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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의 레저터치] 개민들레는 누구의 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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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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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꽃 피는 계절이다. 콘크리트 세상만 벗어나면 노랑 천지다. 제주도 중산간도 죄 노란색이다. 아침 나절 동거문이오름 능선은 막 피어난 민들레꽃으로 노랗게 반짝인다.

제주 동거문이오름에서 촬영한 개민들레 군락. [중앙포토]

제주 동거문이오름에서 촬영한 개민들레 군락. [중앙포토]

 하나 제주 민들레의 태반은 민들레가 아니다. ‘서양금혼초’라는 딱딱한 이름의 외래종이다. ‘민들레아재비’라고도 하는데, 제주에서는 ‘개민들레’라고 한다. 꽃이름 앞에 ‘개’ 자가 있거나 뒤에 ‘아재비’가 붙으면 가짜라는 뜻이다.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종이라는 표시다. 개민들레는 민들레가 아니다.
 개민들레는 서양민들레하고도 다르다. 서양민들레는 이 땅에 들어온 지 100년이 넘었는데, 개민들레는 1980년대 씨앗이 수입 사료에 묻어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꽃 모두 서양에서 왔으므로 토종보다 크고 억세다. 토종 민들레는 봄에만 꽃을 피우지만, 두 녀석은 봄부터 가을까지 연신 꽃을 피운다. 꽃씨도 많이, 그리고 멀리 날려보낸다. 북극권의 툰드라 평원에서도 민들레를 본 적이 있다. 북위 66도 북쪽의 땅은 흙 아래에 빙하가 깔려 있다. 얼음 대지 위에 얇은 흙이 덮여 있는데, 이 극한의 조건에서도 민들레는 꽃을 피우고 씨를 퍼뜨린다.
 개민들레는 섬에 들어온 지 30년 만에 제주 산야를 거의 점령했고, 육지의 서양민들레는 이미 토종 민들레보다 더 흔한 종이 되었다. 외래종이 무서운 건 이 때문이다. 외부에서 뭐 하나만 들어와도 우리의 체제는 속절없이 무너진다. 비단 식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시방 두 ‘유사’ 민들레는 고유 생태계를 위협하는 침략자로 인식된다. 자치단체가 제거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박멸을 위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내가 아는 사진작가 중에는 서양민들레만 띄면 밟고 짓이기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다르다. 외래종 식물만 보면 발끈하는 세태가 나는 못마땅하다. 외래종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들을 못 죽여 안달일까. 외래종이 토종을 밀어내는 현실이 무엇이 잘못인가. 외래종이 강한 것이 잘못인가. 우리가 약한 것은 잘못이 아닌가. 우리는 왜 자연에서만 우리 것을 찾는가.
 현재 국내의 귀화식물은 220종이 넘는다. 개중에는 돼지풀·가시박 같은 해로운 것도 있지만 토끼풀·개망초처럼 친숙한 것도 있다. 외래종이 인체에 해가 된다면 다른 문제이겠으나 두 ‘유사’ 민들레의 해악에 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사실 고민은 따로 있다. 우리가 지키려는 ‘우리 것’이 우리 것이 맞는지 나는 모르겠다. 토종 민들레는 언제부터 우리 꽃인가. 이 땅에서 산 지 30년이 지난 개민들레는 왜 우리 꽃이 아니며, 이 땅에서 100년을 산 서양민들레는 왜 여전히 뽑히고 잘려야 하는가. 우리 꽃이 아니면 누구의 꽃인가.
 아니, 이 땅의 우리가 우리는 맞긴 한가. 아직도 우리는 단일민족인가. 일제강점기 35년은 우리의 역사가 아닌가. 60년이 넘는 세월을 남과 북은 남남으로 살았다. 남과 북은 우리인가, 우리가 아닌가.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판문점 주변에도 민들레꽃이 한창일 터이다. 물론 서양민들레가 대부분일 것이다.
 레저팀장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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