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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버스 참변···"할머니들, 손주들 용돈 주려고 밭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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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후 5시 21분쯤 전남 영암군 신북면 주안삼거리에서 노인 14명이 탑승한 25인승 미니버스가 SUV차량과 충돌하며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 영암소방서 제공]

1일 오후 5시 21분쯤 전남 영암군 신북면 주안삼거리에서 노인 14명이 탑승한 25인승 미니버스가 SUV차량과 충돌하며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 영암소방서 제공]

전남 영암에서 1일 일어난 버스 사고로 밭일을 가던 어르신 8명이 세상을 떠났다. 유족과 이웃 주민들에 따르면 이날 버스에 있던 어르신 대부분은 '할머니 일꾼'들로으로 일당벌이를 위해 밭일을 다녀왔다.

할머니 일꾼들은 평소 버스 운전자의 알선으로 밭일을 다녔다고 한다. 일손이 필요한 농장주가 운전사에게 연락하면 운전사가 알음알음으로 할머니 일꾼들을 모집해 일터로 데려다 주는 방식이다.

할머니들은 일당으로 7만5000원을 받았고, 그 중 1만5000원을 중개 수수료, 차비 명목으로 운전사에게 떼어줬다.

이번 사고로 세상을 떠난 사망자의 이웃은 일당벌이를 나간 할머니들이 "어린이날 그냥 넘어가기도 서운하고, 자식들이 손주들 데리고 오면 용돈이라도 쥐여주려고 쌈짓돈 벌러 나가는 거지"라고 설명했다.

전남 영암 버스 사고 지점 주변에 놓인 깨진 버스 유리와 수확 작업을 갔던 할머니들의 것으로 보이는 바구니들이 당시 참혹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전남 영암 버스 사고 지점 주변에 놓인 깨진 버스 유리와 수확 작업을 갔던 할머니들의 것으로 보이는 바구니들이 당시 참혹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동네 마을 이장을 지낸 전모(60)씨도 인터뷰에서  "농촌은 도시처럼 소일거리 없다"라며 "명절에 손주들 용돈 줄 생각에 어르신들은 일을 나간다"라고 마을 사정을 설명했다.

전씨는 "고령화가 심각해서 70대는 노인 취급도 받지 못하는 게 농촌 실정"이라며 "고단했던 시절을 살아오신 분들이라 자제분들이 아무리 말려도 듣지를 않는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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