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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재승의 퍼스펙티브

하루 2시간 걸리는 출퇴근, 스마트도시로 대폭 줄이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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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스마트도시 

현대 도시인의 출퇴근 시간은 하루 평균 100분(1시간 40분)이 넘는다. 출근 시간으로 평균 48.1분, 퇴근 시간으로 53분을 쓴다. 서울 거주 직장인의 출퇴근 시간은 134.7분이나 된다. 전국 1등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1등이다.

서울 직장인, 출퇴근에만 135분 #평생 600일을 도로에서 소모 #교통시스템을 똑똑하게 하는 등 #스마트도시로 크게 줄일 수 있어 #교통체증·과소비 도시화 문제는 #지속가능한 도시로 해결해야 #AI·빅데이터로 맞춤형 서비스 #도시가 변해야 시민이 행복해져

직장 생활을 30년이라 치면 1만4400시간(600일)의 시간을 도로에 쏟아버린다. 출퇴근 동안 지하철·버스에서 녹초가 되고 정신은 한없이 피폐해지는 걸 생각하면, 이 망할 놈의 도시는 구제 불능이다. 평균 수면시간(6시간)의 3분의 1을 직장과 집을 오가는데 쏟고 있는 시민들에게 그 시간을 돌려주려면 도시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우선 교통시스템이 똑똑해져야 한다. 인공지능(AI)이 보행자와 자동차의 흐름을 관찰하면서 신호등을 조절해 사람이나 차가 멈춰 기다리는 시간을 최소화해야 한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일상화되면 출퇴근 때 차에서 잠을 깊이 자거나 일할 수도 있다. 회사 컴퓨터를 집에서도 쓸 수 있도록 보안 네트워크를 연결해주면 재택근무도 가능해진다. 5세대 이동통신이 보편화하여 동영상 회의가 지금보다 원활해진다면 직장인은 물론 1인 기업이나 프리랜서의 재택 활동은 많이 늘어날 것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주거지역과 상업지역, 도심이 분리돼 있지 않고 직장·주거 근접 환경으로 도시가 다시 설계된다면 출퇴근 시간은 현저히 줄어든다. 유럽의 구도시들이 그렇듯 삶터와 일터가 가깝게 연결되고, 문화공간과 쇼핑공간이 삶터에 인접해 있다면 인생 중 600일에 해당하는 출퇴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실제로 핀란드 헬싱키시가 짓는 유명한 스마트도시 칼라사타마(Kalasatama)에서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해 도시의 효율성을 높여 시민들에게 ‘매일 1시간의 여유를 돌려주자’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2008년까지만 해도 버려진 항구였던 칼라사타마에서는 사물인터넷(IoT)과 AI로 교통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소흐요아(Sohjoa)란 자율주행 버스가 주택 단지를 운행하며 시민들을 안전하게 이동하게 해준다. 얼마 전 발표된 주니퍼 리서치 보고서에는 스마트 도시가 시민들에게 한 해 125시간을 돌려줄 잠재력이 있다는 분석이 담겨 있다.

도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세계 도시 면적은 육지의 1%에 불과하지만, 인구의 54%가 도시에 모여 살고 있다. 바닷속 산호 면적은 2%에 불과하지만, 바다 생물의 30%가 산호 근처에 사는 것처럼 말이다.

40억 인구가 사는 도시들은 세계 온실가스의 80%를 배출하고, 심각한 교통 체증과 환경오염, 쓰레기, 물 과소비 등으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범죄와 사고도 도시에서 많이 벌어진다. 내가 다치거나 폭행당해도 지나가며 쳐다볼 뿐 도와주는 이 없는 ‘낯선 이들과의 동거 사회’, 이 익명의 공간에서 도시는 병들어간다.

교육은 어떤가. 과도한 경쟁의 온상으로,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교육은 포기할 수밖에 없는 교육 백화점으로 변해왔다. 편리한 정량 평가를 공정함이라 믿는, 한 줄 세우기식 교육을 ‘차악’이라 위안하며 청소년들을 경쟁주의에 희생시키는 교육 지옥으로 도시는 변해가고 있다.

도시는 더는 우리 삶을 지탱해줄 행복을 만드는 지속가능한 공간이 못 된다. 하지만 UN 보고서는 앞으로 도시화는 더욱 가속화돼 2050년에는 세계 인구의 3분의 2인 66억 명이 도시에 거주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렇다면 지속가능한 도시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공학자들은 그 답을 ‘스마트도시’에서 찾고 있다. 스마트도시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움직임, 시민 행동을 데이터화해 도시인의 삶의 질과 행복을 높이는 맞춤형 예측 서비스를 제공한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이용해 도시를 ‘시민을 보듬는 공간’으로 거듭나게 한다.

스마트도시는 4차 산업혁명 근원지

의료 서비스만 보더라도 앞으로 10년 안에 획기적 변화가 예상된다. 환자의 상태가 집에서도 모니터링돼 병원으로 전송되니, 병원에 가지 않더라도 주치의가 원격 진료를 해 줄 수 있다. 지금 환자들이 종합병원에서 5분 남짓 받는 진료보다 더 나은 진료가 가능하다.

중국 시진핑 정부도 자국 내 스마트시티를 500개 짓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리커창 총리가 주도하는 이 사업에서 각 도시는 주요 테마를 가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헬스케어’다. 중국 부호들이 최신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 미국이나 유럽으로 가지 않고 자국 내에서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는 취지다.

헬스케어 중심 스마트도시는 환자에게 어떤 치료를 해 줄 수 있을까? 시민에게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응급차가 복잡한 도로를 헤집고 도착하기 전에 드론이 3분 안에  1차 응급을 위해 날아온다. 곁에 있는 보호자가 직접 응급 처치를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응급차가 도착하면 환자를 이송하는 동안 웬만한 영상 촬영과 검사가 이루어진다. 오는 동안 병원에서 대기하는 의사가 응급차의 환자 상태를 살피면서 응급 치료를 지시한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수술에 들어갈 수 있도록 말이다.

중국은 칭다오 근처 웨이팡시에 헬스케어 중심 스마트도시를 건설하려 한다. 웨이팡는 샤샨생태지구 안에 있는데, 이곳의 신선한 식재료를 공급하는 것도 헬스케어 서비스라 여긴다.

종의 다양성을 해치면서까지 인류가 소비하는 과일·야채·동물의 종이 단순화돼가는 이유는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식량 소비자는 대도시에 사는 반면, 생산자는 농촌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도시를 먹여 살리는데 그 도시의 100배 크기의 농촌이 필요하다. 푸드 마일리지(식재료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거리)를 줄이기 위해서는 도시 자체가 생산자가 돼야 한다.

시카고나 토론토 등에서 시도하는 스마트팜은 건물을 효율적으로 관리해 농작물을 키워낸다. 건강한 식재료를 도시에 공급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스마트도시들이 스마트팜을 주목한다.

대의민주주의 극복하고 스마트 거버넌스로

지역 문제에 대해 시민 의견을 빠르게 모으고 그에 따라 행정 처리를 하는 스마트 거버넌스도 가능하다. 시민을 위한 앱을 개발해 그곳에서 여론을 묻고 시의회나 시청, 지역구 국회의원이 시민 의사를 반영한 행정 활동을 한다. 예전 같으면 본인 확인이 어렵고 해킹 위험이 있어 구현하기 어려웠지만 이젠 생체 인식과 블록체인 기술이 이를 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실제로 세계 ‘스마트도시 1위’라 불리는 바르셀로나는 시민 의견을 즉각 반영하는 스마트 거버넌스에 역점을 두고 있다. 특히 도시 전체를 공유경제 플랫폼으로 바꾸는 시도를 하고 있다. 자전거 공유 같은 공유 경제 서비스가 보편화하려면 도시 수준의 변화가 필요하다.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상의 도시를 컴퓨터에서 만들어 도시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고스란히 그 안에 담아 해법을 찾을 수도 있다. 이른바 ‘디지털 트윈’이라 불리는 이 시뮬레이션 프로젝트는 싱가포르가 시도해 주목받고 있다. 프랑스 다쏘시스템의 플랫폼 위에 싱가포르를 담아 도시 소음을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

도시는 새 문명 담아내는 그릇

미국 산타페이연구소 제프리 웨스트 박사에 따르면 도시 크기가 10배 늘어날수록 창조성은 17배 늘어난다. 한 도시의 생산성과 창조성은 사람 수나 면적에 비례해 커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덕분에 도시는 20세기 문명의 창조 엔진으로 작동해 왔다. 농촌은 도시로 변모하고 작은 도시는 큰 도시로 성장한다.

하지만 도시는 수많은 장점에도 치명적인 문제를 초래하는 지구 문명의 위협이 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도시화가 가속된다면 지구는 재앙을 맞을 수 있다. 스스로 자생할 수 없고 지속가능하지 않은 도시는 ‘문명의 종말’을 뜻한다.

현대 문명이 대도시로 모일수록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허브 문명’이었다면 다음 시대는 ‘분산 문명’으로 돌아서야 한다. 인터넷 네트워크가 정보를 공유하고 네트워크를 연결함으로써 권력과 인구를 분산시켜 줄 거라 믿었지만, 오히려 허브 사회가 강화됐다.

21세기 스마트 도시를 기획하면서 블록체인을 주목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블록체인의 탈중앙화 철학을 도시에 접목하려 각국이 노력 중이다. 데이터를 제공하는 주민들에게 지역 화폐를 암호화폐로 줌으로써 데이터를 만드는 주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경제 구조도 가능하다. 개인 거래가 활성화되고, 중앙 통제 사회로부터 벗어나면 스마트한 ‘행복 강소도시’가 가능할 수 있다.

대도시로의 성장은 답이 아니다.

인구 500만 명, 1000만 명의 메가시티는 행복한 문명을 담기 어려운 그릇이 돼가고 있다. 그렇다고 인구 10만 이하의 소도시가 좋은 교육, 다양한 일자리, 믿을 만한 의료 환경을 만들어내기도 힘들다. 그렇다면 적절한 크기의 도시, 생산성과 창의성은 극대화 되지만 시민의 다양성과 행복도 존중되는 도시를 구현하는 것은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스마트 기술이 도시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고 우리에게 행복을 보장해 주진 못할 것이다. 지난 2000년 간 인간이 앓아온 도시 문제를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순진한 생각이거나 기술 중심적 발상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겐 남은 카드가 몇장 없는데 그중 하나가 ‘스마트 기술’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세종스마트시티 마스터플래너·리셋 코리아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