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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거수경례에 대한 단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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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영국 사회가 그러하듯 영국군도 별별 전통이 다 있다. 모 부대는 국가(God Save the Queen·여왕 폐하 만세)가 연주되는 동안 굳이 앉아서 담소를 나눈다. 어느 정도인가 싶을 터인데, 1970년대 독일 만하임에서 미군과 함께 행진하던 중에도 ‘여왕’ 노래가 나오자 소속 장군 서너 명이 눈앞에 보이는 의자에 가서 앉곤 대화하더란다. 염소가 소령(Goat Major)인 부대도 있다. 또 은제 그릇에 술을 담아 ‘emperor(황제)’란 건배사를 외치는 곳도 있는데, 이 그릇은 이 부대가 전리품으로 획득한 나폴레옹 황제의 부인 조세핀이 실내에서 쓰던 요강이었다.

물론 덜 괴이한 전통도 있다. 거수경례다. 로마·중세 기원설 못지않게 영국 육군 유래설도 강하다. 육군 내에서 상급자에게 인사하기 위해 모자를 벗던 데서 비롯됐다는 주장이다. 이게 1800년대 들어 모자에 손을 대는 것으로, 또 거수경례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손바닥을 전면으로 하는 방식이다. 영국 해군은 이를 변용했다. 배에서 일하다 보면 석탄이나 기름찌꺼기로 손바닥이 더러워지기 일쑤여서다. 그래서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게 했다고 한다.

미군도 유사한 예법을 택했다. 영국 해군 방식인데, 관련 지침은 간단했다. “건물 밖에선 (군복 차림엔) 항상 모자를 쓰고, 모자를 쓴 상태에서는 거수경례를 한다. 건물 안에선 모자를 벗는다. 모자를 벗은 상태에선 거수경례를 하지 않는다. 민간인 복장이면 거수경례를 하지 않는다”(김진형 전 해군 제독의 『군대를 말한다』) 등이다. 특히 해군이 엄격하다고 한다.

대통령의 경우 군 통수권자라곤 하나 안 하는 게 전통이었다. 본질적으론 양복 차림의 민간인이어서다. 문민 통치다. 다만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였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거수경례로 답하면서 이후 대통령들도 종종 한다. 군사(軍史)학자들은 이마저도 “전쟁 지도자로서 대통령을 찬미하고, 실제 (대통령의 군사적) 역할이 작은데도 시민들이 크게 인식하도록 한다”며 냉소적이다.

박정희 대통령 이래 연이어 군 출신 대통령이 나와서인가, 우리는 이에 대한 별 의식이 없다. 문민 통치로 접어든 지 25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하기야 군 내부에서도 “우리 군에선 식당·도서실은 물론이고 심지어 화장실·목욕탕·사우나에서도 발가벗은 채로 거수경례하는 어색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김 전 제독)니 어쩌겠는가.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이런저런 거수경례를 보며 든 생각이다.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