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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매크로 몰랐겠나…댓글조작 방치하거나 묵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드루킹 게이트로 촉발된 댓글조작 문제가 온라인 여론 왜곡 논란으로 옮아가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건 '공룡 포털' 네이버다.

전문가 10인 긴급진단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1월 23일 오후 성남 분당구 정자동에 위치한 네이버 사옥에 직원들을 보내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이번 조사는 제재 절차 개시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뉴스1]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1월 23일 오후 성남 분당구 정자동에 위치한 네이버 사옥에 직원들을 보내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이번 조사는 제재 절차 개시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뉴스1]

 ITㆍ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인터넷 미디어 생태계를 황폐화하고 있는 네이버 독과점을 깨뜨리지 않고는 제2, 제3의 드루킹은 또다시 등장한다”고 지적했다. 정치권 역시 여야 가리지 않고 “이번 기회에 영향력은 막강하나 책임은 지지 않는 네이버에 철퇴를 내려야 한다”며 관련 법안을 마련 중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네이버 서버를 압수 수색을 해 지난 대선의 불법 사항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한국갤럽 및 포털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한국갤럽 및 포털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네이버가 매크로 묵인했을 것”

네이버는 왜 여론조작의 원인 제공자라는 공격을 받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조작을 알고도 방치하거나 묵인했을 가능성”을 꼽는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과거부터 암암리에 성행했던 매크로를 네이버는 이번 ‘드루킹 게이트’가 터지고 나서야 처음 알았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다"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했다.
그는 “백번 양보해 진짜 몰랐다고 하면 네이버는 양산형 매크로에도 뻥뻥 뚫린다는 얘기 아닌가. 대한민국 최대 포털 기업의 보안 시스템이 ‘초딩’ 수준임을 자인한 꼴”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원 댓글조작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드루킹' 김동원(49)씨가 작년 3월 31일 부산 연제구 부산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영남권 대선 경선 현장에서 왼쪽 귀에 ‘이어마이크’를 꽂은 모습이 보인다. [사진 뉴데일리]

더불어민주당원 댓글조작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드루킹' 김동원(49)씨가 작년 3월 31일 부산 연제구 부산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영남권 대선 경선 현장에서 왼쪽 귀에 ‘이어마이크’를 꽂은 모습이 보인다. [사진 뉴데일리]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역시 “기계적으로 매크로 돌려서 조작하는 행위를 네이버가 못 찾아낼 리 없다. 빅데이터 기법을 동원하면 쉽게 잡아낼 수 있다”며 “이걸 방치한 건 댓글 전쟁을 유도한 것”이라고 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댓글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현실을 침묵하면서, 포털 스스로가 신뢰를 잃었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여론조작=위조지폐 사범’으로 등치 시켜야 한다는 지적까지 한다. 임종인 교수는 “대한민국 헌법의 두 핵심 가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다. 여론조작은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기 때문에, 시장경제를 망치는 위조지폐를 중범죄로 다루듯 댓글조작을 개인의 일탈 등으로 안이하게 접근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트래픽 높이려 댓글 장사"

네이버상의 익명 댓글, 공감 추천 등을 두고도 비판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가장 서둘러 시행해야 할 대처법은 네이버 기사에 댓글을 못 달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 교수는 “댓글은 단순한 의견 표출이 아니다. 폐해가 순기능을 훨씬 넘어섰다”며 “댓글이 몇 개나 달리느냐에 따라 기사 순위가 정해지고, 그러면 클릭에 목매달 수밖에 없는 개별 언론사는 댓글이 많이 달리는 자극적인 기사를 양산해 낼 수밖에 없다. 언론 생태계 파괴의 출발점이 기사 댓글”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싶다면 개별 기사 댓글이 아닌, 별도의 공론장을 제공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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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네이버상의 공감 비공감, 혹은 추천 비추천 등은 영업을 위한 도구로 활용될 뿐”이라며 “포털의 사회적 책임감을 위해서도 이런 방식은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고 했다.

이같은 댓글 문화의 기저엔 “권위주의 문화를 극복해내면서 개인의 권리 인식은 높아졌지만, 그에 준하는 공동체 의식이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이란 분석도 나온다.

바른미래당 댓글조작대응 TF 권은희 단장과 오신환, 유의동, 채이배 의원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스1]

바른미래당 댓글조작대응 TF 권은희 단장과 오신환, 유의동, 채이배 의원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스1]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국사회에선 근본적으로 타인의 명예훼손에 대한 죄의식이 약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인터넷 실명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인터넷 실명제가 뉴스의 신뢰도를 약화하는 가짜 뉴스 생산도 제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해 12월 네이버 등 하루 이용자 1000만명 이상인 포탈을 대상으로 ‘댓글 실명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다만 “댓글 쓰는 것을 사업자가 아닌 외부에서 하라 마라 정하는 거 자체가 넌센스”(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온라인상의 자정 기능을 무시한 채 무조건 규제 일변도로 가는 건 표현의 자유 등 더 중요한 가치를 훼손시킬 우를 범할 수 있다”(한상진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등의 신중론도 적지 않았다.

포털은 어디로 가야하는가. 진단에 응한 10인의 전문가다. 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한상진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김광웅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포털은 어디로 가야하는가. 진단에 응한 10인의 전문가다. 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한상진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김광웅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언론인 듯 언론 아닌 언론 같은

근본적으로 네이버의 뉴스 편집권이 여론 왜곡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크다. 한규섭 교수는 “알고리즘에 기초한다, 뉴스편집자문위원회를 외부에 두고 있다는 등 마치 현대 뉴스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인 편집권에서 네이버가 전혀 무관하다는 식으로 회피하는 건 비겁하다”고 지적했다.
이준웅 교수는 “아예 언론사라고 공표하고 편집권을 당당하게 행사하라"고 했다.

최진봉 교수는 “과거에도 네이버는 축구협회 관련 기사 조작으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며 “편집행위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당원이자 파워블로거 '드루킹' 일당의 댓글조작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은 22일 경기도 파주 느릅나무출판사를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현장을 찾은 취재진이 문틈 사이로 사무실을 촬영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당원이자 파워블로거 '드루킹' 일당의 댓글조작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은 22일 경기도 파주 느릅나무출판사를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현장을 찾은 취재진이 문틈 사이로 사무실을 촬영하고 있다.

정동우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교수가 2016년 12월, 국내 언론정보학 교수 1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도 현재 네이버 등 포털의 뉴스 서비스 제도가 저널리즘 환경을 황폐화한다는 데 7명의 교수가 동의했다. 또 포털이 사회적 의제 설정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데는 전원이 동의하기도 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현재 댓글조작 논란의 핵심은 인터넷 선거운동을 과연 어디까지 허용할 지 여부”라며 “포털이 언론에 속하지 않은 채 권리만 누린다면, 온라인상 무책임한 비방과 왜곡은 쉽게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민우ㆍ안효성ㆍ김준영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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