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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어설픈 대륙철도 환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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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세 번째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인 2000년 6월 15일.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첫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한 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그리고 철도 연결이라는 3대 협력사업을 담은 6·15 공동선언을 발표한다. 분단 이후 처음 경험하는 평화 무드 속에 경협 특수와 통일 기대감으로 다들 들떴다. 이에 화답하듯 김 위원장도 이듬해 러시아를 방문해 ‘한반도를 종단해 러시아에서 유럽까지 잇는 철도 건설’ 계획이 담긴 북·러 공동선언(모스크바 선언)을 내놓았다.

그리고 7년 후인 2007년 10월 4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2박3일에 걸친 평양에서의 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남북 철도를 중국·러시아까지 이어 대륙 물류망을 구축하자는 10·4 합의를 내놓았다.

다시 11년 후인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정상 회담에서도 어김없이 남북 철도 연결 얘기가 나왔다. 서해안의 경의선(서울~신의주)과 동해안의 동해선(부산~원산)을 이으면 물류 이동뿐 아니라 전 세계 관광객의 유입경로가 될 것이라며 벌써부터 대륙철도 환상에 취한 사람도 적지 않다. ‘분단으로 인해 섬나라 아닌 섬나라 신세였는데 이제 비행기가 아닌 철도를 타고 유럽 여행을 할 수 있다니….’

기분 좋은 상상으로 그치지 않고 일부에선 김정은 위원장이 말한 “잃어버린 11년”을 언급하며 북한을 불신하던 이명박·박근혜 정권 탓하기에 바쁘다. 보수 정권만 없었다면 통 큰 북한 지도자의 결단으로 일찌감치 남북의 철도를 이어 막대한 경제적 혜택을 누렸을 것이라는 식이다.

턱도 없는 어불성설이다. 2016년 탈북한 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공사는 출간예정인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한반도 종단 철도를 이렇게 묘사한다. ‘떠먹여 줘도 못 먹는’ 존재. 러시아의 건설 의지와 한국의 지원 의사가 확고했음에도 철도 건설이 지지부진한 건 북한의 동해안 방어 부대가 철도를 따라 배치돼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남북 합의대로 철도 현대화 사업을 하려면 북한은 해안방어선을 다시 구축해야 하는데, 북한 군부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 막대한 부대 이전 비용은 또 다른 문제다. 순수하게 철도 현대화 비용만 최소 22조원 이상 들 것이라는 추정치가 나오는 마당에 그 이상의 막대한 돈은 고스란히 우리 호주머니에서 나갈 수밖에 없다.

꿈이야 얼마든지 꿀 수 있다. 하지만 어설픈 대륙철도 환상에 취하기 전에 현실을 차분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안혜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