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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가짜 ID 얼마든지 만들어 … “청와대 국민청원도 조작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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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국내 보안 전문가들은 ‘민주당원 댓글 조작 사건’으로 정치권이 시끄러운 데 대해 “이런 일이 터질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최용락 숭실대 SW특성화대학원 교수는 “기사 댓글뿐 아니라 청와대 청원 게시판 추천 수가 급상승하는 모습도 특정 세력이 개입했을 개연성을 높인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서 30일간 추천 수 20만 개를 받으면 정부 관계자가 직접 답을 해야 한다.

가상 전화번호 온라인서 쉽게 구해 #포털·SNS 계정 여러 개 생성 가능 #중복 청원 안 걸리는 방법도 있어 #전문가 20명 중 11명 “포털 댓글 폐지” #“언론사 사이트에서 달게 해야”

지난 19일 중앙일보는 보안 전문가와 함께 청와대 게시판도 한 명이 여러 개의 청원을 올려 여론 조작이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지난 3월에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온 ‘세월호 관련 청문회 위증한 조여옥 대위 징계를 바란다’는 글에 가상 아이디(ID)로 10개 청원을 추가로 붙이는 과정이다. 온라인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제3국 가상 휴대전화 번호 5개로 포털사이트 ID 5개를 만들고, 이를 다시 페이스북·트위터를 통해 ID를 10개로 불리는 일이 가능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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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10개로 청와대 청원 수를 늘릴 때는 구글 브라우저 크롬의 ‘시크릿모드’를 사용하라는 조언도 인터넷에서 돌아다닌다. 시크릿모드는 아이돌 가수 음원 순위를 올릴 때 흔하게 사용하는 방법이다. 시크릿모드를 활성화시키면 인터넷 활동 기록이 남지 않기 때문에 청와대 홈페이지의 ‘중복 아이디로 더 이상 클릭할 수 없다’는 제한을 피할 수 있다. 매크로 같은 자동 반복 프로그램을 쓰지 않고도 한 개 PC에서 한 명이 ID 10개로 손쉽게 청원 동의를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이날 오전 11시 해당 청원 글의 추천수는 18만6128개에서 18만6383개로 늘어났다. 약 30분 동안 본지 청원 10개를 포함해 255개가 증가했다. 해당 글은 21일 오후 6시 결국 청원 수 20만 개를 돌파해 청와대의 공식 답변을 받게 됐다.

온라인 마케팅 전문가 오종현씨는 “온라인에서 콘텐트를 상위로 올리기 위해서는 ‘ID’ ‘아이피’ ‘자동반복 프로그램’ 3박자가 맞아야 한다”며 “아이디 출처에 특별한 제한을 하지 않는 청와대 청원 게시판 순위 조작은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초 카카오톡 계정 설정을 통해 한 개 ID로 계속 ‘동의’ 버튼을 누를 수 있다는 우회 기법이 알려지자 청와대는 카카오톡 ID 접근을 차단한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매크로 제작업체 관계자도 “포털사이트는 반복 프로그램에 걸리지 않게 중간에 다른 콘텐트를 집어넣어 이를 방해하지만, 청와대 게시판은 구조가 단순해 조작이 더욱 쉽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소수의 거짓 의견이 거대한 여론인 것처럼 조작돼 정부도 휘둘리는 상황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중앙일보가 학자, 보안·여론·심리 전문가, 법조인 등 전문가 20명에게 의견을 물어본 결과 “현행 포털 댓글 서비스 방식에 문제가 있다(16명)”고 봤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이번 드루킹 사건도 자기 편에 유리한 댓글을 위로 올리려다 벌어진 일”이라며 “공감·비공감 수가 여론을 왜곡할 소지가 큰데도 포털은 이를 활용해 돈을 번다”고 지적했다. “포털 뉴스 댓글 기능을 아예 없애자”는 주장도 ‘찬성’(11명)이 ‘반대’(9명)보다 우세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댓글이 여론을 왜곡하면 오히려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 보수와 진보로 갈린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 포털의 댓글은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기 쉽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검색 엔진 구글 등에선 뉴스 기사를 클릭하면 해당 언론사 페이지로 넘어가고(아웃링크), 댓글도 언론사 사이트에만 달 수 있다. 윤광일 숙명여대 교수는 “국내 포털은 뉴스를 클릭 수, 댓글 수 등을 토대로 배치하는 사실상의 편집권을 갖고 있지만, 저널리즘 윤리엔 구속받지 않는 기형적인 특권을 행사한다”고 진단했다. 윤 교수는 “뉴스 유통 구조를 아웃링크 방식으로 전환하고, 댓글도 언론사가 관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민상·임선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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