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이)동국이가 전북 감독을 맡고, 대박이(이동국 아들 시안의 태명)가 아빠 등 번호 20번 달고 스트라이커로 뛰는 꿈을 꾼다. 대박이를 안아봤더니 하체가 굵더라. 대박이가 19살에 데뷔해서 아빠 기록을 깨는 스토리, 그게 내 마지막 소원이다.”
K리그 최다승 경신 전북 최강희 감독 #13년간 211승, 김정남 25년 기록 깨 #중국측 거액 거절 … “전북은 내 구단” #2009년 영입한 이동국과 6번 우승 #“이동국 부자, 감독·선수 만드는 꿈”
프로축구 K리그 최다승 기록을 경신한 최강희(59) 전북 현대 감독의 소감이다. 그는 대기록의 일등공신인 이동국(39)에게 고마움부터 전했다.
최 감독은 지난달 25일 강원FC를 꺾고, 감독으로서 통산 최다승(211승) 신기록을 세웠다. 최 감독(59세13일, 재임 기간 13년)은 역대 최연소, 최단기간, 최다승 부문에서 김정남(210승, 65세9개월29일, 재임 기간 25년) 전 감독을 모두 제쳤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주전 수비수 출신 최 감독은 2005년 ‘만년 하위 팀’ 전북을 맡았다. 이후 K리그에서 5회,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2회 우승했다. 올 시즌에도 최근 9연승으로 K리그1 선두(10승1패)고,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도 16강에 진출했다.
지난 1일 전북 완주군의 전북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최 감독은 “감독 첫해엔 승보다 패가 많았다. 6개월 만에 잘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2008년 초, 노장들을 내보낸 뒤 1승1무4패에 그쳤다. 전북 팬들이 ‘봉동이장(훈련장 있는 봉동을 활용한 최 감독 별명) 약발 다했다. 밀짚모자 쓰고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집에나 가라’고 했다”며 “이대로 도망치면 전북은 영원히 그런 팀이 될 것 같았다.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서포터스에게 ‘올 시즌까지만 기다려달라’는 장문의 편지를 썼다. 이후 9승2무3패를 했다. 플레이오프에서 성남을 꺾었는데, 운명처럼 성남에서 뛰던 이동국을 전북으로 데려왔다”고 말했다.
‘재활공장장’ 최 감독은 자신이 부활시킨 이동국과 함께 2009년부터 6회 우승을 합작했다. 최 감독은 “동국이를 영입하니 구단에서 ‘양로원 만들 거냐’고 했다. 난 동국이에게 ‘손을 들지 않으면 빼지 않겠다’고 했다”며 “내 기록은 모든 선수, 특히 동국이가 만들어줬다. 한국 나이 마흔 살인 동국이는 불가사의다. 풀타임을 뛰어도 다음날 피부가 뽀송뽀송하다. 몸만 풀다 경기에 못 나가도 동국이가 물병을 걷어차지 않으니, 다른 선수들도 불만 없이 잘 따른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동국은 개인 통산 200호 골을 넣었고, 전북을 K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우승 확정 순간 최 감독은 자신도 모르게 멀리 뛰쳐나갔다가 머리를 긁적이며 뒤돌아섰다. 최 감독은 “드라마 ‘도깨비’처럼 나와 동국이가 전생에 부부가 아니었을까. 900년이 흐른 뒤 동국이한테 가슴의 칼을 뽑아달라고 해야 하나”라고 농담을 건넨 뒤, “팬들이 ‘이동국이 은퇴하면 어떻게 하냐’고 묻길래 ‘일본 미우라처럼 51살까지 뛰면 된다’고 했다. 동국이가 51세까지 도와준다면 300승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최 감독은 공격 축구, 속칭 ‘닥공(닥치고 공격) 축구’로 유명하다. 최 감독은 “독일에서 축구를 보다가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골키퍼한테 백패스라도 하면 관중은 휘파람 불고 난리를 친다. 약팀도 바이에른 뮌헨 같은 강팀을 상대로 공격축구를 한다. 그러다 1-4로 져도 기립박수가 나온다”라며 “나도 선수들에게 ‘홈에선 경기가 끝난 뒤 기어 나오더라도 모든 걸 쏟아내라’고 한다. 2-0으로 앞서도 ‘위험한 스코어니까 세 번째 골을 넣자’고 한다. 난 수비수 출신이지만 골프도 공격적으로 치고 모험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중국 프로팀의 영입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모두 상상하기도 힘든 금액의 제안이었다. 최 감독은 “장쑤 팀 부회장은 두 번이나 찾아왔고, 지금도 제안이 온다.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자서전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분이 껌만 씹고, 골 터지면 만세만 부르는 것 같아도, 구장 관리인부터 청소부까지 모두 챙긴다. 그렇게 파란만장한 프리미어리그에서 27년간 버티며 38차례 우승을 일궜다. 나도 식당 이모님부터 잔디 깎는 분까지 챙긴다. 단순한 직장이 아니라 내 팀, 내 구단의 책임자라고 생각하며 산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소중한 팬들도 날 떠날 수 없게 한다. 무거운 벌꿀 2통을 들고 찾아왔던 부안의 여학생들이 세 번을 허탕 친 끝에 네 번 만에 날 만난 적이 있다. 60대 팬 세 분이 ‘몇천만원을 주고라도 평생회원권을 사고 싶다’고 연락해오기도 했다. 응원석 앞에 가서 팬들 표정을 보면 전율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평소 표정은 무뚝뚝하지만, 최 감독 유머 감각은 개그맨 뺨칠 정도다. 얼마나 웃긴지 이 말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제가 평소엔 너목보(너의 목소리가 보여)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봅니다. 벤치에서 인상 쓰고 있는 건 동국이 형이 깔볼까봐 그런 거에요.”
완주=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