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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과 ‘어벤져스’의 평행이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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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정치부 차장

김승현 정치부 차장

전혀 다른 두 사건이 비슷해 보일 때가 있다. 다른 시대에 사는 두 인물이 비슷한 운명을 겪는 현상은 ‘평행이론’이라고도 불린다. 남북 정상회담과 영화 ‘어벤져스 3’에 평행이론이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차대한 역사를 만화 같은 영화 따위와 비교하는 게 외람되지만 높은 싱크로율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시장 지배=정상회담과 영화 모두 여론을 압도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회담의 전국 가구 시청률 합계 최고치는 39%대(환송행사)였다. 지난달 25일 개봉한 ‘어벤져스 3’는 2일 6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파죽지세의 이면에도 유사점이 있다. ‘시장을 너무 장악했다’는 비판이다. 정상회담은 지상파와 종편 등 10개 채널이 동시에 생중계했다. ‘어벤져스 3’의 스크린 점유율은 46%대다. 다른 영화와 사건이 관심 밖으로 밀려났고 “조선중앙TV를 보는 것 같다” “어벤져스 전용관인 줄 알았다”는 불만이 나왔다.

#오역 논란=높은 관심에는 ‘매의 눈’이 숨어 있다. 영화에서는 자막 오역 논란이 일고 있다. 방심한 전문가는 네티즌의 날카로움에 속수무책이다. 캐릭터와 스토리의 맥락을 놓친 번역가는 퇴출 운동에 직면했다. 판문점 선언에 대해 “어처구니없다”고 논평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네티즌들이 조목조목 반발하자 해당 문장을 삭제했다. 야당도 ‘위장 평화쇼’ 등의 표현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남북관계와 마블의 작품 모두 켜켜이 쌓인 맥락이 있기에 허투루 나섰다가는 망신당하기 십상이다.

#‘거악’의 변신=캐릭터의 드라마틱한 변화는 대중의 심리를 붙잡는다. 김정은 위원장은 축지법을 쓰듯 국민 앞에 다가왔다. “멀다고 하면 안 되갔구만”이라며 개그감까지 선보인 그에게 새로운 스토리가 입혀지고 있다. 부인 이설주는 이제 ‘여사’로 불린다. 영화 속 거악 ‘타노스’는 전편에서 어둠 속 악마였다가 주연급 캐릭터가 됐다. 우주의 절반을 없애려는 헛된 욕망에 대한 설명도 영화는 곁들인다. 존재감이 커진 그는 제작비 5000억원이 넘는 영화의 후속편을 이끌 주축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을 앞두고 노벨평화상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김 위원장의 상황과 교차한다.

#열린 결말=역사는 현재진행형이고 영화도 속편으로 결말을 넘겼다. 판문점 선언에 적힌 ‘완전한 비핵화’라는 문구는 영화 속 ‘인피니티 스톤’(우주의 질서를 관장하는 6개의 돌)을 닮았다. 완성된 듯 완성되지 않은 그 문구가 한반도의 완전한 평화를 구축하는 초석이 되길 국민은 기대한다. 마블의 상술에 놀아나는 것을 알면서도 어벤져스의 귀환을 기다리듯 평화와 정의가 넘치는 영화 같은 해피엔딩을 꿈꾸기 때문이다.

김승현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