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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객이 때려도 맞아야 했다, 51세 女소방대원의 죽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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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일 취객 윤모(47)씨가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박중우 익산소방서 소방사를 폭행하고 있다. 윤씨는 이후 구급대원 강모(51·여)소방위의 머리를 5차례 가격했다. [사진 MBC 뉴스 캡처]

지난 4월 2일 취객 윤모(47)씨가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박중우 익산소방서 소방사를 폭행하고 있다. 윤씨는 이후 구급대원 강모(51·여)소방위의 머리를 5차례 가격했다. [사진 MBC 뉴스 캡처]

술에 취해 도로에 쓰러져 있던 윤모(47)씨를 도우러 갔다가 폭행당한 후 끝내 사망한 구급대원 강모(51‧여) 소방위가 생전 “맞은 것보다 모멸감 드는 욕설이 더 끔찍했다”고 토로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강 소방위와 함께 현장에 출동했던 박중우 익산소방서 소방사는 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윤씨가 병원으로 이송 도중 의식을 차린 후 난동을 부리고 욕설을 많이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박 소방사는 “저지하기 힘들게 욕설을 하기 시작하더니 저도 한 대 얼굴을 가격당했고, 경찰에 신고하던 도중 강 소방위가 머리를 5대 정도 맞았다”고 말했다. 윤씨는 두 사람이 제지하기 힘들 정도로 건장한 남성은 아니었지만 제압할 수 있는 권한이 없기에 강 소방위와 박 소방사는 피하는 게 최선이었다고 한다.

지난 4월 2일 취객 윤씨가 강 소방위를 향해 욕설을 퍼붓고 있다. [사진 MBC 뉴스 캡처]

지난 4월 2일 취객 윤씨가 강 소방위를 향해 욕설을 퍼붓고 있다. [사진 MBC 뉴스 캡처]

박 소방사에 따르면 윤씨는 처음 들어보는, 생식기와 관련한 아주 모욕적인 욕을 끊임없이 내뱉었다. 그는 “폭행이 강한 것은 아니었지만 좋은 마음으로 도와주러 갔다가 되레 당한 상황이기 때문에 (강 소방위의) 스트레스가 더 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정은애 익산소방서 119안전센터장은 “당시 강 소방위가 ‘맞은 것보다 입에 못 담을 모멸감 드는 욕을 들은 게 더 끔찍하다’고 계속 얘기했었다”며 “(윤씨가) 부모 욕도 하고, 성적인 입에 못 담을 비하를 반복해서 하고…그런 것이 계속 귀에 맴돈다고, 힘들다고 얘기를 했었다”고 말했다.

평소 운동도 많이 하고 건강했던 강 소방위는 사건 이틀 후 머리가 아프다며 병가를 냈다. 병원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신경 손상’ 진단을 받은 그는 이후에도 계속 잠을 이루지 못하고 24시간 딸꾹질을 하거나 구토 증상이 있는 등 자율신경계에 문제가 생겼다. 그러다 지난달 24일 뇌출혈로 쓰러졌다.

정 센터장은 “저희는 오늘 폭행을 당하고도 병원에 입원하지 않는 한 내일 또 구급차를 탈 수밖에 없다”며 “심지어는 폭행 가해자가 신고하면 똑같은 사람을 맞은 구급대원이 이송하는 경우도 있다”고 열악한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인원이 충원돼 극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될 때 인력을 대체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이제는 피해자인 구급대원도 돌아봐 주셨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윤씨는 현재 구급대원을 폭행한 혐의(소방기본법 위반)로 불구속 입건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진 상황이다. 익산소방서는 3일 강 소방위에 대한 영결식을 거행하고 1계급 특별승진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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