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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우간다에 비교되고 원장 줄낙마까지…금감원 잔혹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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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의 경제는 살아 있다

 금융감독원장이 불과 한 달 사이에 두 명이나 줄사퇴했다. 사상 전례가 없는 금융감독원 잔혹사다. 금감원은 패닉에 빠졌다. 연거푸 구질구질한 일로 ‘CEO(최고경영자) 리스크’가 터지면서 금감원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면다. 직원들은 뒤숭숭하다. 신뢰가 있어야 영(令)이 설텐데 부도덕으로 먹칠되면서 ‘공공의 적’으로 비추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더구나 금감원 내부의 잘못이 아니라 외부에서 발생한 불상사로 오명을 뒤집어썼다. 금감원은 왜 이런 격랑에 휘말렸을까. 물러난 최흥식ㆍ김기식 전 원장은 말이 없다. 이들이 낙마한 배경과 패닉에 빠진 금감원 사태가 어떻게 흘러갈지 추적에 나섰다. 답은 현장에 있다. 그래서 서울 여의도 금감원으로 향했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 걸린 현수막은 금융감독원이 해야 할 일을 잘 제시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15년 한국의 금융시장 성숙도를 우간다보다 낮다고 평가했다. 더 이상 우간다에 비교 당하지 않으려면 관치에 의한 군림보다는 선진 금융감독체계 구축이 시급하다. 김동호 기자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 걸린 현수막은 금융감독원이 해야 할 일을 잘 제시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15년 한국의 금융시장 성숙도를 우간다보다 낮다고 평가했다. 더 이상 우간다에 비교 당하지 않으려면 관치에 의한 군림보다는 선진 금융감독체계 구축이 시급하다. 김동호 기자

금융개혁 본질 외면한 코드인사 참극 #모피아 뺨치는 ‘금피아’ 민간에 군림 #관치 악습 차단이 금융개혁 첫단추 #‘을’ 출신 앉혀야 금감원 개혁도 가능 #금융개혁? “사람 아니라 제도로 해야” #“금융사 경쟁력 높이는 게 금융개혁”

이른 아침 예고도 없이 방문한 터라 간신히 직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국장급 간부는 손사래부터 치더니 “제발 언론에 부정적으로 나오지 않게 해달라”면서 말을 아꼈다. 팀장급 직원들은 “내부에서 잘못한 일도 아닌데 이미지가 실추됐다. 공백 없이 빨리 안정됐으면 좋겠다”고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사실 금감원은 잊힐만 하면 주목을 받는 조직이다. ‘금융검찰’이라는 별칭대로 권력이 막강한 만큼 바람 잘 날이 없다. 금융회사에 대한 갑질 논란에다 저축은행 수뢰와 채용비리 까지 꼬리를 문다. 퇴직 후에는 낙하산 인사를 통해 피감독 금융회사의 감사 등 요직을 꿰차기도 한다. 그래서 모피아(경제 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 뺨치는 금피아란 꼬리표가 붙는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전경. 근처에 가기만 해도 권위주의가 느껴진다. 김동호 기자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전경. 근처에 가기만 해도 권위주의가 느껴진다. 김동호 기자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차이점은 외풍이 청와대에서 직접 불어왔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금융 역시 ‘개혁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가계부채가 쌓여가는데도 은행들이 높은 예대마진을 챙기고, 금융 소비자들에게 고금리를 받는 현실을 뜯어고치겠다는 것이다. 김기식은 이런 개혁의 적임자로 지목됐다. 기존 관료 출신에겐 기대할 수 없는 과제들이란 이유에서였다.
김기식 사태는 청와대의 이런 인식에서부터 꼬였다는 것이 금융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금감원을 지휘하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출신이어서 금감원장의 역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청와대가 금융 개혁의 적임자로 금감원장을 지목한 것부터 잘못됐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금융위원회가 국회를 거쳐 만들어놓은 제도와 규정의 틀 안에서 검사와 감독을 잘하라고 있는 기관일 뿐”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개혁을 한다고 해도 법과 제도를 통해 하는 것이지 집행자 역할만 되는 금감원장이 의욕을 갖는다고 해서 된다는 건 언어도단”이라고 했다.
다만 금감원이 현장에서 감독과 검사를 행사하다 보면 제도와 현실의 괴리를 발견하기 쉽고 이러한 부분은 금융위의 승인을 받아 감독규정 개정을 통해 손 볼 수는 있다. 김 전 원장은 최고금리를 10%로 낮추고 인터넷은행을 위해 은산분리 규정에 예외를 둘 수 없다는 지론을 펴왔다. 또 보험업법 개정을 통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취득원가에서 시가로 산정해 총자산의 3%가 넘는 20조원어치를 매각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런 의견은 매우 편협하고 현실적으로 될 수도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금리는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정해지고, 20조원이나 되는 주식을 파는 것은 시장 충격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15년 한국의 금융시장 성숙도를 우간다보다 낮다고 평가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연합뉴스

세계경제포럼(WEF)은 2015년 한국의 금융시장 성숙도를 우간다보다 낮다고 평가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연합뉴스

초대 금융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전광우 연세대 석좌교수도 같은 맥락에서 이 사태를 바라봤다. 2008년 출범한 금융위원회는 1998년 출범한 금융감독위원회의 후신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획재정부의 금융 정책 기능을 가져오면서 권한이 커진 금융위원회는 명칭에서 감독을 떼내고 감독원을 독립된 집행기관으로 분리했다. 외견상 금융위와 금감원이 따로 떨어지게 되면서 금감원의 위상도 높아졌다. 전 교수는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이치를 생각하면 된다”며 “현장에서 감독을 하니 금감원장의 파워도 커보였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 교수는 “금감원은 금융위 산하기관에 불과하다. 금감원장이 금융 개혁을 추진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유는 이렇다. “금융감독체계는 금융위에서 결정되고 회의는 금융위원장이 주재한다. 금감원장은 기획재정부 차관, 예금보험공사 사장 등과 함께 회의에 참석하는 위원일 뿐이다. 금감원장은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차질없이 집행하는 역할만 하면 된다.”
김 전 원장이 불과 2주 간 재임할 때 업권별 대표회의를 줄줄이 소집한 것도 뒷말이 따른다. 전 교수는 “은행장들이 얼마나 바쁘냐. 그런 사람들을 금감원장이 소집하면 어떻게 되겠나. 금융위원장이 버젓이 있는데 위 아래도 없이 무질서하게 되면 시장에선 혼선과 부담이 가중될 뿐이다. 그래서 내가 재임할 때는 그런 일이 없도록 했다. 금융당국의 수장은 위원장 한 명뿐이다.”
물론 김 전 원장은 취임에 따른 상견례 차원에서 업권별 회의를 열었다고 볼 수 있지만, 그가 낙마하지 않았다면 광폭 행보가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많다. 청와대에서 지목한 금감원장이 금융개혁을 한다고 회의를 소집하면 시장에선 그의 입을 쳐다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상 최단명으로 끝난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연합뉴스

사상 최단명으로 끝난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연합뉴스

이럴 경우 금융수장이 누구냐를 놓고 금융위와 감독원이 갈등하고 있는 것처럼 비춰지기 쉽고, 이는 결국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웠을 공산이 크다.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은 “금융 개혁이라는 게 뭐냐? 시장에서 (은행, 증권, 보험 등) 플레이어들이 잘 뛸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서 국내 금융시장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런 면에서 그는 “금융 개혁을 원한다면 시장의 현실을 잘 아는 금융회사 경영자가 금감원장으로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을 입장에서 당해봤으니 (금감원의 갑질을) 잘 알지 않겠느냐. 거꾸로만 하면 금융개혁이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금감원 구성원들 사이엔 김기식에 대한 입장이 엇갈린다. 노조는 “관료 출신 원장은 금융위원회의 ‘예스맨’이 돼 금감원의 권한을 축소하는데 앞장서 왔다”며 ‘실세’ 김기식을 환영했다. 반면 부원장보 출신의 금감원 ‘오비’는 김기식은 적임자가 아니라고 했다. “진보 쪽에서 보면 금융은 보수적이고 마피아처럼 내부 이너써클에서 먹고 마시는 집단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개혁적 원장 한 명이 와서 확 뒤짚어 놓을 분야가 아니다. 금융은 묵직하게 버티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피감독회사인 민간 금융회사 하나금융지주와 대립하고 채용비리 의혹이 불거져 낙마한 최흥식 원장. 연합뉴스

피감독회사인 민간 금융회사 하나금융지주와 대립하고 채용비리 의혹이 불거져 낙마한 최흥식 원장. 연합뉴스

도돌이표 금감원 파동은 결국 우간다보다 못하다는 금융시장 성숙도에서 나오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최흥식 전 원장 낙마 역시 성숙한 금융감독체계보다는 관치에 토대한 완력을 발휘하면서 빚어진 참사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셀프연임’에 시끌벅적하게 제동을 건 자체가 후진성을 드러냈다는 얘기다. 이런 사태는 금융 관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언제든 재발될 수 있다. 금감원 울타리에 걸린 ‘우간다보다 못한 금융성숙도! 금융위ㆍ금감원ㆍ거래소는 환골탈태하라’는 현수막이 패닉에 빠진 금감원의 암울한 현실과 나아갈 길을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