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론

이주민 서울경찰청장, 코미 전 FBI 국장에게 배워라

중앙일보

입력 2018.04.24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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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임준태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

임준태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

‘인터넷 댓글조작 사건’ 수사 과정에 세간의 관심과 이목이 쏠리고 있다. 수사 개시부터 김모(49·필명 드루킹·구속기소)씨를 비롯해 주요 관련자의 검거와 구속에 이르기까지 사건 전모가 큰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주민 서울경찰청장의 엇갈린 해명으로 경찰 수사에 대한 불신도 커지고 있다.

경찰의 소극적 댓글 조작 수사
오해·궁금증·불신·의혹 키워
미 FBI는 대통령도 엄정 조사
공정하고 신속하게 수사해야

경찰 단계에서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급기야 특검 도입 여부에 대한 격렬한 정치 공방까지 벌어지고 있다. 댓글조작 사건은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실세 정치인인 김경수 의원의 개입 여부가 회자하면서 정치적 사건으로 비화하고 있다. 특히 2012년 대선 기간에 불거진 국가정보원에 의한 댓글 사건을 놓고 아직도 법원에서 진실 공방이 진행 중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이번 댓글조작 사건의 수사를 맡은 서울경찰청의 실체적 진실 규명 노력이 미흡할 경우 우리는 또다시 퇴보에 가까운 역사적 전철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경찰 수장이 임명권자와 정치적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고, 운신의 폭이 크지 않았던 사례가 적지 않았다. 경찰의 책임자들이 법 집행 과정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견지하지 못하고, 편향되게 법을 집행해 진실을 왜곡했던 경우 역사적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경찰청장·검찰총장·국세청장 등 이른바 권력기관 수장들의 경우 임기제를 도입하고,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을 거치도록 하는 이유다.

최근 경찰과 검찰 간 수사권 조정을 둘러싸고 경찰의 인권 친화적 직무환경과 정치적 중립성 확보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도 경찰이 더 많은 자율과 책임을 갖고 수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런 주장에 힘이 실리려면 잘못된 권력을 심판하고 남용된 검찰권을 견제하라는 국민의 여망을 받들고 시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사실을 경찰은 명심해야 한다.

시론 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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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 서울청장은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 재직 경험이 있고 문재인 정부 들어 경찰청장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고위 경찰 간부다. 이런 상황에서 댓글 조작 수사에서 보여준 소극적 태도와 좌고우면하는 모습은 많은 오해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댓글 조작 사건은 민감한 성격상 피의자들의 활동 내용과 자금 출처 및 규모, 주변인 등 관계자 확인, 증거 확보 및 압수물 분석에 이르기까지 경찰의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활동이 절실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최근까지 알려진 경찰의 수사진척 상황은 의구심을 더 키우고 있다. 대한항공 조현민 전무의 이른바 ‘물컵 투척 갑질 사건’을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수사 중인 서울 강서경찰서의 태도와도 크게 비교된다.

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형사재판과는 달리 수사 과정은 전통적으로 ‘수사 비밀의 원칙’이 지켜지는 것이 맞다. 그런데도 많은 국민은 이번 사건에서 실체적 진실을 더 신속하고 정확하게 알고 싶어 한다. 더욱이 대통령의 최측근 실세 정치인이 연루되면서 정치적 이해가 엇갈리고, 야당의 공세는 거세다. 정치적으로 파급력이 크고 민감한 사건일수록 원칙대로 공정하고 신속하게 수사하는 게 정답이다.

미국 대선 막판에 집권당인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불리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미 연방수사국(FBI)은 법 집행 기관으로서 엄정한 수사 태도를 보여줬다. 그뿐만 아니라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은 살아 있는 권력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법과 원칙대로 대했다. 한국 경찰이 배워야 할 태도다.

이주민 청장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면서, 이번 사건 수사에 임하는 자신의 심경을 국민 앞에 다짐했다. 경찰대 1기 출신인 그는 경찰대학 교정 돌비석에 새겨진 문구(‘이곳을 거쳐 가는 이여 조국은 그대를 믿노라’)를 다시금 새겨야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 서울청장으로서 직무를 엄정하게 수행해 논란과 오해를 불식시키고 경찰 수사가 정쟁의 도가니 속으로 휘말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많은 경찰관과 국민이 기대하는 수사권 조정이라는 과제가 현실화될 수 있도록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이번 댓글조작 사건을 둘러싼 경찰 수사의 성패 여부는 경찰의 전문 수사역량과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비판적 여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경찰은 이번 수사가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주권자인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임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법 집행 상황이 후일 역사적·법적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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