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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당선 아닌 2등’이면 된다는 한국당 … 단일화 난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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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의 정치 속으로 …‘무미건조’ 서울시장 선거판 D-42

박원순 질주 속 1강2약 구도 지속 #한국당 “김문수 2등 땐 안철수 끝” #비홍계는 “패배 면피하려는 꼼수” #개혁성향 3선 중심 단일화 움직임 #안철수 측도 “단일화 생각 없다” #속내는 “대세론 굳히면 단일화 가능” #은메달 향배가 양당 운명 결정할 듯

지난달 22일 지구의날 행사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박원순 후보(왼쪽부터), 국회 예천군민의날 한마당의 자유한국당 김문수 후보, 불법댓글공장 규탄대회 찾은 바른미래당 안철수 후보. [연합뉴스]

지난달 22일 지구의날 행사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박원순 후보(왼쪽부터), 국회 예천군민의날 한마당의 자유한국당 김문수 후보, 불법댓글공장 규탄대회 찾은 바른미래당 안철수 후보. [연합뉴스]

지난달 24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 인근 맛집 골목. 자유한국당 상징인 빨간 점퍼 차림의 시의원 후보들을 이끌고 김문수 후보가 인사에 나섰다. 대학가 특성상 인파 상당수가 20대였다. 이들은 김문수가 악수를 청하자 목례만 하면서 옆으로 피해 갈 길을 갔다. “홍해 바다를 가른 모세의 기적처럼 김문수가 손을 펼치면 인파가 좌우로 쫙 갈라지네.” 뒤따르던 시의원 후보가 푸념했다. 그러나 60대 이상 노년층의 반응은 달랐다. 김문수가 악수를 청하기도 전에 다가와 손을 잡으며 격려했다. 김문수에게 물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산이 있다고 보나
“내가 후보가 되면서 보수는 거의 결집 됐다. 서울 유권자 중 극우로 분류되는 25%는 다 내 편에 섰다. 원래는 이 안에 태극기 세력이니 대한애국당 지지층이니 해서 분열이 심했는데 내가 한국당 서울시장 후보가 되면서 다 하나가 됐다. 그 다음 중도우파가 15%쯤 있는데 이들은 앞으로 견인할 대상이다. 이어 중도가 20% 정도인데 안철수 지지층이 이쪽에 있다. 나머지 40%는 좌파로 민주당 지지층이다. 내가 중도우파 15%를 흡수하고 중도까지 나아가면 승산이 없지 않지만 장담할 순 없다. 내겐 이중적인 장애가 있다. 민주당 지지율이 50%대고 대통령 지지율이 70%대인데 우리 당은 20%대다. 당 지지율이 올라줘야 한다. 혼자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경기도에서 3선 의원을 했고 경기지사도 8년 한 사람이 대구에서 금배지를 노리고 내려갔다가 실패하자 서울시장 선거에 나온다는 비판에 대해선
“난 개봉동 공장에서 5년, 청계천 공장에서 1년, 동대문에서 보일러공으로 1년, 도합 7년을 보냈고 서울구치소도 두 번 들어갔다. 나처럼 서울 구석구석에서 땀과 눈물을 흘리면서 산 사람이 누가 있나”
2년 전 총선에서 대구 공천을 노리고 ‘진박 마케팅’에 가세했다는 비판도 있다.
“당시 급부상한 민주당 후보 김부겸과 싸워 이겨 대구를 지켜낼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자 유승민을 포함해 당시 새누리당 대구 의원 12명 모두가 내가 와야 한다고 했다. 대안이 없으니까 간 것뿐이다.”
문재인 정권 독주를 막기 위해 안철수와 단일화하라는 압박이 많은데
“논리가 없다. 안철수가 문재인을 견제할 사람인가. 문재인과 대칭축엔 내가 있다. 또 그는 정치적 미숙아다. 지방선거는 바람도 중요하지만 조직 요소도 많다. 조직은 안철수보다 내 편이 세다. 그런 것들이 여론조사에 나오지 않고 있다. 그래서 단일화 안 돼도 내가 이길 공산이 있다.”

캠프 관계자는 “김문수는 청렴한 일꾼 이미지가 남아있다. 다만 서울시민들에게 호감도가 낮은 홍준표 대표가 유세에 참가하면 득표보다는 감표 요인이 크다. 그의 서울 출현을 막고 김문수 위주로 선거를 치르면 승산이 있다” 고 했다.

하지만 40%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는 박원순 시장(민주당)의 독주는 김문수와 바른미래당 안철수 후보를 괴롭히는 핵심 요소다. 서울시장 7년 경력을 바탕으로 한 조직력은 박원순 파워의 핵심이다.

민주당 경선에서 박 시장과 격돌했던 박영선 캠프에서 일한 민주당 인사의 전언이다. “박원순이 지난해 초부터 권리당원을 부지런히 모았다. 1만5000명은 모은 것 같더라. 민주당의 다른 광역단체장 후보 경선에서 지역 권리당원 투표율이 30% 선인데 서울만 근 50%에 달했던 건 이들의 참여 때문이었을 거다. 이들이 박원순에 몰표를 던지니 배겨낼 재간이 없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현직 프리미엄을 무기로 한 박원순의 ‘스텔스 전략’도 안철수와 김문수에게 부담이다. 바른미래당 오세정 의원의 말이다. “박원순의 전략은 한마디로 ‘조용히 가자’다. 선관위 주최 토론 등 법적으로 꼭 해야만 하는 토론 말고는 경쟁 후보들과의 정책 논쟁을 가급적 피하려는 모양새다. 부자 몸조심의 전형이다. 박원순과 붙어 논란을 일으켜야 주목도가 높아지는 야권 후보들로선 답답한 상황이다.”

다른 미래당 관계자도 “박 시장이 종로 안국빌딩에 방을 임대하는 등 선거 준비를 다 마치고도 선관위 후보 등록은 마감일(25일)로 미뤄 시장직을 그때까지 유지하려 한다는 소문이 있다. 현직 프리미엄을 최대한 갖고 가겠다는 의도로, 정치 도의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원순 측은 “근거 없는 헐뜯기”라고 반박했다. “최소 4차례 이상 토론에 나갈 계획이고 시장직 사퇴도 끝까지 미룰 생각은 없다. 마감일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진 시점, 이를테면 5월 중순 안에 물러날 방안을 검토 중”이란 것이다. 몸 사리기를 한다는 인상을 주면 오만하다는 프레임이 생길 것을 박원순 측은 가장 우려하고 있다. 캠프 관계자는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은 대세론에 안주해 쉽게 선거를 치르려 했다가 민심의 역풍을 불러 참패했던 사례가 재현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고 했다.

박원순이 우위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안철수·김문수 후보 단일화가 거론되나 양측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자유한국당 김선동 서울시당위원장은 “지난해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가 서울에서 24%를 득표했다. 1년 뒤인 지금은 문재인 정부에 반대하며 우리 당을 지지하는 서울 유권자가 10%포인트는 늘었다고 본다. 기껏 20%대 수준일 안철수를 제치고 박원순과 맞장을 떠볼 만하다. 선거 후반으로 갈수록 김문수 지지율이 늘면서 안철수는 도태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당은 현재 지지율 추이를 박원순 40%대 후반, 김문수 20%대 후반, 안철수 20%대 초반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서울 시내가 지역구인 한국당 의원들의 전언에 따르면 당 지도부의 진짜 속내는 “김문수가 2등만 해도 이문을 챙길 수 있다”는 것이다. “김문수가 지난해 홍준표가 대선에서 얻은 24% 이상을 득표하면 일단 ‘면피’가 되며, 한발 더 나가 김문수가 득표율 2위를 해 한국당에 눈엣가시인 안철수를 3위로 밀어내면 안철수는 몰락하고 바른미래당은 해체 수순을 밟게 된다”는 시나리오다. 실제로 바른정당 출신의 바른미래당 인사는 “안철수가 2등을 하면 당이 유지되겠지만 3등을 하면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이 탈당해 한국당에 들어감으로써 바른미래당이 ‘미래당’ 수준으로 졸아들거나 당 자체가 해체될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는 “패배를 전제로 한 정치공학일 뿐이며, 한국당이 문재인 정부에 제대로 견제를 해주길 원하는 보수 유권자들의 바람을 저버리는 꼼수”란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 한국당 내 비홍계 의원들 입장에서는 ‘김문수 2등 전략’은 홍준표의 입지만 강화시켜 다음 전당대회에서 연임할 가능성을 키운다는 점에서 거센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다.

나경원 의원(4선·동작을)은 “서울시장을 가져오려면 선거 직전 김문수와 안철수 후보가 여론조사를 해서 지지율 높은 쪽으로 단일화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조만간 양측간에 그런 논의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성중 의원(초선·서초을)도 “야권 후보가 김문수·안철수로 갈라져선 5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기록 중인 박원순을 이길 수 없다. 15% 이상을 득표해야 선거비용을 보전받을 수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후보 등록 마감일인 25일 이전에 단일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당 내에선 개혁 성향 3선급 의원들이 전면에 나서 단일화 논의에 불을 붙이고 4선급 이상 중진 비홍계 의원들이 가세해 선거 막판 단일화를 성사시킨다는 복안도 나오고 있다. 중도 성향의 한 비홍계 인사는 “단일화가 실패하고 안철수가 2등, 김문수는 3등에 그칠 경우 홍준표는 그날로 대표직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금메달 아닌 은메달의 향배가 두 당 리더십이나 당 전체의 명운을 가를 수 있다는 얘기다.

바른미래당도 단일화에 말을 아끼고 있다. 안철수의 전략가인 최명길 전 의원은 “선거 막판 안철수 대세론이 굳어져 김문수가 스스로 후보를 사퇴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인위적 단일화는 생각할 수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는 “선거일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고 박원순 시장의 실정이 많이 축적돼있는 만큼 안철수가 지지율을 높여 1위를 넘보게 될 공산은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양측 지도부가 단일화에 시큰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구청장과 시·구 의원 후보들의 거취와도 큰 관련이 있다. 안철수나 김문수 어느 한쪽으로 단일화가 되면 줄투표가 관행인 지방선거 특성상 후보를 사퇴한 측 당에서 나온 구청장 및 시·구 의원 후보들은 죄다 낙선할 가능성이 커진다. 2년도 안 남은 다음 총선에서 구청장과 시·구 의원들의 지원이 절실한 양당 의원들로서는 이렇게 리스크가 큰 단일화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바른정당에서 한국당으로 돌아온 복당파 의원들의 리더인 김무성 의원이 올 초 복당파와의 식사 자리에서 “안철수로 단일화하는 방안을 추진하면 어떤가”는 의견을 냈지만 의원들은 “그럼 우리 구청장과 시·구 의원 후보들은 낙동강 오리알 되는 것 아니냐”며 난색을 표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결국 단일화 논란은 여론의 향배에 달렸다. 보수와 중도층에서 야당이 정권견제에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거나 안철수가 지지율을 높여가 1강(박원순)-1중(안철수)-1약(김문수) 구도가 되면 단일화 논의는 가속화할 수 있다. (김문수 지지율이 높아져 그가 1중이 될 경우엔 안철수가 후보를 사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지 못하면 3자 대결로 서울시장 선거가 치러질 공산이 크다. 3자 대결 시엔 박 시장이 당선될 가능성이 큰 게 현재까지의 형세다. 때문에 야권에선 선거까지 남은 40여일간 단일화 논란이 어떤 형태로든 이어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단일화가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것은 물론 선거 뒤 홍준표 체제의 생존 여부와 안철수의 거취, 바른미래당의 존폐 및 야권 개편 시나리오와 전부 연동돼있기 때문이다.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