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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등산사] 7000m서 두 다리 뚝…그는 어떻게 내려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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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악! …………………후~”
뭔가 잘못됐다. 왼발로 벽을 차려고 했지만 사타구니까지 통증이 왔다. 오른발로 바꿔서 시도해 보니 뼈와 뼈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

오그 등정 후 하강하면서 양쪽 다리 골절상을 입은 더그 스콧이 기어서 하산하고 있다. 앞에는 클라이브 로우랜드. [중앙포토]

오그 등정 후 하강하면서 양쪽 다리 골절상을 입은 더그 스콧이 기어서 하산하고 있다. 앞에는 클라이브 로우랜드. [중앙포토]

1977년 7월, 크리스 보닝턴(1934~)과 더그 스콧(1941~)은 파키스탄 카라코람의 오그(Ogre·7285m)에 있었다. 오그의 현지 이름은 바이안타 브라크(Baintha Brakk)다. 빙하의 깊이가 1500미터. 중앙봉은 수직의 화강암으로 2500미터 절벽 위에 있다. 스콧은 피식 웃었다.

■ '오그'의 마법사들 #30여 회 도전 물리친 험난한 산 '오그' #스콧, 보닝턴과 1977년에 초등 성공 #한순간 방심으로 두 다리 모두 골절 #네 겹의 옷 모두 해질 정도로 기어 #동료들 끌고 밀며 7일 만에 지상으로

“땅딸막하군. 정상에 세 개의 아이스크림콘이 우습게 서있구먼. 꼭짓점은 자리 잘못 잡은 유두 같고.”
오그는 지난 30차례의 등정 시도를 거부했다. 1976년 일본 원정대가 6550m 지점까지 간 게 최고였다. 오그가 뿜어내는 공포를, 스콧은 그렇게 애써 피했다.

오그 베이스캠프에서 회의 중인 폴 브레이스웨이트, 더그 스콧, 닉 에스트코트, 크리스 보닝턴, 클라이브 로우랜드, 모 앙투안(왼쪽부터). 브레이스웨이트는 다리에 낙석을 맞고 조기 귀국했다. [중앙포토]

오그 베이스캠프에서 회의 중인 폴 브레이스웨이트, 더그 스콧, 닉 에스트코트, 크리스 보닝턴, 클라이브 로우랜드, 모 앙투안(왼쪽부터). 브레이스웨이트는 다리에 낙석을 맞고 조기 귀국했다. [중앙포토]

여섯의 최정예 등반가들이 모였다. 스콧과 폴 브레이스웨이트는 남벽의 버트레스(Butress·돌출된 암반) 루트로. 모 앙투안과 보닝턴, 닉 에스트코트, 클리브 로우랜드는 왼쪽의 서벽으로 오른다는 계획이었다. 이 두 루트로의 등반 계획은 이미 스콧과 로우랜드가 1975년 정찰 등반을 갔을 때 정한 것이었다. 이 여섯은 별도의 리더를 두지 않기로 했다. 등반기술, 상황판단, 모두 개인 역량에 맡겼다.

오그에서 차를 끓여 마시는 모 앙투안과 클라이브 로우랜드, 폴 브레이스웨이트(왼쪽부터). [중앙포토]

오그에서 차를 끓여 마시는 모 앙투안과 클라이브 로우랜드, 폴 브레이스웨이트(왼쪽부터). [중앙포토]

그러나 출발부터 심상치 않았다. 브레이스웨이트가 다리에 낙석을 맞았다. 모두 브레이웨스트의 상처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2주가 지났다. 브레이스웨이트는 차도가 없었다. 그는 등반을 포기해야 했다.

보닝턴과 에스트코트는 서봉에 올랐다. 에스트코트는 개인적인 일로 영국으로 돌아가려 하산했다. 보닝턴은 이번엔 중앙봉을 노렸다. 스콧이 선등에 나섰다. 보닝턴은 뒤따라갔다. 그리고 정상에 올랐다. 하늘은 보랏빛을 뿜으며 어두워지고 있었다. 하산을 서둘러야 했다.

오그에 오른 더그 스콧. 그러나 몇 분 뒤, 그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는다. [중앙포토]

오그에 오른 더그 스콧. 그러나 몇 분 뒤, 그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는다. [중앙포토]

암벽에 쿵…온몸의 뼈가 흔들렸다 

# 7월 13일

스콧은 세 시간 전 자신이 오른 바위에 도착했다. 로프는 뿌려 하강을 했다. 로프의 끝이 크랙(바위틈)에 간신히 닿았다. 크랙에 박아 놓은 하켄(확보물)에 장비를 걸어 로프를 고정시키고 몸도 묶어 놓으려(확보시키려) 했다. 손이 닿지 않았다. 자세를 다시 잡으려 했다. 발이 미끄러졌다. 해가 지면서 올라갈 땐 없는 얼음이 생겼다. 그걸 못 봤다.

무서운 속도로 몸이 날아갔다. 로프에 매달려, 몸은 길게 추를 그렸다. 그러면서 몸이 돌았다. 다른편 벽에 부딪혔다.
“으아악! …………………후~”
비명 뒤의 탄식. 600m 떨어진 설동에 있는 앙투안과 로우랜드가 그 소리를 들을 정도로 날카로운 절망이었다. 스콧은 “온 몸의 뼈가 흔들렸다”고 했다.

안경과 피켈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머리와 몸통? 괜찮았다. 대퇴와 무릎? 괜찮았다. 어딜까. 하강을 이어 가려면 옆의 툭 튀어나온 선반 형태의 구간까지 가야했다. 발로 바위를 밀어 몸을 반동시켜 갈 수 밖에 없었다. 오른쪽 발목에 통증이 심했다. 그나마 나은 왼발로 밀며 양손을 끌어당기며 크랙으로 이동했다. 설동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보닝턴이 내려와 스콧을 보더니 담담하게 얘기했다.
“어떠신가.”
“보시다시피, 다리 두 개 모두 상태가 안 좋아.”
“걱정 마. 아직 죽음까지 가려면 멀었어.”
희망이 있었다. 스콧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그 등정 후 하강하면서 양쪽 다리 골절상을 입은 더그 스콧이 기어서 하산하고 있다. [중앙포토]

오그 등정 후 하강하면서 양쪽 다리 골절상을 입은 더그 스콧이 기어서 하산하고 있다. [중앙포토]

해가 졌지만 최대한 하강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완만한 곳으로 내려섰다. 스콧은 부상 뒤 처음으로 발을 디뎠다. 바로 엎어졌다. 오른쪽 발목에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렸다. 무릎을 꿇었다.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스콧은 결정을 내렸다. 기어서 하산하는 것이었다.

죽지 않으려면 기어서 하산할 수 밖에 

눈을 파헤치고 비박(bivouac·노숙)에 들어갔다. 비박 장비는 하나도 없었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었다. 스콧과 보닝턴은 30분마다 서로의 발을 문질러 줬다. 동상에 걸리면 그야말로 설상가상이었다. 스콧은 다리 부상 때문에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동상에 걸리기 쉬울 것 같았다. 그는 보닝턴의 발바닥을 세게 문질러 줬다. 보닝턴도 자신의 발을 세게 문지를 것이라 짐작하고. 이미 히말라야와 카라코람의 고산을 수십 번 드나든 스콧과 보닝턴은 그들 등반 경력 중 가장 추운 밤을 보냈다.

# 7월 14일

더그 스콧이 펴낸 오그 등반기. [중앙포토]

더그 스콧이 펴낸 오그 등반기. [중앙포토]

남동벽 분지의 설동에 있는 앙투안과 로우랜드를 만났다. 둘은 스콧의 무릎이 닿을 곳마다 눈을 파냈다. 조금이라도 편하게 내려가라는 배려였다. 스콧은 이들이 자신의 부상 때문에 등반을 더 이상 못하게 되는 게 미안했다.
“모, 클라이브. 서봉 정상 찍고 와.”
“이런 당신을 놔두고? 농담이지?”
그리고 네 명은 남아있는 모든 음식을 먹어 치웠다.

앙투안과 로우랜드는 서봉을 공략했다. 하지만 폭풍우에 휘말렸다. 120m만 가면 됐는데, 그들은 겨우 25m만 전진할 수 있었다. 포기했다.

동료들이 부상자를 위해 헌신했다

# 7월 15일
폭풍우는 심했지만 전날보다 누그러졌다.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 길은 오른 길을 되짚어 가야했다. 그러니까, 중앙봉과 서봉을 횡단한 뒤 서봉을 통한 하산길이 유일했다. 7월11일에 만들었던 설동에 들어갔다. 아직 해발 7000m였다. 로우랜드가 선두에서 눈을 박차고 나갔다. 스콧이 무릎을 딛을 만한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로우랜드의 뒤의 앙투안이 스콧의 몸에 로프를 묶었다. 앙투안이 로프를 잡아주면 스콧은 미끄럼을 탔다. 스콧은 튀어나온 바위를 만나면 손으로 다리를 끌어올려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보닝턴이 후미에 붙었다. 식량은 없었다. 침낭은 다 젖었다. 추위가 공포를 만들었다.

오그 하산 상황도

오그 하산 상황도

# 7월 16일

300m 하강을 보닝턴이 한쪽 길이가 짧은 로프에 의지해 하강하다 6m를 떨어졌다. 갈비뼈 두 대가 나갔다. 손도 다쳤다. 어둑해질 무렵 캠프3에 도착했다. 그곳엔 금보다 귀한 설탕이 있었다. 보닝턴이 쿨럭거렸다. 그의 몸이 심상치 않았다.

#7월17일~19일
보닝턴 폐렴 증세를 보였다. 노란 진액이 목에서 튀어나왔다. 쉬기로 했다. 앙투안도, 로우랜도 발의 감각이 없었다.

엎친데 덮쳤다…보닝턴마저 부상 

#7월20일

전진 베이스캠프엔 아무도 없었다. 바로 베이스캠프까지 갔다. 7㎞ 거리였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쌓인 눈은 얇아졌다. 기어가던 스콧의 네 겹 옷이 모두 해졌다. 무릎에는 피가 고였다. 밤10시30분에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었다. 대원들은 이들이 죽었다고 판단하고 철수한 것이었다.
에스트코트의 편지가 있었다.
“이 편지를 보게 된다는 건, 최소한 한명은 살아서 돌아왔나 보군”
앙투안이 구조요청을 하러 마을로 달려갔다.

전성기의 더그 스콧. [중앙포토]

전성기의 더그 스콧. [중앙포토]

오그 하산 후의 크리스 보닝턴. [중앙포토]

오그 하산 후의 크리스 보닝턴. [중앙포토]

순수하게 기어내려간 거리만 3000m

#7월 25일~28일

앙투안이 12명의 포터들을 이끌고 닷새 만에 베이스캠프에 돌아왔다. 스콧은 3일간 들것에 실려 애스콜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스콧은 헬기를 이용해 차량이 다닐 수 있는 스카르두로 향했다. 착륙 직전, 헬기 엔진이 꺼지면서 6m 가량 추락했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다. 애스콜에서 기다리던 보닝턴은 헬기 수리가 완료될 때까지 다시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스콧과 보닝턴은 8월이 돼서야 함께 이슬라마바드의 영국 대사관 잔디밭에서 다리를 펴고 누울 수 있었다.

2015년 한 모임에서 만난 크리스 보닝턴(왼쪽)과 더그 스콧. [중앙포토]

2015년 한 모임에서 만난 크리스 보닝턴(왼쪽)과 더그 스콧. [중앙포토]

오그 등정에 지대한 공헌을 한 포터들. 이들은 카라코람 발티 지역 출신이라 '발티 포터'라고 불린다. [중앙포토]

오그 등정에 지대한 공헌을 한 포터들. 이들은 카라코람 발티 지역 출신이라 '발티 포터'라고 불린다. [중앙포토]

스콧은 후에 이렇게 썼다. “포터 타키는 나와 함께 19km 어프로치를 하면서 계란 31개 중 하나도 깨뜨리지 않았는데, 난 너무도 부주의했다.”

스콧이 순수하게 기어 내려온 거리는 3000m였다.

동료의 헌신, 믿음 … 그래서 살아  돌아왔다

스콧은 살아서 내려왔다.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긍정으로 일관했다. 그는 7000m에서도 자신의 작은 움직임들을 모으면 하산이라는 큰 그림을 완성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산하면서 작은 것들에 기뻐했다. 설탕 한줌을 나눠먹는 것에 즐거워했고 캠프에 도착했을 때 본 초록의 풀들에 들떴다. 포터들이 작은 목소리로 자신을 어떻게 들것에 운반할지, 어디서 쉴지 의논하는 모습에도 감동했고 고마워했다.

보닝턴까지 부상을 입었지만 동료들의 헌신이 있었다. 로우랜드는 앞서서 폭풍우를 뚫고 하산길을 다졌다. 앙투안은 스콧과 한몸이 되어 내려왔다.

이후 25년간, 아무도 오그를 오르지 못했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일상등산사 컷

일상등산사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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