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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타냐후 “이란 비밀 핵개발 증거” 트럼프 “거봐, 내말 맞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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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수도 텔아비브 국방부 청사에서 이란이 비밀리에 핵 프로그램을 유지해 왔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화면에는 ‘이란이 속였다’고 적혀 있다. [EPA=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수도 텔아비브 국방부 청사에서 이란이 비밀리에 핵 프로그램을 유지해 왔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화면에는 ‘이란이 속였다’고 적혀 있다. [EPA=연합뉴스]

2015년 서방 주요국과 이란 사이에 체결된 역사적인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가 휴지조각이 될 처지에 몰렸다.

“히로시마 5배 원폭, 미사일 탑재 계획 #이란이 핵합의 이후에도 거짓말” #미국, 핵합의 전면 재협상 압박 #트럼프 “김정은에도 메시지 될 것” #NYT “새로운 자료인지 확인해봐야” #이란 “이스라엘·트럼프의 쇼” 반발

북핵에 대해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를 주장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이란 핵과 관련해서도 전면적인 재협정을 압박하고 있어서다.

미국은 오는 12일로 설정된 개정 ‘데드라인’까지 이란 등 당사국이 재협상에 합의하지 않으면 이제껏 유예됐던 대이란 경제제재를 재개한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엔 이란이 비밀리에 핵프로그램을 유지해 왔다는 의혹까지 터졌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텔아비브 국방부 청사에서 생중계된 TV 연설을 통해 “언제든지 활성화가 가능한 이란의 비밀 핵무기 개발 계획과 관련한 새로운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은 2015년 핵 합의 시점과 그 이후에도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해 왔다”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이란은 히로시마 원자폭탄 5배 규모의 탄도미사일 탑재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프로그램, 일명  ‘프로젝트 아마드’를 진행했지만 이 같은 사실을 철저히 감췄다는 것이다. 이란 핵 사찰을 진행한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이 내용을 다 알지 못했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주장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프로젝트 아마드가 “핵무기를 고안하고 실험하기 위한 포괄적 프로그램”이라면서 “이란이 핵무기 개발로 돌아서는 시점에 사용할 물질을 몰래 비축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란 핵 개발에서 합의까지

이란 핵 개발에서 합의까지

영어로 진행한 이날 연설에서 네타냐후 총리는 직접 증거를 제시하진 않았지만 약 11만 건의 문건 및 자료들을 테헤란 비밀 창고에서 입수했다고 밝혔다. 그는 “자세한 내용을 이미 미국과 공유했으며 다른 국가와 IAEA 등에도 전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네타냐후 총리가 연설 뒤 프랑스·독일·러시아 정상과 연쇄 통화하고 이스라엘이 확보한 이란 핵 관련 증거들을 공유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들은 ‘이란 핵 프로그램 의혹’을 중요 뉴스로 전하면서도 네타냐후의 주장이 새롭거나 신빙성이 높은 것은 아니라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이란이 과거에 핵무기를 개발했던 것은 비밀도 아니며 네타냐후가 이번에 내놓은 자료가 새로운 것인지 확인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설사 이란이 합의 체결 과정에서 거짓말을 했다 해도 그후 이란이 JCPOA를 충실히 지켜 온 이상 이를 ‘핵 합의 파기’의 근거로 삼긴 어렵다는 시각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이란 핵협정 대표를 맡았던 롭 말리 전 중동담당 조정관은 트위터를 통해 “비비(네타냐후의 별명)의 발표에는 새로운 내용이 없고 핵 합의의 필요성을 입증할 뿐”이라면서 “그는 단 한 명의 청중을 겨냥했다. 트럼프”라고 비꼬았다.

일각에선 이스라엘의 이번 폭로가 트럼프 대통령의 핵 합의 파기를 위한 주요 명분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AP통신은 네타냐후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중대 결단을 앞두고 국제 여론에 입김을 넣으려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고 해설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이번 발표야말로 자신이 이란 핵 합의에 대해 비판해 온 게 “100% 옳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역설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로부터 넘겨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진짜로 보인다”면서 “기존 합의는 이란의 거짓말에 기초해 작성됐다”고 말했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JCPOA를 ‘최악의 합의’로 불렀던 트럼프는 기존 합의가 이란의 핵 활동을 전면·영구적으로 제어할 수 없다고 본다. 재협정을 통해 이란 탄도미사일 개발을 사찰하고, 10∼15년으로 한정된 이란 핵 프로그램 제한 기간을 폐지해 영구히 묶어야 하며 시리아·예멘·이라크 등에서 이란의 후원 활동을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트럼프는 특히 미국이 JCPOA를 탈퇴할 경우 임박한 북·미 정상회담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에도 반박했다. 그는 미국의 파트너가 규정 준수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김정은이 알아야 한다면서 “오히려 (북한에) 올바른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또 JCPOA를 철회한다 해도 “이것이 내가 새로운 협정을 안 하겠다는 뜻은 아니다”고 덧붙여 자신이 주도하는 새 협정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재협상을 극구 반대해 온 이란은 이날 이스라엘의 주장을 “근거 없다”고 일축했다. 이란 핵 협상 고위대표를 담당했던 압바스 아라크치 외무 부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이스라엘은 수년간 목도해 온 유치한 게임을 또다시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NYT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네타냐후의 주장은 트럼프에게 영향을 끼치려는 쇼이거나 아니면 둘이 공모해 핵 합의(JCPOA)를 파기하려는 술책”이라고 비난했다.

앞서 이란은 미국이 핵 합의를 파기할 경우 자신들도 핵 동결을 해제하고 고농도 농축우라늄 생산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라는 초강경 응수도 고려 중이라고 예고했다. 지난달 24일 알리 샴커니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은 국영방송에서 “NPT는 회원국의 이해가 위협받으면 떠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핵기술을 재가동할 능력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최악의 경우 오는 12일 이란의 핵 시계가 다시 돌아가게 됐다. 외신들은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의 막판 중재 노력이 기대를 받고 있지만 가능성이 크진 않다고 전했다. 앞서 백악관 국빈 방문에서 트럼프 정부 입장을 반영한 수정안을 제시했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 후 “이란은 핵무기를 절대 보유해서는 안 되며 지역 안정과 국제안보가 여기에 달렸다”면서 관련국들의 합의 준수를 재차 강조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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