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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혜리의 직격 인터뷰

“일상화된 매크로 조작 … 네이버는 알고도 방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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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인터넷 조작에 밝은 이준행 개발자

미디어스타트업 개발자인 이준행씨는 중학교 때부터 커뮤니티 사이트를 만들고 키워온 경험과 네이버 등 IT회사 근무 경력 덕분에 댓글 조작같은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문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강정현 기자]

미디어스타트업 개발자인 이준행씨는 중학교 때부터 커뮤니티 사이트를 만들고 키워온 경험과 네이버 등 IT회사 근무 경력 덕분에 댓글 조작같은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문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강정현 기자]

충격!·경악!·헉! 같은 ‘낚시성’ 제목을 단 온라인 기사 목록을 제공한 ‘충격 고로케’, 일베에 대항하는 ‘일간워스트’….

국정원 댓글 사건 불거질 당시도 #우파·민주당 양쪽서 ‘은밀한’제안 #조작으로 얻는 이익 많아 유혹 커 #댓글창 존폐 고민해야 할 시점 #12살짜리도 조작 가능한 세상 #인강·음원 순위 등 일상화한 조작 #게임사, 수익 방해된다며 철퇴 #네이버는 돈벌이 도구로 삼아

지난 10여년간 급변하는 디지털 저널리즘 환경에 발 좀 담가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이 화제의 사이트들을 만든 이가 바로 개발자 이준행(33)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이미 커뮤니티 사이트를 만들어 한때 회원 80만 명에 달하는 영향력 있는 매체로 키우는 등 디지털 판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그를 만나 드루킹 게이트로 번진 민주당원 댓글 조작 사건에 관해 물었다. 이씨는 이번 사건의 주범 드루킹(김동원) 일당이 활용한 매크로 등의 조작 기법을 잘 아는 전문가이자 그 역시 4~5년 전 일간워스트 운영 당시 보수와 진보 양 진영으로부터 모두 ‘은밀한’ 제안을 받은 바 있어서다. 그는 이번 드루킹 게이트를 비롯해 인터넷상의 여러 조작의 실체를 비교적 깊숙이 증언할 수 있는 인물로 꼽힌다.

일간워스트를 운영하며 댓글의 세계를 진작부터 주목했을 것 같다.
“주목이라기보다 질렸다. 만든 직후인 2013년 12월 네이버 실검에 올라 알려지면서 일베에 소위 ‘좌표’가 찍혀 댓글 공격을 당했다. 트래픽 폭주로 여러 번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하루 방문자수 1000만 명까지도 찍어봤다. 그건 여론이 아니라 데이터일 뿐이다. 온라인 게임에서도 자동 공격 설정 등으로 아이템을 생성시킨 후 그걸 팔아 돈벌이하는 조작 세력이 많다. 엔씨소프트 등 게임회사에선 당연히 강력하게 조작을 잡아내는 방법을 강구한다. 댓글 조작을 잡는 기술과 유사하다. 누구든 그걸 데이터가 아닌 실체가 있는 여론으로 보면 전혀 대응할 수 없다.”
이번 댓글 조작과도 맥이 닿아 있는 나무위키(한국판 위키피디아) 얘기도 해보자.
“ 2015년 무렵 나무위키 페이지에 ‘이준행이 메갈리아 사이트(여성혐오를 미러링한 남성혐오를 표방)를 만들었다’는 허위 정보를 올리고 악성 루머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2017년 사과를 받았는데 알고 보니 14살짜리였다, 그러니까 허위 주장을 펼칠 당시 열두 살 초등학생이 관리를 한 거였다. 초등학생 하나가 누군가의 평판을 망가뜨리도록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는 얘기다. 댓글 얘기를 하자면 악플 때문에 자살하는 유명인이 꽤 있지 않나. 그런데 이게 여러 사람도 아니고 소수의 특정인물, 심하면 1명의 장난일 수도 있는 거다. 이를 비춰볼 때 몇 명 안 되는 댓글 세력이 네이버 댓글창이나 커뮤니티 게시판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진짜 여론을 가리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일종의 여론 조작 제안을 받은 사실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번 댓글 관련은 아니고 지난 정권 때인 2013~2014년 얘기다. 보수와 진보 다 있었다. 한 우파 온라인매체 대표와 민주당의 온라인 작업을 책임진다는 인물을 만났다. 매체 대표는 나중에 박근혜 정권 청와대에 들어갔고, 민주당 인사는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모 지역 더불어민주당 구청장 후보로 출마한다고 TV에도 종종 얼굴을 비치더라. 그런 작업하는 사람들은 대개 허세가 심하다.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알 수가 없다. 또 다른 유력 후보인 안철수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의 측근이라는 한 정치평론가는 ‘실검 순위 정도는 내가 만든다’고 떠들고 다녔지만 역시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당시 우파 매체 대표는 자금줄 얘기를 늘어 놓았고, 민주당 인사는 도와주는 대가로 사업적으로 힘써주고 키워주겠다고 했다. 이 사람은 ‘일베만큼 진보 진영 사람들을 모아 세를 불리겠다’며 오유(오늘의 유머)나 클리앙 같은 진보 쪽 커뮤니티 관계자는 다 만나고 다녔다. 당시 문재인의 새천년민주당과 안철수신당이 합치기로 했던 시기라 만나자마자 ‘누구 편’인지부터 묻더라. 그리고 ‘우리 편’으로 운영해 달라고 요구했다. 아무 편도 아니라고 거절했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2013년 기소된 국정원 댓글 사건을 크게 비난했는데, 그 와중에 양 진영 모두 비슷한 행태의 세력 다툼을 했던 건가.
“그렇다. 포털이 조작에 취약하다는 건 사실 더 일찍 알았다. 대학생 때인 2005년 시위 주동자로 몰려서인지 국정원 관리 대상이 된 모양이다. 국정원 사람을 만났는데 이후 가끔씩 전화를 걸어왔다. 한번은 ‘다음 실검에 오른 기사를 내릴 테니 지켜보라’는 거다. 통화 중에 실제로 빠지는 걸 봤다. (다음측에 압력을 넣은 것인지 이번과 같은 매크로 조작인지는 당시 알 수 없었고 그저 목격만 했다고 한다.)”
드루킹 일당이 ‘킹크랩’이라는 강력한 도구를 썼다는 경찰의 발표가 있다. 상당한 비용이 들텐데.
“그냥 자동 반복 작업을 하는 여러 매크로 프로그램 중 하나일 뿐이다. ‘그 정도 난이도라면 월 얼마짜리 개발자가 얼마나 시간을 들여 만들었느냐’가 프로그램 가격을 결정할텐데 이 정도는 별로 어렵지 않다. 나도 얼마 전 누구의 의뢰를 받아 3시간 만에 비슷한 걸 만들어본 경험이 있다. 심지어 로직(알고리즘)이 바뀔 때 자동으로 인식해서 그에 기계적으로 대응해서 작동하는 프로그램까지 쉽게 구할 수 있다. 경찰이 왜 그렇게 발표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대수롭지 않은 기술에도 방어를 못 하는 네이버 댓글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안 막는 건가, 못 막는 건가.
“어떤 게 매크로로 조작이 됐고, 어떤 기사가 어디로부터 ‘좌표’가 찍혔는지는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네이버가 이 정도 모니터링은 당연히 하고 있을 거다. 하지만 막는 건 다른 문제다. 임의로 막으면 사용자들이 반발하니 결국 대외적으로는 알고리즘을 바꿔서 대응한다. 10여 년 전 댓글은 최신순 노출이라 물량 공세로 도배를 해버리면 됐다. 최신 게시물 목록을 일컫는 ‘리젠’이라는 인터넷 용어가 있다. ‘리젠을 장악해야 한다’거나 ‘리젠을 밀어냈다’면서 이를 중요시하는 건 사람들 눈에 가장 먼저 띄어서다. 일부 발언을 주도적 여론처럼 보이게 만든다. 가령 포털이 최신순 대신 공감수 정렬이라는 방패를 쓰면 여론을 조작시키려는 자들이 이를 뚫는 창을 또 찾아낸다. 그 결과 오히려 댓글 전쟁만 심화했다. 조작하려는 욕망이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막기 어렵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네이버가 기울일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안 한 것도 사실이다. 돈으로 연결되기도 하고 뭘 해도 막을 수 없다는 무기력이 네이버 안에 퍼져 있는 거로 보인다.”
보통 사람 눈엔 방치에 가까워 보인다.
“네이버뿐 아니라 모든 IT기업은 시간이 돈이다. 뭐든 지체되는 건 손해로 인식한다. 모니터링한 후 매크로가 쓰이지 않고 좌표도 찍히지 않은 것만 노출시키고, 랭킹이나 뷰 수도 정확하게 걸러낼 수 있다고 치자. 시간이 걸린다. 필요한 절차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서비스를 1분만 멈춰도 막대한 손해라고 생각하는데 투명성을 높이자고 스스로 서비스를 딜레이시킬까. 절대 안 한다. 영업이 우선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실 클릭 수 올라가면 네이버로서도 수익에 도움이 되면 됐지 나쁠 건 없다. 저널리즘적인 관점을 갖고 있고 그에 걸맞는 거버넌스를 갖고 있다면 윤리도 신경써야 하는 등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한 사기업일 뿐이니까.”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면 네이버가 특정 세력의 조작이라는 걸 확실히 알고 연초 수사를 의뢰한 건가.
“그렇다. 다만 댓글 내용만 보고 보수 진영이 벌인 작업이라고 판단한 게 분명해 보인다. 여당인 민주당 쪽인 줄 알았으면 당연히 고발하지 않았을 거다. 이번 드루킹 사건으로 보고 이제서야 정치 쪽 매크로에 대한 의구심이 풀렸다고 말하는 개발자들이 많다. 사실 매크로 조작은 정치 영역에서 활용하기 훨씬 이전부터 경쟁 인강(인터넷 강의)을 깎아내리기나 성형외과 홍보, 음원 마케팅과 관련해서 숱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다만 다들 돈 받고 소위 이 같은 바이럴 마케팅(온라인에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확산시켜주는 방법)을 하는 업체와 정치 댓글 다는 사람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한번 친문이면 계속 친문이라고만 알았던 거다. 드루킹처럼 이해관계로 친문에서 반문으로 돌아선다는 걸 몰랐다. 네이버가 잘못 판단한 이유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는 지난해 국회에 출석해 공감수 정렬 문제나 편집 조작과 관련 잘 몰랐다면서 AI(인공지능)에 의한 자동화 얘기를 했다.
“자동화는 아무 의미도 없다. 기계가 순위를 결정지어도 개발자가 그 정보가 들어있는 DB에서 직접 결과값을 바꾸면 그만이니까. 지난해 이해진 창업자의 답변을 보고 개발자들이 다들 웃었다. 모를 리가 없는데 저렇게 모르는 척 한다고.”
정치적 진영 다툼장으로 변한 댓글 문제, 대책이 없을까.
“네이버가 노출시키는 모든 뉴스를 네이버 안에서만 소비하게 하는 인링크, 그리고 거기에 댓글까지 달게 하면서 벌어지는 인터넷 난장판은 분명 네이버가 책임질 문제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조작하려는 사람은 늘 있기 마련 아닌가. 청와대 국민청원도 얼마든지 조작 가능하다는 건 이제 누구나 안다. 네이버나 인터넷 탓만이 아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도 책·음반 사재기를 통한 순위 조작 등 다양한 방식의 조작이 있었다. 그래서 이젠 ‘여론의 창구’라는 미명 아래 정화도 안 될 댓글에 스트레스받을 게 아니라 분탕질과 조작을 부추기는 댓글 자체를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지경이 된 댓글창이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가. NPR 등 미국 주요 매체 가운데서도 폐해를 견디다 못해 없앤 곳이 많다. 포털 댓글은 결코 여론이 아니다. 그냥 술집 잡담 수준이다. 왜 우리가 그걸로 시달려야 하나. 여혐 살인사건으로 떠들썩한 강남역 현장에 붙은 포스트잇 메시지엔 정제된 글이 많았다. 지저분한 댓글창이 아니라 그런 게 오가는 플랫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얘기다. 댓글을 그대로 둘 수밖에 없다면 그게 결코 여론이 아니라 일부 세력의 세 다툼의 결과라는 미디어 교육이 필요하다. 그래야 악플에 상처받는 대신 그걸 무시해서 조작의 유혹을 줄일 수 있다.”
개발자 눈으로 볼 때 정치 여론 조작과 디지털 마케팅의 차이, 합법과 불법을 가르는 기준은 뭘까. 안철수 후보도 최근 느닷없는 음원 역주행으로 조작 시비에 휘말린 닐로 케이스를 언급하기도 했다.
“아무 차이가 없다. 똑같다. 플랫폼마다 프로그램의 변형은 있지만 매크로를 돌리는 원리는 같다. 다들 어느 정도는 일상적으로 하고 있다. 영화 평점 테러를 비롯해 온 사회가 다 하고 있다. 어느 분야든 온라인 랭킹(순위)이 오프라인에서 실질적인 결과를 만들기 때문에 다들 목을 매는 거다.” 

이준행(33)은 …

미디어스타트업 개발자이자 기획자. 게임회사 엔씨소프트 오픈마루에서 기획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네이버(2011년 근무 당시 사명은 NHN)와 SK플래닛에서 개발자로 근무했다. 퇴근 후 취미 삼아 만든 고로케닷넷(2012)과 일간워스트(2013)를 통해 혼탁한 인터넷 환경을 풍자하며 문제 제기를 해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자신이 만든 인디스트릿(인디밴드가 공연 스케줄을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과 유사한 서비스를 하겠다고 나서자 ‘정부의 삥뜯기’라며 반발해 무산시키기도 했다. 2015년 국정원의 해킹 프로그램 도입을 블로그를 통해 처음 알려 국정원 해킹 사건의 도화선 역할을 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안혜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