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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댓글을 위한 변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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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

댓글이 아예 없는 세상은 어떨까 상상한 적이 있다. 댓글을 읽으면 몹시 우울해지기 때문이다. 댓글들은 이 글의 중앙일보 온라인판에도, 네이버나 다음의 포털판에도 툭, 툭 못난 사과같이 달릴 것이다.

이제 와 댓글 없이 살 수 있겠는가 #민주주의는 하나의 예쁜 사과보다 #수백 개의 지겹고 못난 사과까지 #하나도 버리지 않는 제도 아닌가

글의 저자로서 이런 ‘열린 구조’가 몹시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다. 내 글의 최종 결론(final say)은 내가 맺는 마지막 문장이 아니라 결국 그 아래 위치한 익명의 댓글이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백면서생의 어쭙잖은 고민일망정 힘들게 고심해서 써내려간 글 아래 다음과 같은 댓글을 보면 가슴이 시리다. “꼴값 하네.”

아무리 하찮은 전시회에도 작품 바로 옆에 낙서장을 두지는 않으며, 누군가가 열심히 노래를 부를 때 새로 마이크를 켜지 않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언론과 포털이 지금과 같이 본문과 댓글이 공존하는 형태로 진화한 것은 매우 특별한 계기와 동기가 있었다.

그것은 인터넷이라는 당시 새로 발견된 매체가 뉴스를 빠르고 널리 전달할 뿐만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가 교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었다. 정치학적으로 말한다면 댓글은 기존의 일방적 정보 전달이 아니라 정보 소비자가 주체적으로 정보를 추가하고 토론하며 다투는 ‘참여’의 플랫폼이기도 하다는 사실이었다. 경제학적으로 말한다면, 이러한 ‘참여’ 자체가 매우 잘 팔리는 상품이라는 것, 댓글이 댓글을, 추천이 추천을 부르며, 본문보다는 댓글이 사람들을 부른다는 것이 비즈니스 모델이 됐다는 점이다. 요컨대 한국의 독특한 댓글 시스템은 민주주의와 상업주의가 만나는 교차 지점에 안착한 셈이다.

조악한 소설 같은 ‘드루킹 사건’이 남북 해빙 무드, 개헌, 지방선거 등의 굵직한 이슈들을 모두 제치고 지난 두어 주 동안 줄기차게 여론의 관심을 받았던 것은 그것이 이상과 같은 시스템과 그 시스템에 대한 믿음을 기저에서부터 뒤흔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드루킹이 지난 대선을 좌우했기 때문도, 야당과 매체들의 선전·선동 때문도 아니고 우리 민주주의와 정치 토론에 대해 매우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었다.

박원호칼럼

박원호칼럼

그런 의미에서 ‘드루킹’이 누구 편을 들었는지, ‘매크로’와 부정계정을 사용하는 편법을 사용했는지, 누구로부터 어떻게 돈을 받았는지 하는 질문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모든 선거에서 스스로를 과대포장하는 브로커들은 항상 있어 왔고, 브로커들은 편법을 찾으려 할 것이며, 이들을 단칼에 물리칠 수 있는 후보는 없다. 그 과정에서 범법행위가 있었다면 처벌받아야 하는 것에는 온라인, 오프라인의 차이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지하게 댓글과 관련해서 던져야 할 근본적인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첫째, 선거법을 비롯한 현행법은 온라인 정치 활동을 규제할 능력이 있는가? 나아가 규제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예컨대 “여론을 호도하고 왜곡”한다는 것은 어떤 기준에서 누가 평가할 수 있으며, “올바른 여론”은 누가 결정하는가? 사람들이 모여서 특정 후보 지지 선언을 하는 것이 위법이 아니라면 하나의 사안에 대해 비슷한 댓글들을 다는 것이 불법이라고 할 근거는 무엇인가? 어떤 경우이건 이미 선거를 과도하게 규제하는 선거법이 온라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둘째, 현재 댓글 시스템 운영자들은 자기 교정 능력이 있는가? 보다 많은 댓글과 추천 수와 방문 기록이 더 큰 수익으로 직결되는 현재 환경은 그것이 포털이건, 언론사이건 왜곡을 부추기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현재 정치권과 언론사들이 내놓고 있는 ‘아웃링크’라는 대안은 해법이라기보다는 문제의 회피가 아닌가 생각한다. 수익자 부담의 원칙에서 투명한 운영과 그 실패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부과할 수 있을지를 다같이 궁리해야 할 것이다.

셋째, 어쩌면 가장 근본적인 질문, 과연 현재의 댓글 시스템은 이런 모든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지켜나가야 할 가치가 있는가? 앞서 밝힌 것처럼 댓글들이 불법이건 합법이건 진지한 정치적 토론과 성찰을 가로막는다는 것도 사실이며 따라서 댓글 자체를 아예 없애자는 논의가 나오는 것도 놀랍지 않다.

그러나 이제 와서 댓글 없는 세상을 새삼 살 수 있겠는가. 수백 개의 못난 사과 사이에 가끔, 아주 가끔씩 보이는 이름 모를 이웃의 빛나는 촌철살인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아니, 그것보다도 민주주의야말로 하나의 예쁜 사과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수백 개의 못나고 지긋지긋한 사과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는 제도라고 우리는 비로소 댓글들을 통해 이해하게 되지 않았던가.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