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취재일기

물 건너간 6월 개헌, 국민만 초조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송승환 기자 중앙일보 기자
송승환 정치부 기자

송승환 정치부 기자

청와대가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추진하던 개헌 국민투표가 결국 무산될 전망이다. 6월에 개헌 투표를 하려면 재외국민 투표 문제로 헌법불합치 결정(2014년 7월)을 받은 국민투표법부터 고쳐야 한다. 하지만 개정시한 하루 전날인 22일까지 국회가 공전만 거듭하면서 개헌안 합의는 고사하고 국민투표법 개정조차 물 건너갔다.

지난해 대선 때는 여야를 막론하고 2018년 지방선거와 동시 개헌투표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우세했다. 그러나 대선 이후 여야의 셈법이 엇갈리면서 결국 국민들만 허탈한 상황이 됐다. 따져보면 지난달 26일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할 때부터 이런 결말이 예정됐던 셈이다. 지방선거와 개헌 동시 실시라는 대선 공약을 지키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는 분명히 평가할 대목이다. 하지만 보수진영의 강한 반대가 뻔한 사안들을 대거 개헌안에 포함시켜 놓고 어떻게 야당을 설득해 국회 개헌 정족수(의석 2/3)를 채우겠다는 것인지 비전은 모호했다.

[일러스트=박용석]

[일러스트=박용석]

제1야당은 자유한국당은 청와대에 대한 즉자적 반발에만 치중했다. 자신들의 대안을 가지고 여권과 개헌의 실마리를 풀어보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국회 총리 선출을 골자로 한 분권형 대통령제를 제안했지만 “권력을 국회의원들끼리 나눠 먹겠다는 거냐”는 식의 냉소주의를 불식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국민들에게 개헌의 당위성을 설득한 게 아니라 철저히 개헌을 정치공학으로만 접근한 결과다.

야당과 합의를 끌어내야 할 더불어민주당은 존재감이 없었다. 문 대통령의 개헌안에서 한 발짝도 양보할 수 없다는 모습만 보여줬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6월 개헌이 무산된 건 한국당 책임”이라는 모양새로 몰고 가는 게 나쁘지 않다고 본 것일까.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사이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사태와 드루킹 사건이 터졌고,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게 됐다. ‘국민 개헌’이라던 거창한 이슈는 이제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 있다. 국회 주변에선 “국민의 기본권인 참정권도, 국민 개헌도 정쟁의 볼모일 뿐”이라는 자조가 나온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지난 1월 “국민투표법 개정안을 아직 처리하지 못한 것은 국민께 참으로 부끄럽고 면목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면목 없는 일은 3개월 넘게 지속했고 이제 실패를 앞두고 있다. 정치권이 국민에게 잘못을 사과해야 하는 순간인데 또 남 탓만 할 것 같아 걱정된다.

송승환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