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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건강한 성문화 알고 나니 생식기란 말 부끄럽지 않아

중앙일보

입력

붉은 쿠션과 탯줄을 상징하는 줄로 인체의 자궁을 표현한, 자궁방에 모인 학생기자들. (왼쪽부터) 양유찬·김동률·김줄기·노윤서·손채은·이지윤 학생기자.

붉은 쿠션과 탯줄을 상징하는 줄로 인체의 자궁을 표현한, 자궁방에 모인 학생기자들. (왼쪽부터) 양유찬·김동률·김줄기·노윤서·손채은·이지윤 학생기자.

탁틴내일 청소년성문화센터는 1995년 3월 1일 세워진 국내 최초 전문 성교육기관입니다. 생명·사랑·성인권·성평등에 대해 교육하며 청소년들의 건강한 성(性) 문화 정착에 힘쓰죠. 더불어 사는 사회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요즘, 올바른 성인식을 공부하고 교실 속 성평등을 논하기 위해 소중 학생기자들이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탁틴내일 청소년성문화센터에 모였습니다. 성교육이 처음이라는 김줄기 학생기자부터 '미투(나도 성폭력을 당했다)'로 불거진 성 관련 논쟁을 공부하고 싶다는 노윤서 학생기자까지 저마다 이유를 갖고 참석했죠.

(왼쪽부터) 손채은·이지윤·김동률·노윤서·김줄기·양유찬 학생기자. 강덕임 선생님의 질문에 손을 번쩍 들어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손채은·이지윤·김동률·노윤서·김줄기·양유찬 학생기자. 강덕임 선생님의 질문에 손을 번쩍 들어 답하고 있다.

학생들의 대답을 듣고 있는 강덕임 선생님.

학생들의 대답을 듣고 있는 강덕임 선생님.

지하 1층 강의실에서 시작한 이날 교육은 강덕임 선생님의 설명으로 문을 열었어요. "성평등을 이루기 위해 관건은 관계예요. 남자인지 여자인지보다는 인간과 인간이 맺는 관계가 중요하죠. 성을 둘러싼 고민은 평생 해야 하는 거고요." 강 선생님은 "부끄러움을 버리는 게 성교육에선 가장 우선"이라며 "가려야 할 게 아니라 신기하고 새롭고 아름다운 거예요. 성을 불편하고 은밀하게 얘기할, 어두운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런 생각부터 버려야 합니다"라고 말했죠. 또, 생명의 탄생부터 가족이 생기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10장의 그림을 칠판에 붙였어요. 그림엔 인체 구조도 가감 없이 나왔죠. "이런 걸 보여 주는 저는 이상한 사람일까요? 아니죠. 여러분이 부끄럽게 생각하게 된 데는 사회적 분위기와 음란물의 영향도 있을 거예요." 현실에 없는 왜곡된 내용을 담은 음란물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생명의 탄생부터 가족이 생기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그림 10장.

생명의 탄생부터 가족이 생기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그림 10장.

강의 후 학생기자들은 뒤쪽에 있는 '거울의 방'과 '내 마음이 들리니' 방으로 향했어요. 거울의 방은 사방이 커다란 거울이었죠. "여기서 자신의 매력을 발견하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찾을 거예요." 선생님의 설명에 학생기자들은 신이 나서 방으로 들어갔죠. 내 마음이 들리니 방엔 방음벽이 튼튼하게 설치돼 있었어요.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줘요. 격려도 좋고 무엇이든 좋아요.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게 건강한 성 인식의 시작입니다." 김동률 학생기자는 수줍은 얼굴로 문을 꼭 닫았어요. 스스로에게 어떤 칭찬을 했는지는 비밀로 남겨둔대요. 다른 학생기자들도 각자의 매력을 찾아냈죠. "앞머리"(윤서) "쌍꺼풀"(지윤) "기자증을 걸고 있는 나"(줄기).

'거울의 방'에 선 (왼쪽부터) 노윤서·손채은·이지윤 학생기자.

'거울의 방'에 선 (왼쪽부터) 노윤서·손채은·이지윤 학생기자.

'내 마음이 들리니 방'에 들어간 (왼쪽부터) 김줄기·김동률·양유찬 학생기자.

'내 마음이 들리니 방'에 들어간 (왼쪽부터) 김줄기·김동률·양유찬 학생기자.

다음은 자궁방입니다. "모성만 강조한다는 의견에 잠시 운영하지 않았지만 생명의 탄생 신비를 알리기 위해 다시 열었죠. 학생들도 좋아하는 체험이에요." 검고 좁은 입구를 지나니 빨간 쿠션이 가득한 방이 나왔죠. "가장 편안한 자세로 있어 볼까요. 귀를 기울여 보세요." 천장엔 탯줄을 재현한 긴 줄이 늘어져 있었죠. 눈을 감고 쿠션에 몸을 기댄 후 쿵쿵 울리는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들었어요. 채은이는 "너무 좋아요. 안 태어날래요"라고 말했죠. "10개월이 지나면 보통 몸무게는 3㎏대, 키는 50㎝대로 자란 아기가 태어나요. 어머니도 여러분도 아주 힘들게 탄생의 신비를 일궈낸 거예요. 자, 우리 태어나 볼까요." 6학년 윤서를 시작으로 4학년 동률이까지 나이 순서대로 "응애" 소리를 내며 태어났습니다. 먼저 나온 친구들은 동생들에게 "축하해"라며 박수쳤죠.

생명의 탄생을 체험할 수 있는 자궁방에서 나이 순서대로 나온 학생기자들이 손뼉을 치며 막내 김동률 학생기자가 태어난 것을 축하했다.

생명의 탄생을 체험할 수 있는 자궁방에서 나이 순서대로 나온 학생기자들이 손뼉을 치며 막내 김동률 학생기자가 태어난 것을 축하했다.

자궁은 어디에 있을까. 주먹을 쥐고 엄지·새끼 손가락을 펴 배꼽 아래에 대보면, 그곳이 자궁의 위치다. 남자 몸 안에는 없다.

자궁은 어디에 있을까. 주먹을 쥐고 엄지·새끼 손가락을 펴 배꼽 아래에 대보면, 그곳이 자궁의 위치다. 남자 몸 안에는 없다.

그런데 자궁은 어디에 있을까요. 자, 주먹 쥐고 엄지·새끼 손가락을 펴 배꼽 아래에 대보세요. 그곳이 바로 자궁의 위치죠. 양쪽 손가락이 가리킨 곳엔 난소가 있고요. 남자 몸 안에는 없죠. 임신하면 자궁이 보통 40배까지 커진답니다. 과학적으로는 400배까지 커질 수 있대요. 출산 당시 아기의 스트레스 수치와 산모의 것을 비교하면 아기가 10배 이상 힘들답니다. 탄생을 위해 엄마의 질 밖으로 나오는 과정을 견뎌낸 여러분은 꽤 괜찮은 친구들이라는 점 잊지 마세요.

김줄기(왼쪽)·이지윤 학생기자가 실제 아기와 비슷한 체형의 인형을 안아 보고 있다.

김줄기(왼쪽)·이지윤 학생기자가 실제 아기와 비슷한 체형의 인형을 안아 보고 있다.

손채은(왼쪽)·김동률 학생기자가 실제 아기와 비슷한 체형의 인형을 안아 보고 있다.

손채은(왼쪽)·김동률 학생기자가 실제 아기와 비슷한 체형의 인형을 안아 보고 있다.

임산부 체험을 할 수 있는 2층에 오자 강 선생님이 방석 얘기를 꺼냈습니다. "여학생에게 방석을 권하는 이유는 난소 때문이죠. 난소가 따뜻한 걸 좋아하거든요. 남학생은 고환이 밖에 나와 있고, 정자를 만드는 공간이 시원해야 해서 사각팬티를 선호하게 될 거예요." 설명을 들은 친구들은 저마다 방석을 깔고 자리에 앉은 뒤 실제 아기와 비슷한 체격의 인형을 조심스레 안아봤어요. 머리와 목을 잘 받치고 품에 꼭 안는데, 누군가 쿵 하고 아기를 떨어뜨린 소리가 났습니다. "진지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생명을 장난스러운 자세로 대해선 안 돼요."

양유찬 학생기자가 임산부 체험을 하고 있다.

양유찬 학생기자가 임산부 체험을 하고 있다.

김동률 학생기자가 임산부 체험을 하고 있다.

김동률 학생기자가 임산부 체험을 하고 있다.

이후 10㎏ 무게의 임산부 체험 벨트를 각자 착용하고 걸었어요.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생명의 무게를 느껴보는 시간이었죠. 임신을 하면 보통 몸무게가 20㎏ 늘어난다고 해요. "으악. 너무 불편해요" 혀를 내두른 줄기가 "여자들은 힘이 세서 내색을 안 하는 건가요?" 하고 엉뚱한 질문을 던졌죠. "그게 아니라 아기를 안전하게 보호하려 인내하는 겁니다." 강 선생님이 단호하게 말씀하셨죠. 학생기자들은 임산부 인형의 배를 만져 보며 태동도 느껴봤습니다. 아, 실제 임산부를 만나면 절대 허락 없이 배를 만져선 안 돼요.

양유찬 학생기자가 토의에 앞서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양유찬 학생기자가 토의에 앞서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왼쪽)손채은·노윤서 학생기자가 토의에 앞서 각자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왼쪽)손채은·노윤서 학생기자가 토의에 앞서 각자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체험을 마친 학생기자들은 1층으로 이동해 '교실 속 성평등' 토의를 벌였습니다. 강 선생님은 먼저 각자 성별을 이유로 차별받거나 불편했던 경험을 나눠보자고 하셨어요. "선생님들이 대부분 여자라서 똑같이 잘못해도 남자만 혼내고 여자는 안 혼내요. 학교에서 남자 선생님을 많이 고용해야 남자 마음도 이해해 줄 거예요."(유찬) "어머니께서 아기를 양육하시는 일이 훨씬 많잖아요. 그러니 아이들도 여자에게 더 친근감이 있죠. 이게 여자 선생님이 많은 이유 아닐까요."(줄기) "남학생만 감싸는 여자 선생님도 있거든요. 남자와 여자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 성향의 문제인 거죠."(채은) "성별이 아니라 한 사람의 취향 문제죠.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선생님들을 나라에서 더 잘 교육하는 게 필요해요."(윤서)

노윤서 학생기자가 토의에 앞서 정리한 생각을 확인하고 있다.

노윤서 학생기자가 토의에 앞서 정리한 생각을 확인하고 있다.

교실 속 불합리를 이야기하다보니 자연스레 1인1역에 대한 토의로 이어졌어요. 1인1역은 교실에서 한 사람이 하나의 역할을 맡아 협동하도록 하는 겁니다. "1인1역은 선생님께서 배정하는데, 힘쓰는 일은 남자애들이 맡고 여자애들은 칠판 지우기 같은 거만 시키시죠. 여자도 힘쓰는 일 하거든요. 맡겨 주셨으면 좋겠어요."(채은) "우리 반도 1인1역하는데요. 남자들은 걸레 빨고 교실 안에 온갖 걸 닦는데 여자애들은 심부름하고 계속 놀아요."(줄기) "우리 반에선 여자애들이 무거운 거 다 들고 남자애들은 자기들끼리 놀죠."(지윤)

성평등 토의에 나선 학생기자들은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길 때까지 열띤 이야기를 계속했다.

성평등 토의에 나선 학생기자들은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길 때까지 열띤 이야기를 계속했다.

토의가 과열되자 강 선생님은 "개인의 경험에 매몰되는 게 아니라 전체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며 남녀 편 가르기를 우려했죠. 고개를 끄덕인 학생기자들은 앞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방향에 대해 말하며 마무리했습니다. "여자도 파랑, 남자도 분홍을 좋아할 수 있어요."(지윤)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은 비워 둬요."(줄기) "성별을 이유로 놀리면 안 돼요."(유찬) "남자 놀이, 여자 놀이, 이런 건 없는 거예요."(동률) "여자는 체육·수학을 못한다는 건 말도 안 돼요."(채은) "여학생 출석번호를 무조건 뒤로 배정하는 건 불공평해요."(윤서)

글=강민혜 기자 kang.minhye@joongang.co.kr, 동행취재=김동률(서울 위례별초 4)·김줄기(서울 수명초 5)·노윤서(서울 염리초 6)·손채은(서울 원효초 5)·양유찬(대전 목양초 5)·이지윤(서울 용마초 5), 사진=송상섭(오픈스튜디오)

탁틴내일 체험관 성교육

위치: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신촌7안길 18(창천동 114-9) 탁틴내일(2호선 신촌역 1번 출구)
대상: 모든 청소년(최소 5~30명)
일시: 오전 10시, 오후 2·4시(공휴일 휴무)
시간: 100분
교육신청: 홈페이지에서 예약(www.tacteen.net/sub030201)
입장료: 청소년 5000원·성인 1만원
         단체할인(5인 이상) 2000원

(왼쪽) 이지윤·김줄기 학생기자가 교실 속 성평등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왼쪽) 이지윤·김줄기 학생기자가 교실 속 성평등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학생기자 취재 후기

김동률(서울 위례별초 4)
자궁방·임산부 체험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생명의 소중함을 느꼈죠. 교실 속 성평등 토의를 통해 앞으로 모두가 평등하게 누리는 세상을 위해 할 일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김줄기(서울 수명초 5)
성평등 토의를 통해 확인한 게 많아요. 첫째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자는 거예요. 외모는 태어날 때부터 가진 조건이기 때문이죠. 또, 무의식적인 말에도 성차별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대표적으로 남자와 여자라고 말할 때, 다수의 사람이 남자를 먼저 말하고 여자는 나중에 말하죠. 사소하지만 많은 성차별이 일상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노윤서(서울 염리초 6)
성에 대한 인식을 바꿨죠. 비밀스러운 게 아니라 나를 아는 하나의 방법이란 거예요. 손을 여러 번 번쩍 들었던 토의 시간이 특히 좋았어요. 학생기자 친구들이 각자 느낀 차별을 말했는데, 학급 친구들과도 토의하고 학급 건의함에 의견을 넣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또, 선생님께 이런저런 사회의 성차별에 대해 질문할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손채은(서울 원효초 5)
남자와 여자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뻔한 교육이 아니라서 기억에 남아요. 생식기라는 말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누구에게서도 배운 적 없는데 처음 알았죠. 또, 요즘 미투 등 소수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시위가 많이 벌어지잖아요. 그걸 다른 친구들과 함께 배울 수 있어서 뜻깊었어요. 평소 주변에 있는 편견을 알아보고 없앨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우리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성평등의 일환인 것 같아요.

양유찬(대전 목양초 5)
저 자신이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가치 있는 생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또, 저와 다른 사람의 성을 소중하게 생각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우리나라의 모든 어린이들과 어른들이 눈높이에 맞는 성교육을 받는다면 언젠가는 미투 캠페인이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되지 않을까요.

이지윤(서울 용마초 5)
성은 우리의 일상과 일생을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이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부끄럽다고 느끼기도 하는 것 같아요. 교육을 받고 나니 안 보였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죠. 토의를 마치고 ‘사소한 것이라도 다른 친구들 입장에서 생각해보기’ ‘작은 폭력에도 민감해지고 반대하기’를 통해 성평등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왼쪽) 노윤서 학생기자가 교실 속 성평등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왼쪽) 노윤서 학생기자가 교실 속 성평등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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