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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죽는 소리했던 이란에 美 당했다…북핵 담판 때 압박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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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의 핵담판, 이란 핵협상에서 배워라”...미 유대인위원회 해리스 CEO 

"2015년 타결된 이란 핵합의는 #핵 포기가 아닌 핵 연기에 불과" #"북에 제재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밀어붙여야 핵협상 진전 있을 것"

오는 6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머리 속에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가 그려지고 있다. 2015년 7월 타결된 이란 핵 합의와 같이 ‘약한 합의’는 용납할 수 없다는 자세다.

다음달 12일 이전 이란 햅합의를 파기할 수 있다고 위협하는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당시 이란 핵 합의를 끌어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과 독일로 구성된 ‘P5+1’은 좌불안석이다. 13년을 들인 협상결과가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란 핵 합의 관련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체는 맏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도 무시하지 못하는 이스라엘 로비스트들이다. 그 중에서도 뉴욕에 본부를 둔 미국 유대인위원회(AJC)의 힘은 막강하다. 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와 함께 미국 백악관과 의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친 이스라엘 단체로 꼽힌다. 올해로 설립 102주년을 맞는다.

유대인위원회 데이비드 해리스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본지 기자와 세차례에 걸친 e메일 인터뷰를 통해 “북한과 핵협상을 하기 전 이란 핵협상을 반면교사로 삼아라”고 충고했다. “그리고 제재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데이비드 해리스 미국 유대인위원회(AJC) 최고경영자. [사진=AJC]

데이비드 해리스 미국 유대인위원회(AJC) 최고경영자. [사진=AJC]

-이란 핵 합의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2015년 이란 핵 합의는 이란의 핵을 포기시킨 게 아니라 연기시켰을 뿐이다. 협상 마지막에 지나치게 이란을 느슨하게 대해주는 바람에 중요한 사항을 놓쳤다.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사항은 탄도미사일 개발을 무기한 금지하는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 개발을 금지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8년간(2023년까지) 유지한다’는 일몰규정이 포함돼있다. 2023년 이후에는 핵탄두를 장착한 탄도미사일 개발이 가능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게다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조사 규정은 일부 군사 지역을 감시 대상에서 제외했다.”

미국이 이란 핵 합의를 문제삼고 있는 부분도 같은 내용이다. 미국은 이란의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국제적 감시하에 두는 내용을 포함해 핵 합의를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란은 핵 합의를 재협상할 수 없고, 탄도미사일 개발은 자주적 주권이라면서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완강한 입장이다.

-핵협상 마지막까지 압박을 가하지 못한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나.
“이란 핵협상 당시 이란은 매우 영리하게 저자세와 죽는 소리로 일관했다. 협상 마지막 당시 국제유가가 형편없이 낮기도 했다. P5+1은 2002년부터 13년에 걸쳐 진행된 수백 차례의 협의 과정에서 마지막까지 압박을 가하지 못했다. 핵 합의를 이뤄내면서 P5+1 참가자들은 ‘이란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최선의 합의였다’고 자평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지 못했다. 당시 협상에 참가한 P5+1은 좀더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협상장에서 가할 수 있었지만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는 집념이 더 강했다. 그것이 패착이었다. 결국 인내심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북한 핵협상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나.
“그렇다. 북한은 필연적으로 저자세에 때로는 허풍을 부리고, 위협하는 전술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하루가 지나가면 다시 생존을 걱정해야하는 취약한 국가인 만큼 때로는 냉혹하게 협상에 임해야 한다. 끝까지 제재를 풀어주면 안 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압박을 가해야 원하는 합의수준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제재에 무게를 실으면서 핵협상을 진행하면 검증 가능한 비핵화 해법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결국 다자간 회담은 인내심이 부족해 ‘약한 합의’에 도달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인가.
“P5+1과 같이 여러 이해당사국이 모인 다자간 협상에는 장단점이 있다. 북한이 포함된 6자회담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따져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협상 막바지에 시간이 부족해 이란핵합의와 같이 약한 합의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나온다. 대신 남북대화나 북·미대화와 같이 양자 간 대화는 시간상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겠지만 주변 이해 당사국의 요구를 담아내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달 이란 핵 합의를 파기하면 북한이 협상장에 나서지 않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란 핵 합의 파기는 합의서를 찢어버리자는 것이 아니라 좀더 보강해서 보다 실효적이고 완전한 합의를 이루자는 것이다. 북한이 이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미국 정부도 잘 알고 있다.
내 생각에 이란 핵 합의를 파기할 경우 오히려 반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 북한이 ‘약한 합의’를 고집하더라도 미국이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거꾸로 입증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해리스 미국 유대인위원회(AJC) 최고경영자. [중앙포토]

데이비드 해리스 미국 유대인위원회(AJC) 최고경영자. [중앙포토]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회담 결과를 어떻게 예상하나.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모두 전례가 없는 비전통적인 캐릭터를 갖고있다. 때문에 북·미 협상의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다. 특히 북한은 신뢰할 수 없고 기만적이며, 이해관계 면에서 계약을 위반한 오랜 기록을 갖고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할 상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면교사로 삼을만한 사례가 있나.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당시가 좋은 예이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나는 그 사람을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그를 매우 간단하고 신뢰할만한 사람으로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부시 전 대통령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순수하거나 무조건 신뢰할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미 입증된 상태이다.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본능에 너무 크게 의존한 것이 문제였고, 푸틴 대통령을 상대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게다가 평양은 테헤란과 오랫동안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의심되는 만큼 이란 핵 합의를 면밀히 연구했을 개연성이 크다.”

-지난달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갑작스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나.
“두 나라 사이의 비즈니스는 항상 불투명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명하게 미국과 북한 양자 사이에서 중요한 결정이 나오기 위해서는 중국의 조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 입장에서도 미국을 향해 중국이라는 든든한 백이 있다는 사실을 부각시켰다고도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만만하게 봐서는 안되는 상대이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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