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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오염된 집단지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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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캐나다의 금광회사 골드코프는 2000년 새로운 금맥을 찾지 못해 문을 닫을 지경이었다. 고민하던 롭 매큐언 사장은 소스 공개 운영체제 리눅스에 관한 강연을 듣고 아이디어를 냈다. 회사 소유의 온타리오주 레드 레이크 광산의 극비 지질 정보를 인터넷에 모두 공개하면서 금맥 찾기 공모전을 연 것. 상금은 57만 달러. 전 세계 지질 전문가, 대학원생, 수학자 등이 몰려들어 수학, 물리학, 인공지능, 컴퓨터그래픽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110곳이나 되는 금맥 후보지를 찾아냈다. 이 후보지에서 220t의 금을 찾아낸 골드코프는 세계 2위의 금광 회사로 우뚝 섰다. 집단지성이 성공을 거둔 유명한 사례다.

아무리 똑똑한 개인도 집단보다는 똑똑하지 않다는 것이 집단지성이다. 집단지성의 힘은 인터넷을 타고 더욱 커졌다. 위키피디아, 네이버 지식인, 다음 아고라, 각종 커뮤니티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집단지성은 오염되기 쉽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취리히) 연구팀은 학생들에게 ‘취리히에서 1년 동안 벌어진 살인 사건 수’ 같은 여러 문제를 냈다. 어떤 질문은 다른 사람의 예측을 참고하게 했고, 어떤 질문은 알아서 답하도록 했다. ‘힌트’를 알려준 질문의 경우 답은 그 수치 주변으로 수렴했다. 게다가 이때 응답자들은 자기 답이 정답에 가깝다고 믿는 확신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컸다. 사실은 ‘오염되지 않은 예측’의 평균치가 정답에 더 가까웠지만.

전문가들은 집단지성이 발휘되려면 다양한 사람들이(다양성), 자신만의 생각으로(독립성), 쏠리지 않는(분산화) 의견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렇지 않을 경우 집단지성은커녕 집단사고의 오류에 빠지기 쉽다. 극단주의와 근본주의의 특징이 바로 집단사고다.

지금 정부와 여당은 유난히 집단지성을 강조한다. 촛불집회를 집단지성의 발현으로 평가했고, 지난 대선 캠프에는 ‘집단지성센터’를 두고 전문가들을 영입했다. 집권 후에는 집단지성을 기대하며 청와대 민원 게시판을 만들었고, 짓고 있던 원자력발전소의 폐쇄까지 공론화에 부쳤다. 논란이 없진 않았지만 신선한 시도라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댓글 조작 논란에 대한 자세에서는 ‘건전한 집단지성’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인터넷 공간이 편 가르기와 혐오의 집단사고로 오염돼 가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전 정부는 ‘댓글 조작’이고 드루킹은 ‘댓글 장난’일 뿐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인터넷 공간에서의 집단지성은 기대할 게 없다.

이현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