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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 서핑 차이나] ‘당 우위’ 시진핑 개혁안 … 덩샤오핑 노선 지고 마오쩌둥 정치 뜬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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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당의 지도를 약화하는 형형색색의 언행과 투쟁하라.”

시주석의 그림자 딩쉐샹 주임 #“당 위협 형형색색 언행과 투쟁을” #경제·외교 등 위원회가 국무원 지휘 #당 중앙기구가 선전전 전면으로

딩쉐샹(丁薛祥) 중국 공산당 중앙판공청 주임의 주장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그림자로 이름난 그가 지난달 “한 때 당정분리를 평면적으로 이해했다”며 ‘당정 합일’를 강조하고 나섰다. 사실상 당을 우위에 둔다는 의미다.

이는 “당정을 나누지 않아 당이 정부를 대신하는 문제를 해결하라”는 1980년 덩샤오핑(鄧小平) 정치 개혁안에 대한 사망 선고다. 왕치산(王岐山) 국가부주석은 이미 1년 전에 “오직 당정분업만 있을 뿐 당정분리는 없다”고 선언했다.

중국에서 지난달 ‘당과 국가 기구 심화 개혁 방안(이하 개혁안)’ 발표 뒤 마오쩌둥 정치의 부활 우려가 높다. 안치영 인천대 중국학과 교수는 “개혁안 골자는 ‘당·정부·군부·민간·학계, 동·서·남·북·중까지 당이 모든 것을 이끈다’는 마오의 어록”이라며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1974년 7월 1일 자 인민일보 사설이 거버넌스로 부활했다”고 평가했다.

“시 주석이 마오쩌둥식 군중 노선을 소환했다”(양갑용 성균중국연구소 교수)는 분석도 나온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전문가들은 개혁안을 “덩샤오핑식 정치개혁의 파산과 마오쩌둥 대중 정치의 부활”로 파악했다. 이는 집권 기반을 관료 대신 인민에게서 찾는 중국 특색의 포퓰리즘이다. 이렇게 되면 중국에서 ‘견제와 균형’은 사라지게 된다. 헌법 조문에 적시된 당 절대 우위 체제만 남은 것이다.

위원회 강화는 개혁안의 가장 큰 특징이다. 중앙 전면심화개혁·인터넷안전정보화·재경·외사공작 등 4대 영도 소조가 위원회로 격상됐다. 덕분에 비공식 임시기구였던 영도 소조 판공실이 독립기구로 변신했다. 개정안은 “위원회는 중요 업무의 정층설계(頂層設計:Top-level design), 총체적 포석, 전체적 조화, 전면적 추진, 시행과 감독을 책임진다”고 규정했다.

중국에서 위원회는 위상이 다양하다. 중앙군사위·국가안전위 일인자는 주석, 중앙기율검사위·정법위는 서기, 심화 개혁·군민융합발전위 등은 주임으로 불린다. 덩샤오핑은 중앙고문위 주임 호칭을 선호했다. 권력 기반인 군사위 주석은 내세우지 않았다.

각종 19기 위원회 구조는 지난 2일 중앙 재경위원회 1차 회의가 일단을 보여줬다. 시 주석이 주임,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부주임, 왕후닝(王滬寧)과 한정(韓正) 상무위원이 위원으로 거명됐다. 왕양(汪洋) 정협 주석은 재경위원 직함 없이 참석했다. 주룽지(朱鎔基) 이후 ‘경제 차르’로 불리는 류허 재경위 판공실 주임조차 위원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외교를 총괄하는 외사위원회는 더욱 미궁 속이다. 왕치산 국가부주석은 부주임 설이 유력하다. 판공실 주임은 양제츠(楊潔篪) 정치국 위원이 맡았다. 판공실에는 두 명의 50대 다크호스가 포진했다. 우선 러위청(樂玉成·55) 부주임이다. 모스크바와 뉴욕 근무 경력의 소유자다. 시 주석이 ‘실크로드 벨트(일대·一帶)’를 처음 제안했던 2013년 카자흐스탄 대사였다. 2014년 9월 시 주석의 인도 방문을 일주일 앞두고 인도 대사로 교체되면서 헬리콥터 승진을 시작했다. 왕이(王毅) 국무위원 겸 부장을 제외한 외교부 내 유일한 후보중앙위원으로 차기 0순위다. 류젠차오(劉建超·54) 전 대변인도 떠오르는 별이다. 2001년 37세로 사상 최연소 대변인을 기록했던 류 전 대변인은 지난 2년간 감찰 계통에서 단련했다. 3월 말 외사위 판공실로 복귀했다.

지방 부채 위기의 해소 노력도 포함했다. 세금 징수 비용을 낮추고 효율은 높이기 위해 국가세무국과 지방세무국을 통합해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징세 시스템을 통합 조정했다. 국세와 지방세의 이전과 교부가 원활해졌다.

그 배경엔 1994년 중앙과 지방정부의 세목을 나눈 분세(分稅)제 개혁의 부작용이 있다. 이후 세금을 걷는 부유한 지방과 가난한 중앙 현상이 역전됐다. 개혁으로 부가가치세 등 굵직한 세목을 중앙이 독차지하면서 재정이 부족해진 지방은 토지 상승을 조장해 부족한 세원을 메꿨고 그 결과 과도한 부채 리스크를 불러왔다.

당 중앙기구가 전면에 나선 것도 이번 개혁안의 특징이다. 선전부와 통일전선부(통전부) 권한을 확대했다. 새로운 중국위협론인 ‘샤프(sharp) 파워’ 논리와 정면 대결을 위해서다. 중앙선전부는 신문·방송·출판·영화 등 감독권을 국가신문출판총국에서 넘겨받았다. 영화나 드라마 수출입 심의도 당이 직접 맡게 됐다. 국무원 지휘를 받던 관영 CC-TV, 중국국제방송국(CGTN), 중국 인민 라디오방송(CNR), 중국국제라디오방송(CRI)을 ‘중앙라디오TV본부(中央廣播電視總臺)’로 통폐합했다. 문패는 ‘중국의 소리(VoC)’다. 선전부는 사상 검열과 이데올로기 선전을 넘어 국제무대에서 우호적인 여론 조성을 맡았다.

개혁안은 당이 밑그림을 그리면 국무원은 집행에 주력하라고 규정했다.

베이징의 시사 평론가 장리판(章立凡)은 “당의 의지가 모든 것을 결정하면 정부가 결정할 문제는 사라진다”며 “정부의 행정 직능은 더 약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리퉈(李拓) 국가 행정학원 교수는 “위원회에는 각종 시스템이 ‘일언당(一言堂·한 사람의 말에 모두가 동조하는 것)’ 출현을 막고 있다”며 “기구개혁을 독재로 보는 해석은 틀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방의 분권과 균형은 현 단계 중국에선 통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개혁안은 중앙과 국가 기관 개편을 올해 말까지 마무리하고 지방 성급 기구는 연말까지, 그 이하는 내년 3월 전에 완비한다는 시간표를 제시했다.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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