 중요 변수라면 계층 상승 가능성은 낮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한국의 계층 상승 가능성은 영미권만큼 낮다. 아메리칸 드림은 이제 불가능하다. 일본도 계층 상승 가능성이 낮은 나라 가운데 하나다.”
그나마 계층 상승 기회가 남아 있는 나라는.
“스웨덴과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이다. 유럽의 학자들이 농담 삼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사람은 미국이 아니라 북유럽으로 가라’고 말할 정도다. 교육의 기회가 골고루 제공되고 있어서다. 반면에 한국은 교육 기회가 부모의 재산 등에 의해 달라진다. 그러다 보니 대학 진학에 목을 매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신 교수는 평소 불평등과 함께 복합 위기를 경고해 왔다. 고용 위기, 인구 위기, 사회해체 위기 등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불평등과 복합 위기가 아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며 “사회 구성원은 위기 상황을 두 가지로 표출한다”고 말했다.

두 가지가 뭔가.
“위기를 마음속으로 삭이고 삭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또는 밖으로 표출하는 방식이다. 그러면 이런저런 갈등이나 범죄가 발생한다. 한국에선 하루 36명 정도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남미의 작은 나라 가이아나와 자살률 세계 1위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불평등과 복합 위기를 완화시킬 처방은.
“부유세 등 세금 정책이나 고용시장 양극화를 완화하는 정책 등을 적극적으로 써야 한다.”
신광영 교수

신광영 교수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신광영 교수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Madison)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사회학회장과 불평등연구회장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론 『한국 사회 불평등 연구』 등이 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