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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지갑 찾았더니 현금까지 고스란히 되돌아 왔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성희의 어쩌다 꼰대(43)

비명이 넘쳐난다. 세상 살기가 힘들어 ‘헬조선’이니 ‘5포 세대’ ‘이생망(이번 생은 망쳤다)' 등 온갖 흉흉한 소리가 터져 나온다. 하지만 진정 꼰대 같은 소리도 들릴지 몰라도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고 믿는다. 숲속에 숨어 있는 옹달샘처럼 사회 구석구석에 사람다운 사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지갑을 잃어버렸다. 저녁에 친구들과 술 한잔한 뒤 집에 와 보니 지갑이 없는 것이었다. 술집에서 흘렸나 싶어 물어봤지만 찾아봐도 영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처음 겪는 일이었는데 낭패도 그런 낭패가 없었다. 그날따라 적지 않은 현금이 들어 있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신용카드사에 분실 신고해야지, 운전면허증과 주민등록증도 재발급 신청해야지…. 수습을 위해 할 일이 수두룩했다.

잃어버린 지갑 되찾았더니 현금이 고스란히  

잃어버린 지갑을 찾아준 사람들. 사례를 하려니 거부하는 바람에 케이크로 인사한 후 돌아오는 길은 그렇게 유쾌할 수가 없었다. [사진 freepik]

잃어버린 지갑을 찾아준 사람들. 사례를 하려니 거부하는 바람에 케이크로 인사한 후 돌아오는 길은 그렇게 유쾌할 수가 없었다. [사진 freepik]

그렇게 며칠을 보냈는데 모르는 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중학생인 자기 아들이 지갑을 주웠노라고, 지갑 안에 연락처가 없어 카드사에 문의해 전화번호를 알아내느라 지체되었다고 했다. 각종 증명서만 되찾은 것만도 반가운데, 현금도 고스란히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찾아준 사례를 하려니 한사코 거부하는 바람에 케이크로 인사를 대신한 후 돌아오는 길은 그렇게 유쾌할 수가 없었다.

살 맛이 난다고 느낀 일은 또 있다. 평생의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최근 집을 샀는데 돈이 부족했다. 아니, 모자라는 돈은 은행 대출을 받았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가욋돈이 들어 몇천만 원이 부족했다. 다시 은행에서 빌리기도 뭐해 주변에서 융통할까 싶었다.

한데 머리가 희끗희끗해서는 어디 가서 돈이 아쉽다는 이야기를 하기 쉽지 않다. 가깝다고 해서 믿거라 하는 생각에 돈 좀 빌려달라 했다가 어색해지기에 십상이다. 부탁을 받는 사람 입장에선 거절하기도 뭐하고 하니 말이다. 그래 생각한 것이 40년 넘게 알아온 고교 동창 몇이 모인 카카오 단톡방이었다. 얼굴을 직접 대면하는 것이 아니니 피차 무색할 일은 없겠다 싶었다.

해서 상대를 특정하지 않고 단톡방에 공지 형식으로 얼마를, 얼마 동안 빌려줄 친구가 있는지 띄웠다. 올리자마자 여러 친구가 전화했다. “개인적으로 이야기하면 될 걸 왜 동네방네 알리느냐”면서 당장 계좌번호를 찍어 달라 했다. 물론 그런 호쾌함을 보여주지 못한 친구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사정이 있는 경우였다.

아직은 살 맛 나는 세상  

단톡방에 공지 형식으로 돈을 빌려줄수 있는지 띄웠더니 여러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일러스트=중앙DB]

단톡방에 공지 형식으로 돈을 빌려줄수 있는지 띄웠더니 여러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일러스트=중앙DB]

그뿐만 아니다. 그렇게 돈 문제를 해결하고선 이런 나 자신이 자랑스러워 이런저런 만남에서 이야기를 했더니 “아니, 그랬다면 내게 이야기하지”라는 이를 여럿 만났다. 동창이나 절친도 아닌, 사회생활하며 만난 이들이 그러는 걸 보니 “아, 내가 잘못 살지는 않았구나! ”싶기도 하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직은 살 맛 나는 세상이네”라는 안도감도 들었다.

그렇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 했다. 평소 남에게 해코지하지 않고, 경우 바르게 살았다면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보답이 있다. 들인 공만큼 얻는 게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살 만하지 않은가.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jaeja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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